벨기에, 브뤼셀
[아츠앤컬쳐] 벨기에의 그랑플라스 광장은 12세기부터 벨기에의 정치, 경제, 문화의 중심지로 이용되고 있다. 가로 70m, 세로 110m의 광장으로 주변을 수많은 고딕 양식의 건물들(시청, 왕궁, 길드 하우스 등)이 둘러싸고 있다. 1998년에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으며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광장 중 하나로 <레미제라블>을 쓴 세계적 문호인 빅토르 위고가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광장’이라고 극찬했으며 유명한 오줌싸개 동상이 가까이 있고 브뤼셀의 명소들이 거의 모두 이곳에 모여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특히 밤이 되면 광장에 조명이 하나둘씩 켜지면서 환상적인 분위기를 자아낸다.
같은 장소인데 낮의 얼굴과 밤의 얼굴이 너무나 달랐다. 어찌 보면 사람의 얼굴도 마찬가지다. 다시 곰곰이 생각해보니 낮과 밤에 따라 달라지는 건 사람의 얼굴이 아니라 그 사람을 바라보는 내 마음인 것 같다. 낮에는 시선을 두어야 할 곳이 너무 많아 아름다운 것을 앞에 두고도 그 가치를 모르지만, 밤에는 눈앞에 것만 집중하고 찬찬히 살펴보게 된다. 아름다움에 조금 더 민감해지니까. 오늘 그녀와 광장에 마주 앉아 맥주를 마셨다. 세상의 빛은 모두 꺼지고 그녀라는 빛만 켜진 것처럼 아름답게 보였다. 혼자 부끄러움과 설렘에 얼굴이 화끈거렸지만 술기운으로 달아오른 탓에 붉어진 얼굴을 숨길 수 있었다.
그랑플라스 광장에 어둠이 내리면서 파란 하늘은 짙은 흑청색으로 변했다. 광장의 전경이 한눈에 들어오는 구석자리에 앉아 시간이 흐르는 것을 가만히 지켜봤다. 광장은 점점 어둠 속으로 빨려들었다. 밤은 멀리 있는 것도 가깝게 끌어당긴다. 멀리 있는 것은 가까이, 가까이 있는 것은 더 가까이. 그리하여 어둠 속에서는 눈에 보이는 것이 모두 같은 위치에 놓인다. 좁혀진 거리만큼 밤의 사물은 내밀하고 가깝고 적나라했다. 밤이 되면 수천 km 밖의 사람도 곁에 있는 듯이 느껴졌던 이유를 이제야 알겠다. 지금 멀리 있는 그 사람의 안부가 궁금해졌다.
삶과 죽음은 언제나 같은 자리에 있다. 그러나 사는 동안은 죽음을 인식하지 못한다. 마치 공기가 온 세상을 채우고 있지만 느끼지 못 하듯 말이다. 브뤼셀을 대표하는 관광명소 앞에서 요란스럽게 사진을 찍는 수많은 사람들, 유명 와플가게 앞에 늘어선 사람들, 물건을 팔거나 집으로 돌아가는 아이들, 장을 보러가는 노부부의 일상에 끼어 걷다가 오랜만에 걸려온 고등학교 동창의 전화 한 통을 받았다.
친구의 부음을 알리는 황망한 목소리. 마지막 작별 인사도 없이 기나긴 여행을 떠난 친구와 진짜 여행을 떠나와 친구의 마지막을 함께 하지도 못하게 된 나. 우리들의 생은 늘 엇갈림의 연속인가. 낯선 거리에서 그날 나는 내내 혼자 울었다.
피곤하다며 먼저 숙소로 돌아간 그녀가 곁에 없는 것이 다행이라고 생각하면서 한편으론 그녀에게 친구의 이야기를 하며 그녀 앞에서 울고 싶기도 했다.
글 | 배종훈
서양화가 겸 명상카툰과 일러스트 작가. 불교신문을 비롯한 많은 불교 매체에 선(禪)을 표현한 작품을 연재하고 있으며, 여행을 다니며 여행에서 만난 풍경과 이야기를 소소하게 풀어 놓는 작업을 하고 있다. 또, 현직 중학교 국어교사라는 독특한 이력을 지니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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