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스만 함디 베이와 문화재
[아츠앤컬쳐] 터키의 화가 오스만 함디 베이(Osman Hamdi Bey, 1842~1910)가 1878년에 그린 『The Scholar』를 보게 된다면, 엎드려서 책을 읽고 있는 한 남자에게 시선을 사로잡히게 된다. 특히 다양한 색상이 매력적인데, 남자의 밝은 연두색 옷은 엎드려서 배를 대고 있는 양탄자와 달리 확연히 밝게 빛난다. 이 남자가 깔고 있는 양탄자는 기하학적인 디자인으로 이루어져 있다. 붉은 계열의 색조와 베이지 색, 네이비 색 계열이 섞여 있다.
남자가 있는 곳은 서재로 보인다. 벽에는 몇 권의 책을 꽂을 수 있는 선반이 있는데, 벽은 페르시아만과 같은 진한 청록색을 띠고 있다. 청록색의 육각형 타일이 벽을 디자인하고 있다. 벽 위쪽에 새겨진 아랍어 위아래로는 모두 오렌지색과 검은 색의 지그재그모양의 디자인을 사용하고 있다. 방구석에는 산호직물의 가벼운 색으로 디자인된 촛대가 있다. 꽃문양이 있는 핑크색과 녹색이 방에 안정감을 준다.
이 남자는 왼 팔꿈치를 강하게 바닥에 댄 자세를 하고 있으며, 오른손으로는 턱을 괴어 머리를 약간 위로 하고 책을 내려다보고 있다. 왼손의 손가락은 책을 지그시 누르면서 읽고 있는 부분을 가리키고 있다. 분위기는 침착하고 차분하며, 이 남자는 긴장하지도 그렇다고 노곤하지도 않은 편안해 보이는 자세를 취하고 있다. 우리는 세밀하게 묘사된 독서하는 남자를 보면서 이 그림에 집중할 수 있게 된다.
오스만 함디 베이의 작품은 프랑스 화가 장 레옹 제롬(Jean-Leon Gerome, 1824~1904)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 장 레옹 제롬은 프랑스의 화가이자 조각가로, 그리스 신화를 비롯 고대 역사와 동양을 소재로 많은 작품을 남겼다. 그는 젊었을 때부터 터키 등을 여행하며 아랍에 매료되었는데, 동양, 특히 아랍세계에 대한 관심을 바탕으로 형성된 예술은 일종의 사조(思潮)를 구성하게 된다. 오스만 함디 베이도 역시 이 사조의 독특한 스타일의 범주 안에 있다. 오스만 함디 베이는 터키로 돌아와 중동의 리얼리즘의 문을 열게 된다.
한편 오스만 함디 베이는 예술가이면서도 고고학자였으며 행정가였다. 현재의 이스탄불 고고학 박물관(Istanbul Archeology Museums)과 이스탄불 미술 학교(현재 미마르 시난 미술 대학교(Mimar Sinan University of Fine Arts)의 설립자로도 알려져 있다. 오스만 함디 베이는 이스탄불과 파리에서 먼저 법률을 공부하기 시작했으나, 점차 회화에 관심을 가지게 되어 법학을 포기하고 장 레옹 제롬 밑에서 교육을 받은 것이어서, 법에 대한 기본적인 소양은 갖추고 있었다. 그가 터키 유물이 해외로 밀반출되는 것을 금지하기 위한 법률을 기초하여 1884년 제정되었고, 이로부터 터키는 유물 보존을 위한 법적 기틀을 마련하게 된다.
우리나라에도 문화재를 보존하여 민족문화를 계승하고 이를 활용할 수 있도록 함으로써 국민의 문화적 향상을 도모함과 아울러 인류문화의 발전에 기여함을 목적으로 하는 문화재보호법이 있다. 우리 문화재보호법상 “문화재”란 인위적이거나 자연적으로 형성된 국가적 민족적 또는 세계적 유산으로서 역사적 예술적 학술적 또는 경관적 가치가 큰 것으로 유형문화재, 무형문화재, 기념물과 민속문화재를 말한다. 이처럼 문화재는 물질적인 것과 문화정신적인 것을 포함한다.
