래빗홀

2016-11-16     아츠앤컬쳐

[아츠앤컬쳐] 불과 몇 년 전만 떠올려도 격세지감을 느끼는 요즘, 이런 변화의 속도에 어떻게 맞춰나 가야 하는지 개인이나 기업이나 막막하기는 매한가지일 것이다. 지금과 같이 격동이 몰아치던 150년 전, 찰스 도지슨이라는 무명의 수학강사이자 논리학자가 루이스 캐럴이라는 필명으로 발표한 책이 바로 지금도 널리 읽히는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이다. 6년 후에 속편 <거울나라의 앨리스>가 나왔다.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에서 주인공 앨리스는 희한한 옷차림을 한 하얀 토끼를 따라 토끼 굴로 가게 되고, 그 속에서 맞닥뜨리는 새로운 세계를 이해하려는 과정에서 끊임없이 바뀌고 뒤집힘을 반복한다. 그럼에도 일관된 논리와 폭넓은 스펙트럼으로 인해 ‘어린이용 판타지’부터 ‘수학적 수수께끼가 가득한 작품’까지, 해석과 관점의 여지도 다양하다. 실제로 앨리스 이야기는 심리학부터 경영학, 생물학, 철학 등 다양한 학문분야에서 폭넓게 인용되고 사용되고 있다. 일례로 2008년 세계 금융위기의 조사를 맡았던 한 관계자는 사건을 더 깊이 파고들수록 “은행이 파놓은 토끼 굴로 빨려 들어갔다.”라고 말한 바 있다.

조직문화는 이야기를 도구 삼아 전파시킬 수 있고 또 그래야 한다. 아마존 창립자 제프 베조스는 프린스턴 대학교에 진학하기 전 자신보다 나이대가 조금 낮은 아이들을 위한 교육캠프를 시작했는데, 캠프에 필요한 준비물은 단 하나 ‘독서목록’이었다. 놀랍게도 아이들이 가져간 책은 <반지의 제왕>, <보물섬>, <걸리버 여행기> 등과 같은 이야기책 일색이었다. 리더십이나 팀워크, 감성지능이나 성공을 위한 전략 등을 소개하는 책은 눈을 씻고 찾아봐도 없었다.

좋은 이야기에는 그러한 팀워크, 감성지능, 리더십, 성공을 위한 전략 등이 담겨 있으며, 넌지시 그러나 한층 강력하게 그러한 메시지를 전달한다. 더 나아가 이야기는 그냥 살아나가는 법을 가르쳐주는 것이 아니라 질적으로 잘 사는 방법을 알려준다. 이러한 맥락에서 볼 때 루이스 캐럴이 가공한 세계를 들여다보며 경영에 도움이 될 만한 내용을 찾아보는 것이 전혀 엉뚱한 일은 아닐 것이다. 의미 없는 회의에 들어가 지겨운 두어 시간을 보내는 것보다는 앨리스 이야기를 통해 얻을 수 있는 것이 훨씬 많다. 이 두 권의 책이 ‘마음을 위한 모험의 놀이터’라고 일컬어지는 이유가 바로 거기에 있다.

이 책이 주는 하나의 메시지는 창의력과 상상력은 모든 것에 큰 힘을 발휘한다는 것이다. 창의력은 호기심에서 나온다. 앨리스가 보여주는 ‘창의적인 호기심’은 오늘날 업무환경에 적응해 나가야 하는 우리에게 큰 도움을 줄 수 있다. 상상력의 일부인, 타인을 나와 같이 여기는 태도 ‘공감 능력’을 가치 있게 받아들인다면 엄청난 이점을 가져다줄 것이다. 반면 공감능력이 결여된 경우 가차 없는 역풍이 불어올 수 있다. ‘진퇴양난이자 탈출구가 없는 논리와 비논리의 퍼즐’이라는 뜻의 ‘Catch-22’는 어디에나 널려 있다. 예를 들어 취직을 하고 싶으면 관련 직무경험이 있어야 하는데, 직무경험이 있으려면 우선 취직을 해야 한다. 앨리스 이야기에서도 ‘Catch-22’와 같은 상황이 나온다.

