텐노 호수 Lago di Tenno
터키석 물빛
[아츠앤컬쳐] Tenno(텐노) 마을은 이탈리아 북쪽 Trentino-Alto Adige(트렌티노 알토 아디제) 주 Trento(트렌토) 도시에 속한 인구 2천여 명의 작은 산속 마을이다. 해발 500m에 위치한 이 마을은 터키보석 같은 빛을 내는 텐노 호수와 Canale di Tenno(카날레 디 텐노)라고 불리는 중세 시대 마을로 독특한 가치를 지닌다.
이 마을의 존재는 실로 우연히 발견하게 되었다. 가르다(Garda) 호수 최북단을 여행하다 호수 맞은편 산기슭에 위치한 Carne Salada(트렌토 지역 향토 음식으로 감칠 맛 나는 육회)로 유명한 한 레스토랑을 찾던 중, 텐노 호수라는 표지판에 이끌려 무작정 꼬불꼬불 산속으로 올라가다 맞닥뜨리게 된 것이다. 예상치 못했던 놀라운 호수 빛깔의 아름다움으로 넋을 잃었던 순간이 지금도 눈에 선하다. 그리도 늘 동경해 왔던 터키석 색깔 물감을 풀어 놓은 것 같은 그 호수 물빛을 여기서 이렇게 우연히 만날 수 있게 되다니…. 그 신비함으로 정말 꿈만 같았다.
최고 수심 48m에 길이 750m, 폭 400m로 한눈에 들어오는 작은 호수이지만 깊은 산속 우거진 나무숲에 폭 싸여 빛을 발하는 터키보석이다. 그 아름다움에 즉각 매료되어 세워 놓은 모든 계획을 수정하고 오로지 신비한 텐노 호수 정경만을 바라보며 하루를 보내고 싶었다. 텐노 호수가 내려다보이는 레스토랑에서 이 지역 향토 음식을 맛보며 이것저것 텐노 마을에 대한 정보를 얻었다.
그러던 중 중세 시대 옛 건물 그대로를 유지하며 거주하는 한 마을이 있다는 사실을 이 마을의 또 다른 자랑거리로 전해 들었다. 호수 주변을 따라 걸으며 다양한 각도에서 바라보는 텐노 호수의 모습을 카메라에 담기도 하고 훤히 들여다보이는 투명한 물속에서 떼를 지어 노니는 은빛 새끼 물고기들과 발장난도 치고 그늘진 풀밭에 누워 신의 예술 작품인-소박하지만 필자에겐 너무도 특별한 느낌으로 다가온-텐노 호수를 하염없이 바라보며 고마운 마음이 들고 행복했다. 오후 내내 그리 텐노 호수와 여유롭게 교감을 나눈 뒤 가능한 빠른 시일 내에 다시 찾아 올 것을 다짐하고 지역 주민이 추천해 준 ‘카날레 디 텐노’라는 작은 중세촌으로 향했다.
지역 주민 말을 듣고 보러는 갔지만 솔직히 별로 큰 기대 없이 그냥 둘러본다는 의미로 중세촌 마을을 찾았다. 그도 그럴 것이 이탈리아 전 지역에서 중세 시대 지어진 건물들을 발견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며 특히 이 산속 작은 마을에 뭐 그리 대단한것들이 있을까 하는 필자의 선입견이 작용했다.
하지만 텐노 중세촌 입구에 들어서는 순간부터 그 분위기에 압도되어 가슴이 두근대기 시작했다. 천천히 한발 한발 내디뎌 가며 1200년대에 지어진 건물들을 관찰하기에 집중했다. 자연 상태의 돌을 쌓아 소박하게 지어진 중세 서민들의 주거 공간이 오랜 세월을 거치며 이리도 평안을 주는 여행지로 현대인들과 함께한다니! 마치 유럽 중세 영화세트장에 구경 온 사람처럼 그저 모든 풍경이 신기하기만 했다.
하지만 이곳은 엄연히 아직도 사람이 살고 장사도 하는 삶의 터전으로 잘 사용되고 있으며 각종 문화 예술 이벤트로도 유명해져 지역 주민들뿐 아니라 다른 지역 관광객들로도 북적인다. 특히 아티스트들이나 수공예 장인들을 입주시켜 그들이 가꾸어 가는 마을은 더욱 옛 보석처럼 빛이 난다.
이탈리아는 정말 축복받은 나라가 아닐 수 없다. 이렇게 어딜가나 예상치 못한 무수한 작은 보석들이 이 땅 곳곳에 흩어져 있어 여행의 즐거움을 극대화시킨다. 새삼 이 나라에서 사는 현실이 참 감사하게 느껴지는 순간이다.
글·사진 | 김보연
아츠앤컬쳐 밀라노특파원, 日本女子大學 卒業, 문화 칼럼니스트
lavitajit@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