우리나라 문화재보호법(제39조 제1항)은 국보, 보물, 천연기념물 또는 중요민속문화재의 국외 수출 또는 반출을 금지한다. 현재 한국에서 문화재의 보호가 특별한 의미를 가지는 것은, 구한말에는 프랑스에, 구한말과 일제강점기를 거치면서는 일본에 약탈당한 문화재를 환수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종래 한국에서 “문화재의 국제적 보호”는 주로 ‘약탈문화재의 환수’의 문제였기에 일차적으로 우리나라 정부가 프랑스와 일본으로부터 환수해야 할 책임을 지는 것으로 생각되었고 “문화재의 국제적 보호”는 주로 국가 간의 문제로 인식되었다.
그러나 이와 같은 문제는 더 이상 발생해서도 안 되고 발생하지도 않을 것이다. 오히려 문화재 소유자로부터 문화재를 절취한 절도범이 이를 외국에 수출하는 경우 소유자가 이 문화재를 직접 환수할 수 있는지, 또는 문화재 소유자 스스로 법을 위반하여 외국에 자신 소유의 문화재를 수출하는 경우 한국이 이 해외로 넘어간 개인 소유의 문화재를 환수할 수 있는지가 문제될 것이다. 국가 간의 문제로부터 ‘국제적 불법거래에서 문화재보호’의 문제로 초점이 바뀐 것이다.
국제사회는 이와 같은 문화재의 국제적 불법거래를 방지하기 위하여 1970년 “문화재의 불법적인 반출입 및 소유권양도의 금지와 예방수단에 관한 협약(Convention on the Means of Prohibiting and Preventing the Illicit Import, Export and Transfer of Ownership of Cultural Property)”(이하 “유네스코협약”이라 한다)을 채택하였고 이는 1972년에 발효되었다. 유네스코협약(제7조 b항 제ii호)에 따라 문화재 출처 당사국은 다른 당사국이 동 협약의 발효 후 반입된 문화재의 회수 및 반환에 관한 적절한 조치를 취할 것을 요청할 수 있다.
위 협약의 연장선상에서 ‘사법통일을 위한 국제협회(UNIDROIT)’는 “도난 또는 불법 반출된 문화재에 관한 협약(Convention on Stolen or Illegally Exported Cultural Objects)”(이하 “유니드로와협약”이라 한다)을 채택하였고 1998년 발효되었다. 문화재의 국제적 불법 거래를 근절한다는 목적에서 양자는 상호 보완관계에 있다.
유네스코협약은 국가의 요청 등을 통하여 문화재의 불법거래에 대처할 수 있다. 유니드로와협약은 국가의 직접적인 행위 없이도, 문화재를 도난당한 개인에게 도난문화재를 돌려 달라고 할 수 있는 권리를 인정하고, 문화재가 불법 반출된 국가에 개인이 직접 소송을 할 수 있도록 인정한다. 그러나 유니드로와협약도 전문거래상들이 국경을 넘나들며 문화재의 소유자를 세탁하는 것까지는 막을 수 없다는 한계가 있다.
한국으로부터 도난당한 문화재가 외국으로 밀반출되고 이 문화재가 여러 번의 매매를 거쳐 도난당한 것인지 모르고 취득한 사람이 있다고 가정하자. 이 경우, 문화재 취득인의 소유를 인정해줄 것인지, 아니면 원래 문화재를 소유하고 있던 자(도난 피해자)가 이를 반환받을 수 있는지 등에 관한 요건은 모두 그 문화재가 위치한 나라의 법에 의하는 것이 원칙이다. 특히, 국가에 따라 이런 상황에 대한 법제가 다를 뿐만 아니라, 문화재의 불법거래에 대한 부분은 더욱더 법제 상황의 편차가 크기 때문에 각 나라의 법제 및 국제 협약 등에 정통한 법률 전문가의 도움이 없이는 사실상 해결하기 어렵다.
글 | 이재훈
문화 칼럼니스트, 변호사, 한국과학기술기획평가원 혁신제도연구팀장, (주)파운트투자자문 감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