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부유럽의 “문화 핵폭풍” 스위스 루체른
Lucerne
[아츠앤컬쳐] “로마의 바티칸시국 교황청을 지키는 근위대는 이탈리아가 아니라 스위스의 군인들입니다. 십자군 전쟁, 종교개혁 등을 거쳐 로마가톨릭교회가 역사적으로 서서히 쇠퇴해 갈 때도, 스위스 병사들은 목숨을 바쳐 오로지 의뢰인 로마교황청을 위해 일했습니다. 유럽 사회가 변화되는 와중에도 세상 물정 모른 채로 주변 강대국들의 철권통치를 피해 약소국으로 살아가던 ‘촌나라’ 스위스는 1, 2차 세계대전을 거치면서 금융, 시계생산, 케이블카 설치, 터널 공사 등에 장기를 살려 ‘작지만 강한 국가’를 이루었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강소국 스위스’의 문화 정체성이 바로 유럽 최강문화도시 ‘루체른’을 낳는 원동력입니다.” -후버스 아커만 박사, 루체른 페스티벌 회장
글로벌 선두국가가 되기 위한 두 가지 조건, “경제와 문화”를 갖춘 스위스
독일, 오스트리아, 이탈리아 등 알프스 주변을 운전하다 보면 국경컨트롤이 별도로 없어 편안한 마음이 들다가도 스위스 국경에 인접했을 때 여권검사를 받다 보면 이상한 느낌이 든다. 언어나 문화가 거의 비슷할 것 같은데 스위스는 왜 유로도 쓰지 않고 입국 검사를 하는 것일까. 이것은 1, 2차 대전 후 경제적으로 유럽 내 최상위 부자국가로 성장한 스위스의 위상을 반증하는 현상이다.
오늘날 유럽에서 중세독립국 스위스의 위치는 독보적이고 최상급이다. 그리고 이렇게 해서 벌어들인 막강한 부를 스위스는 취리히와 루체른, 베르비에 등 문화도시에 쏟아붓고 있다. 취리히는 경제와 금융의 중심지이자 대도시로 취리히오페라, 톤할레오케스트라 등을 위시하여 정규시즌(9월~이듬해 6월)을 전개하는 문화도시이고, 루체른은 아름다운 호수를 낀 도시로 부활절페스티벌(3월), 여름페스티벌(8~9월), 가을피아노페스티벌(11월) 등 연중 페스티벌이 전개되는 페스티벌문화도시이며, 베르비에는 해발 1,400m 스키리조트를 여름음악페스티벌로 특화시켜 미국의 아스펜음악제와 마찬가지로 여름음악캠프형 페스티벌을 열어가는 도시다.
잘츠부르크 페스티벌이 두려워하는 유일한 경쟁자, 루체른 페스티벌
세계 최정상급 오케스트라와 클래식 아티스트들이 1~2개월간 융단 폭격하듯 공연을 쏟아내는 대표적인 페스티벌은 유럽 내에서 오스트리아 잘츠부르크, 독일 베를린, 그리고 스위스의 루체른 세 곳뿐이다.
특히 8월 중순에서 9월 중순까지 한 달간 이어지는 루체른 여름페스티벌은 매년 특정 예술 테마를 선정하여 수많은 음악회 프로그램을 테마에 집중하는데, 2018년 테마는 “어린 시절”이다. 루체른페스티벌이 최근 이렇게 성장하게 된 것은 베를린필 상임 지휘자(1990~2002) 자리를 물러난 클라우디오 아바도를 초빙하여 루체른페스티벌오케스트라(LFO)를 창립하고 이 오케스트라를 루체른페스티벌 상주 오케스트라로 운영하게 된 게 결정적 계기였다. 이 외에도 루체른은 다니엘 바렌보임, 피에르 불레즈, 구스타보 두다멜 등 스타 지휘자를 몇 년 동안 꾸준히 불러 최고급 공연을 선보여 왔다.