“폐하, 제가 쓰지 않았습니다. 제가 썼다는 증거도 없습니다. 아래 제 서명이 없지 않습니까?”

“서명을 하지 않았다면 자네는 더 불리하지. 뭔가 꿍꿍이가 있었던 게야. 아니면 정직하게 다른 사람들처럼 서명을 했겠지.”

‘말도 안 되는 논리’의 수렁을 빠져나오기 위해서는 창의력이 관건이다. 창의력은 도대체 어디서부터 발동시켜야 하는 걸까? 미국의 세계적인 심리학자 칙센트미하이는 창의적인 사람들이 어떻게 돌파구가 될 만한 아이디어를 떠올리는지 살펴보았다. 결과는 분명했다.

“질문을 제대로, 바로 던지자 아이디어가 재빠르게 샘솟았다.”

참고로 저자 루이스 캐럴은 어느 대학교의 휴게실 담당자가 되자마자 즉시 모든 규칙을 길게 적어 내려갔다. 그리고는 그 규칙을 죄다 없애버렸다. 앨리스 이야기 중에서 가장 유명하고 또 널리 인용되는 장면은 이 책 13장에 소개되고 있는 ‘붉은 여왕과 함께 달리다’일 것이다. 이 경주 장면은 블로그부터 핵확산 문제까지 다양한 상황에 인용되곤 하는데, 경영학적 맥락에서도 많이 차용된다. 특히나 오늘날처럼 조직이나 개인 모두 급변하는 환경에 처해 있는 상황에서는 더욱 의미하는 바가 크다. 그러나 여전히 여왕은 “더 빨리!”라고 외치고 있었다. 앨리스는 그 이상 빨리 갈 수는 없었다.

멈춘 후 앨리스는 자신과 여왕이 시작할 때 서 있었던 그 나무 아래에 그대로 있다는 걸 알았다.

“모든 것이 아까 그대로잖아요! 우리나라에서는 아까 했던 것처럼 오랜 시간 아주 빠르게 달리면 여기가 아닌 다른 장소에 도달하게 돼요.”

“느려터진 나라 같으니! 이 나라에서는 같은 장소에 있으려면 젖먹던 힘까지 다해서, 있는 힘을 다해서 달려야 하는 법이다.”

붉은 여왕의 경주는 생물학에서 진화과정을 묘사하는 데 사용되었고, 비즈니스에도 적용될 수 있는 여지를 제공했다. 1973년 진화생물학자 베일런에 의해 ‘붉은 여왕 가설’이라는 공식용어가 만들어지기도 했는데, 그는 생물의 진화를 군비경쟁에 빗댔다. 생물은 늘 바뀌어야 하며, 끊임없이 진화하는 다른 생물과 끊임없이 변화하는 환경에 맞서 원래 있던 자리를 유지만 하려 해도 그런 각고의 노력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붉은 여왕의 경주가 비즈니스에서 대표적인 사례로는 모방에 모방으로 응수하는 모방대결이 어찌나 치열했던지 ‘1차 브라우저 전쟁’이라는 이름까지 붙은 인터넷 익스플로러와 넷스케이프Netscape의 자웅겨루기가 있다. 과연 기업들이 붉은 여왕의 손아귀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

“뒤로만 작용하다니, 정말이지 빈약한 기억력이구나.”라는 여왕의 대사는 기억이 과거를 충실히 기록해주기 위해서가 아니라 미래를 감당하는 데 도움이 되기 위해 진화했다는 점을 포착하고 있다.

글 | 최병두
서울대 상대 경영학과 출신으로 30대 젊은 나이에 체이스맨해턴은행과 한화증권 국제부 그리고 코오롱그룹 기획조정실에서 근무했으며 지금은 자유기고가로 활동하며 아츠앤컬쳐 편집위원을 맡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