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르미타주에서 '돌아온 탕자'를 만나다
[아츠앤컬쳐] 상트페테르부르크는 러시아 문화와 예술의 수도이다. 지금으로부터 300여 년 전 네바강 삼각주의 늪과 섬에 지어진 이 도시는 ‘북방의 베네치아’, ‘제2의 암스테르담’이라 불리며 화려한 궁전, 대사원, 성당들로 즐비하다. 러시아 문학을 좋아하는 이들에겐, 푸시킨, 고골리, 도스트예프스키의 작품을 통해 이 도시의 지명과 건축물들이 낯설지 않고 어느 곳을 가든 반경 1km 안에는 박물관, 기념관, 극장 등 기념적인 건축물들이 수두룩하다. 물론 황제들의 사치스러운 예술적 취향을 만족시키기 위해 민중들은 수탈, 착취당했겠지만 어쨌든 도시는 예술성으로 가득 차 있다.
그중에서도 러시아인들이 특별히 자랑스러워하는 곳이 있으니 바로 국립 에르미타주 박물관이다. 러시아 최대의 미술관이자 세계적으로도 파리의 루브르, 로마의 바티칸박물관과 함께 세계 3대 박물관으로 꼽히는 곳이다. 18세기부터 시작된 로마노프 왕조의 컬렉션에 기초를 두고 있는 이곳은 300만 점의 소장품과 400여 개의 전시실이 있으며 연간 350만 명의 관람객들이 방문한다고 한다.
컬렉션으로는 원시 문화, 고전고대 문화, 러시아 문화, 유럽미술 등 한 점씩 1분만 감상하더라도 5년 정도가 소요된다 할 정도로 그 양이 방대하고 다양하다. 유럽 최고의 박물관이자 러시아 최대의 예술품 보물 창고인 에르미타주에서도 가장 귀한 보석이있으니 바로 렘브란트의 <돌아온 탕자>이다. 로마 바티칸 박물관에는 미켈란젤로의 <천지창조>가 있고 파리 루브르 미술관에는 <모나리자>가 있다면 이곳 에르미타주 박물관에는 렘브란트의 <돌아온 탕자>가 있는 것이다. 물론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리타 마돈나>나 이탈리아를 벗어나 보존되어 있는 미켈란젤로의 단 4작품 중 하나인 <웅크리고 있는 소년>, 그리고 루벤스의 <시몬과 페로> 등 서양미술사를 대표하는 쟁쟁한 작품들로 가득하지만 언제나 렘브란트의 <돌아온 탕자> 앞으로 가장 많은 관람객들이 모여든다.
러시아 로마노프 왕조 최초의 황제인 표트르 대제(1703)는 네덜란드 회화를 즐겨 수집했고 에르미타주의 렘브란트 회화 컬렉션 역시 표트르 대제의 취향이 초석을 이루게 되었다. 1762년 여제 예카테리나 2세가 즉위하면서 2년 뒤 1764년 그녀는 베를린의 화상인 고츠코프스키로부터 네덜란드와 플랑드르의 회화 225점을 구입했고 이때 <돌아온 탕자>도 에르미타주 박물관으로 함께 옮겨졌다.
<돌아온 탕자>는 1669년경 작품으로 렘브란트의 말년에 제작된 작품이다. 개인적으로도 가장 좋아하는 작품 중 하나이다. 그림은 빛의 대가라 불리는 화가답게 희미한 빛과 함께 등장하는 인물들의 표현이 매우 인상 깊다. 사실 ‘빛’은 예술과 철학에 가장 오랫동안 등장해왔고 어떠한 방식으로든 표현되어 온 가장 오래된 대상이다. 렘브란트는 그 ‘빛’을 가장 감동적으로 표현하는 예술가란 생각이 든다.
작품은 성경 누가복음에 등장하는 탕자 이야기를 주제로 아버지에게 유산을 미리 상속받은 아들이 술과 여자로 자기 영혼을 만족시키고자 했지만 결국 만신창이가 되어 돌아오는 순간을 그린 것이다.
작품을 찬찬히 살펴보자. 우선 아버지의 모습부터 보면 아들을 안고 있는 아버지의 시선에 초점이 없다. 이는 아들을 기다리며 하루도 쉬지 않고 눈물로 밤을 지새워 눈이 짓물러 멀어버렸기 때문이다. 그리고 아버지의 손을 유심히 살펴보면 아들을 감싸 안고 있는 아버지의 양 손이 서로 다르게 그려져 있다는 것을 알아챌 수 있다. 오른손은 부드러운 여자의 손으로 표현되어 있지만 왼손은 거친 남성의 손이다. 이는 바로 어머니와 아버지의 사랑을 의미한다. 그리고 모성과 부성을 나타내는 치유와 용서를 상징하기도 한다.
아버지의 품속에 안겨있는 아들의 모습은 언뜻 죄수의 모습처럼 삭발한 모습을 하고 있다. 그러나 얼굴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마치 ‘태아’가 어머니의 뱃속 안에 평안히 잠들어 있는 듯하다. 이는 인간의 본래 고향인 신의 ‘품’ 안에 안식하고 있음을 의미한다. 아들은 어디서 어떻게 살았는지 샌들이 벗겨져 있고 왼발은 상처투성이다. 그의 삶이 얼마나 고단했는지 알 수 있다. 눈먼 아버지는 돌아온 아들을 인간의 눈이 아닌 마음의 눈으로 바라보며 한 손으로는 다시는 놓지 않겠다는 듯 지그시 누르고 다른 한 손으로는 아들을 쓰다듬고 있다.
렘브란트는 젊은 시절 그림으로 큰 성공을 거둔 화가이다. 세상 속에서 인정받고 명문가의 아내를 두며 신분의 상승까지 이루어낸다. 하지만 사생활 문제로 그림에 전념하지 못했고 여러 일들이 겹쳐 일어나면서 점점 대중들의 시선에서 벗어나게 된다. 한번 시들어버린 대중의 관심은 다시 돌아오지 않았고 결국 렘브란트는 아무도 찾지 않는 초라한 신세로 전락하고 만다.
사실 이 그림은 고난으로 얼룩진 인생을 살아온 렘브란트가 자신을 돌아온 탕자로 묘사하고 자신이 믿고 있는 ‘신’ 바로 ‘하나님’에게 인생을 고백하는 것이다. 탕자의 지저분한 발끝엔 렘브란트가 자신의 초상이라고 말하려는 듯 스스로 지문을 남겨두었고, 결국 고단한 인생을 겪어온 자신이 아버지의 품 안에서 안식하고자 하는 자신의 염원을 그린 것이다.
렘브란트는 이 그림을 자신의 마지막 자화상으로 남기고 그가 원하던 예수 그리스도의 품으로 돌아가게 된다. 에르미타주에는 <돌아온 탕자> 외에도 르네상스와 바로크 시대 거장들의 작품들과 고갱, 고흐, 세잔, 르누아르, 마티스, 피카소 등 근현대 미술의 선구자들의 작품들로 가득하다. 200여 년에 걸쳐 수집된 초호화 컬렉션들로 인해 관람자들은 예술의 블랙홀 속으로 쉽게 빠져들게 된다. 그렇다 해도 <돌아온 탕자>라는 한 노년 대가의 얼굴 없는 자화상을 통해 자아를 탐색해보는 경험은 잊지 마시길.
글·사진 | 강정모
유럽가이드이자 통역안내사로 일하며 세계 유명 여행사이트인 Viator 세계 10대 가이드로 선정된 바 있다. 롯데백화점 문화센터와 여러 기업에 출강하며, 아트 전문여행사 Vision tour를 운영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