연중 페스티벌이 흐르는 도시 루체른과 그 핵심 ‘KKL’
루체른의 제1 페스티벌공연장소는 쟝 누벨의 건축으로 유명한 ‘KKL(루체른문화컨벤션센터)’로 아름다운 루체른호수를 끼고 있으면서 내부는 환상적인 인테리어와 음향을 자랑한다. 1998년 완공된 이 초현대식 콘서트홀은 설립 당시 믿기지 않을 정도의 세련됨과 고급건축물로 전 세계의 주목을 받았다. 최근 파리필하모니, 함부르크 엘프필하모니 등이 루체른콘서홀을 능가하는 공연장을 지었다고 과시하는 중이지만 루체른홀의 명성은 여전히 흔들리지 않고 있다.
KKL은 콘서트뿐만 아니라 축제, 컨벤션, 회의, 연회, 제품출시 행사 등을 수용하는 용도로도 매우 활발하게 활용되고 있어 다양한 콘텐츠로 방문객을 유인하여 상업적 성공도 보장받고, 거기서 유입된 수익금으로 문화 복지를 위해 세계 최정상의 예술가들을 초청하여 고품격 문화콘텐츠를 제공한다는 점에서 모범적인 문화컨벤션센터 운영의 모델로 꼽힌다. 루체른페스티벌은 여름페스티벌의 성공을 확장하여 3~4월에는 1주일간 부활절페스티벌, 11월에는 피아노페스티벌을 개최하여 연중 페스티벌이 흐르는 도시로 거듭나고 있다.
올스타드림팀 오케스트라의 상징 ‘루체른페스티벌오케스트라’
스칼라오페라, 빈국립오페라에 이어 베를린필 음악감독까지 유럽 최고의 음악기관의 수장을 모두 거친 ‘위대한 음악인’ 클라우디오 아바도(1933~2014)가 2002년 베를린필을 퇴임하게 되었을 때 전 세계 음악팬들은 거장 아바도의 콘서트를 더 이상 볼 수 없음에 매우 안타까워했다.
하지만 음악팬들의 염원은 루체른에서 놀라운 프로젝트로 꽃을 피웠다. 바로 루체른페스티벌 측이 퇴임하는 아바도를 영입하여 그가 가장 아끼는 베를린필, 빈필, 런던필, 암스테르담콘세르트허바우, 바이에른방송교향악단, 라스칼라오케스트라, 말러챔버오케스트라 등 유럽 최고 오케스트라의 수석연주자들을 선발하여 올스타 드림팀 오케스트라를 창립한 것이다. 아바도는 새로 창립된 루체른페스티벌오케스트라(LFO)와 함께 루체른 KKL에서 말러의 교향곡 사이클을 선보이는 등 베를린필 시절보다 더 거대하고 의욕적인 공연을 이어나갔다.
아바도의 이상을 이어가는 리카르도 샤이의 ‘LFO’
루체른에서 아바도를 중심으로 탄생한 전대미문의 '다국적 슈퍼 오케스트라'는 2013년 아바도의 갑작스러운 와병으로 위기를 맞이했다. 페스티벌 측은 즉시 라트비아 출신의 젊은 거장, 보스턴심포니의 음악감독 안드리스 넬손스에게 아바도의 빈자리를 맡겼고 이후 베르나르드 하이팅크를 거쳐 이제는 리카르도 샤이가 안정적으로 이 거인 오케스트라를 이끌고 있다.
샤이와 LFO는 작년 10월 첫 내한공연을 통해 황홀한 최정상사운드를 들려준 바 있는데, 샤이는 이미 지난 30년 동안 베를린방송교향악단, 암스테르담 로열콘세르트허바우, 라이프치히 게반트하우스 오케스트라 등 유럽의 최정상 오케스트라의 상임 지휘자로 활동한 거장 중의 거장이다. 아바도의 예술적 이상을 향후 샤이가 루체른에서 어떻게 계승할지 전 세계 클래식팬들은 궁금해하고 있다.
글 | 서정원
클래식음악 해설자, 음악칼럼니스트이자 유럽음악여행 기획자이다. 서울에서 영문학과 미학, 독일 함부르크에서 예술경영을 공부했다. 오랫동안 지인들과 오페라를 공부하고 즐기며, 베를린, 뮌헨, 드레스덴, 잘츠부르크, 바이로이트, 베로나, 취리히, 파리 등을 방문하여 세계적인 오페라단과 오케스트라의 오페라, 콘서트를 경험했다. 현재 클래식음악공연기획사 서울컬쳐노믹스 대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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