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갱은 연금술사
[아츠앤컬쳐] 연금술이란 고대 이집트에서 시작되어 아라비아를 거쳐 중세 유럽에 전해진 원시적 화학 기술이다. 구리ㆍ납ㆍ주석 따위의 비금속(卑金屬)으로 금ㆍ은 따위의 귀금속을 제조하고, 나아가서는 늙지 않는 영약(靈藥)을 만들려고 한 화학 기술로, 고대 이집트의 야금술(冶金術)과 그리스 철학의 원소 사상이 결합되어 생겼으며, 근대 화학이 성립하기 이전까지 천 년 이상 계속되었다.
얼마 전 파리의 그랑팔레 미술관에서 이례적인 고갱의 전시가 개막되었다. 1989년 이후 오랜만에 파리에서 열린 이 전시는 <고갱은 연금술사>라는 제목으로 소개되었다. 전시를 위해서 상당수의 회화작품은 시카고 아트인스티튜트에서, 세라믹을 비롯한 조각품은 오르세미술관에서 대여했다.
“점토가 조금 있다면, 그것으로 금속이나 보석도 만들 수 있다. 물론 점토에 약간의 천재성이 가미되어야 하지만…. 매우 흥미로운 소재이지 않은가?”
고갱이 1889년에 남긴 글이다. 고갱이 남긴 세라믹 작품들을 보면 도자기와 조각을 초월한 그만의 작품이다. 고갱은 점토라는 소재를 조각으로 재탄생시키면서 그만의 예술세계를 구축하였다.
고갱은 1848년에 파리에서 태어났다. 아버지는 기자였으며, 할머니는 페루 출신의 시인이었다. 고갱의 가족은 고갱이 태어난 지 1년 후 페루로 떠났다. 그리고 고갱의 가족은 그가 여섯 살이 되었을 때 프랑스로 돌아왔다. 고갱은 선원 학교에 진학하여 흑해와 북유럽까지 바다를 누비고 다녔다. 훗날 고갱은 작품을 위해서라면 주저하지 않고 머나먼 목적지로 향했다. 이런 태생적인 이유 때문에 평생 대륙에 경계를 두지않고 미지의 세계로 떠났던 것이 아닐까?
이후 20대 중반에 그는 환전소 직원으로 취직하고, 덴마크 여성인 메트 가드(Mette Gad)와 결혼하였으며 슬하에 다섯 명의 자녀를 두게 된다. 그는 환전소에서 일하던무렵에 취미로 그림을 그리기 시작하였다. 처음에는 그림만 그리다가 몇 년 후 조각가의 집으로 이사를 하면서 조각작업에 열중하였다. 그러던 중 인상파 화가들을 알게 되며 화가의 길을 걷게 되었다. 당시 드가와 피사로의 설득으로 고갱은 1879년부터 인상파 화가들의 전시에 참여하였다.
이후 1886년 그는 브로타뉴 지방의 퐁아벤으로 떠나게 된다. 브로타뉴는 프랑스의 북서쪽에 위치한 지방이다. 여름에도 서늘하고 바람이 거칠기로 유명한 곳이다. 혹자는 그의 성격을 다소 야생적이었다고 표현하는데, 그래서인지 자연이 그대로 보존되어 있는 거친 땅에게 이끌렸나보다. 당시의 작품을 보면 흰색 모자가 유난히 눈에 띄는 브로타뉴 민속의상을 입은 여인들을 자주 접할 수 있다. 또한 신앙의 세계에도 관심이 많았던 그는 예수님이나 성경을 소재로 여러 점의 작품을 남겼다.
브로타뉴에 있는 동안 화가 에밀 베르나르(Emile Bernard)와 가깝게 지냈다. 이후 파리로 돌아온 고갱은 에르네스트 샤플레(Ernest Chaplet)의 도자기 견습생이 되어 매우 독창적인 작품들을 남겼다.
이듬해인 1887년에 고갱은 파나마와 마티니를 향해 떠났다. 고갱은 미지의 땅에서 크게 영감을 받았으며, 이는 그의 작품에 여실히 드러난다. 그곳의 이국적인 풍경에 도취되어 이를 화폭에 열정적으로 옮겼다. 이 작품들 중 상당수는 훗날 반고흐의 동생인 화상 테오가 구입하였다. 고갱과 고흐의 우정은 남달랐다. 프랑스로 돌아온 그는 고흐가 활동하고 있었던 아를로 거처를 옮겼다. 하지만 그곳에서 고흐의 자신의 귀를 자르는 이상한 행동에 놀라서 다시 파리로 돌아온 사연은 너무나 잘 알려져 있다.
1891년, 40대 중반의 고갱은 지구의 저편에 아뜰리에를 갖고 싶었던 꿈을 이루고자 타히티로 떠난다. 그곳에서 40여 점의 회화와 조각작품을 완성하고 수중에 돈이 떨어져서 프랑스로 돌아오게 된다. 파리로 돌아와서 두 번의 전시회를 하고 다시 타히티를 향해 떠난다. 하지만 타히티에 머무르지 않고 탐험가 고갱은 타히티에서 수천km 이상 떨어져 있는 히바 오아섬으로 향한다.
고갱이 당시에 남긴 글을 보면 타히티에 서구문화가 많이 들어와 있어서 실망했다는 기록이 있다. 최대한 문명과 멀리 떨어진 미지의 땅에 대한 고갱의 염원이 담긴 마지막 선택이었으며, 그는 그곳에서 54세의 나이에 숨을 거두었다. 화가는 어느 작가에게서도 볼 수 없는 독자적인 화풍의 걸작들을 남겼다.
글 | 이화행
아츠앤컬쳐 파리통신원, 파리 예술경영대 EAC 교수
소르본느대 미술사 졸업, EAC 예술경영 및 석사 졸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