[아츠앤컬쳐] 나처럼 판타지 영화를 좋아하지 않고 마블 히어로 세계를 잘 모르는 사람이 봐도 좋을까 걱정이 들었다. 그러나 <아이언맨>처럼 사전 지식 없이 봐도 곧 충분히 이해가 되었다. 시작 후 얼마 지나지 않아 보여주는 영상이 흠칫 <인셉션>과 비슷해 ‘이래도 되나?’ 하는 생각이 언뜻 스쳤지만, 뛰어난 그래픽 기법에 인물들을 결합하는 변형을 주자 거부감이 줄었다.

영화는 다크 디멘션의 캐실리우스(매즈 미켈슨)와 에인션트 원(틸다 스윈튼)의 환상적인 액션 장면이 지나자 바로 현실 세계로 넘어온다. 닥터 스트레인지(베네딕 컴버배치)가 수술실에서 외과수술을 하는 장면이 나온다. 다급한 상황에서 의료장비의 도움을 받지 않고 해결할 정도로 손기술이 뛰어나다는 것과, 척 맨지오니의 <Feels So Good> 발표 연도 등 소소한 것들을 정확히 알 정도로 기억력이 비범하다는 것을 보여준다.

그런 그가 차 사고로 재활 치료를 받던 중, 자신처럼 도저히 가망이 없던 환자가 회복되었다는 말을 듣고 치료를 위해 네팔에 있는 카마르-타지라는 곳을 찾아간다. 카마르-타지에 도착한 스트레인지는 책을 읽고 있는 노인을 에인션트 원이라 생각해 인사를 하는데 사실 에인션트 원은 차를 따라 주던 여승이었다. 스콧 데릭슨 감독은 닥터 스트레인지와 더불어 관객의 고정관념에 대하여 약간의 유머를 날리는 것 같다. 이런 편견이 있던 터라 그는 그녀가 설명하는 ‘마음’에 관한 것들을 사이비로 치부한다.

그러자 그녀는 그의 가슴을 쳐서 유체이탈을 하게 한다. 그는 차에 약을 탄 것이 아닌가 의심한다. 그녀는 닥터 스트레인지를 멀티버스로 보내 프랙탈 구조 같은 우주의 다양하고 신비한 경험을 하게 한다. 생애 처음으로 미스테리한 경험을 한 그는 그녀에게 가르침을 청하지만 그녀는 거절한다. 다른 선택이 없는 그는 5시간을 기다린 끝에 모르도(치웨텔 에지오프)의 도움으로 에인션트 원의 수련을 받게 된다.

그는 지적 호기심과 부지런함으로 새로운 능력을 빠르게 습득하며 다크 디멘션으로부터 지구를 구하는 생텀에 머물던 중, 생텀을 침범한 캐실리우스 무리들과 전투를 벌이다 부상을 당한다. 영화는 그동안의 기계적 도움이나 돌연변이처럼 주인공의 천부적인 힘으로 히어로가 되는 것이 아니라 수련을 통해 새로운 세상을 깨달음으로써 주인공이 되는 그런 인물을 보여준다. 그런 인물에 맞게 시간을 되돌리거나 반복시키거나 공간을 뒤틀리게 하거나 유체이탈을 시켜 영혼끼리 싸우게 하는 새로운 영화 세상을 만든다. 그런 세상에 대한 표현이 너무 사실적이라 실재한다고 믿게 만든다. 그동안 동양에서 생각하는 수련을 통한 영적인 경지에 다다른 초월적 존재가 지배하는 세상으로 우리를 인도한다.

영화를 보고 있을수록 미국 영화가 점점 더 강해져 간다는 생각이 들었다. 일회성이 아니라 산업적으로 장기적인 관점에서 체계적인 뒷받침을 받고 있다고 느꼈다. 먼저 컴퓨터 그래픽 기술이 하나의 표현 능력으로 충분하다 못해 무기화되어 가고 있었다. CG는 컴퓨터 장비도 장비지만 블루 스크린 촬영 등 다양한 방법에 의해 상상을 영상으로 표현하는 독창성이 뛰어나지 않으면 안 되는데 그 수준이 우리가 생각하는 이상이었다. 컴퓨터 그래픽 기술이 이제 우리가 쉽게 모방하기에는 자본력만이 아니라 전문 인력에서도 딸릴 것 같았다. 앞으로 컴퓨터 그래픽 기술이 더욱 발전할수록순수한 3D 애니메이션만이 아니라 실사와 CG가 합성되는 장면이 더 많이 나올 텐데,국내에는 그런 기술을 개발해 가는 야심 찬 제작사가 적은 것 같아 가슴이 서늘해졌다.

다음은 우리가 열광하다 이제는 거들떠보지 않고 버린 3D 기술을 더욱 정밀하게 발전시키고 있다는 사실이다. <아바타> 이후 한국에 불어 닥친 3D 열풍은 UHD로 유행이 바뀌었다가 VR이 나오자 지원사업의 풍향계도 바뀌었다. 그런데 왜 할리우드에서는 3D 기술을 더욱 발전시켜 블록버스터 영화마다 3D로 제작하는지 궁금증이 생겼다. <닥터 스트레인지>의 속도감 있는 장면을 3D로 봤을 때 예전 3D 영화에서 느꼈던 불편함이 이제는 거의 사라져 부러웠다.

다음은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와 같이 불어나는 영화적 영토에 대한 부러움과 다양한 캐릭터의 창출 능력이었다. 스토리에는 강하지만 캐릭터를 만들어 내는 데에는 약한 우리 현실을 볼 때 부러웠다. 매번 새로운 영화나 제작할 때마다 제로 베이스에서 시도하는 것보다 성공한 작품의 익숙함 속에 새로운 이야기를 만들어 가는 것도 흥행 면이나 제작 면에서 나쁘지 않을 것 같은데 말이다.

두 편의 쿠키 영상을 보면서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에 합류한 닥터 스트레인지의 활약이 기대되었다. 누가 기존 마블 영화에 벌써 닥터 스트레인지에 대한 언급이 있었다고 알려줬다. 날씨 탓인지 소름이 살짝 돋았다.

글 | 강인식
전 KBS, SBS PD, 전 싸이더스FNH 대표, 현 kt미디어 콘텐츠담당 상무
ilpaso@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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