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 속의 어린이 나라

2016-04-06     아츠앤컬쳐
Philippe-Auguste Jeanron / Les Petits Patriotes / 1830 / Huile sur toile / 101 x 81 cm / inv. FNAC PFH-5689 / Paris, Centre national des arts plastiques en dépôt au musée des Beaux-Arts de Caen / Photo © RMN-Grand Palais / Daniel Arnaudet

 

[아츠앤컬쳐] 19세기 말엽의 파리 미술계 경향을 살펴보면 전시회의 폭증을 확인할 수 있다. 예를 들어 1895년에 미술관을 비롯한 주요기관에서 열린 전시가 총 94건이 등록되었다면, 이로부터 10년 후인 1905년에는 147개의 전시가 기록되었다. 이처럼 전시회가 빠르게 활성화되면서 다양한 테마를 소재로 한 전시가 기획되었다. 그 중 하나의 테마가 바로 ‘어린이’이다. 그때부터 지금까지 ‘어린이’를 테마로 한 전시가 다채로운 각도에서 미술사가들에 의해 선보이고 있다. 그렇다면 화가들이 남긴 작품 속의 어린이들은 어떻게 그려졌을까?

Maurice Denis / La Boxe / 1918 / Huile sur carton / 83.3 x 69cm / Collection particulière / Catalogue raisonné Maurice Denis / Photo © Olivier Goulet

실상 미술사를 거슬러 올라가 보면 어린이를 소재로 작업한 초기의 작품은 성화이다. 서양화에서는 신의 아들, 즉 예수 그리스도를 주제로 수많은 작품이 제작되었기 때문이다. 이어서, 왕가의 자녀들이 작품의 소재로 등장하게 되었다. 이처럼 수 세기 전에는 절대적이거나 권위적인 어린이를 소재로 하였으나, 훗날에는 자연스럽게 일상 속의 평범한 어린이들을 소재로 한 그림이 대거 등장하게 된다. 그렇다면, 평범한 어린이가 작품의 주인공이 되기까지는 어떠한 사회의 변화가 뒷받침되었을까? 이는 그만큼 사람들의 의식이 변화했음이 증명된다. 그림 속 어린이들을 통해 작품이 제작된 당시의 사회 구조 변화와 시민들의 의식의 전환을 실감해 보자.

Jean-Baptiste Siméon Chardin / L’Enfant au toton 1738 / Huile sur toile / 67 x 76cm / Acquis en 1907 / Paris, musée du Louvre, Département des Peintures / Photo © Musée du Louvre, Dist. RMN-Grand Palais / Angèle Dequier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 보면, 프랑스에서는 17세기 말까지 어린이 네 명 중 한 명이 태어난 지 1년 만에 사망했다는 기록이 있다. 이는 건강문제에 대한 소홀함이나 위생관념 부족, 또는 어린이에 대한 관심과 보호가 부족했음을 짐작할 수 있다. 당시의 대표적인 어린이 초상화로는 1639년에 그려진 루이 14세의 초상이다. 이처럼 과거에는 왕가의 자녀들이나 귀족가문의 어린이들을 소재로 한 초상화만이 남아 있다. 그러던 중 1640년대에 들어서 프랑스의 형제 화가 르 넹(Les frères Le Nain)이 시골 아이들을 소재로 그린 작품이 전환점이 되었다. 르 넹 형제의 <새장을 든 아이들과 고양이>라는 작품에는 갈색 톤이 지배적이다. 당시의 소박한 농가와 시골 아이들의 일상을 볼 수 있다. 평범한 옷차림과 일상의 소품들을 담은 작품들이 당시 시민층이나 부르주아 고객들에게 인기가 있었다고 전해진다.

Les frères Le Nain, Louis, Antoine et Mathieu / Enfants avec une cage à oiseaux et un chat / vers 1646 / Huile sur toile / 56.5 x 44cm / Karlsruhe, Staatliche Kunsthalle Karlsruhe / Photo © BPK, Berlin, / Dist. RMN- Grand Palais / Annette Fischer / Heike Kohler

이어 18세기 들어서 프랑스 사회는 다양한 면에서 큰 변화를 경험하였다. 산업화의 초기였던 당시에는 지성인들과 학계에도 큰 변화가 있었다. 더불어 오손도손 가족들과 함께 보내는 시간이 중요시되었다.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아이와 부모를 담은 작품들을 사고자 하는 수요가 증가했다고 한다. 당시의 현격한 사회 변화 중 하나가 어린이 질병을 퇴치하기 위한 의학의 발달, 모유 수유 장려 등을 들 수 있다. 이와 더불어 프랑스 정부는 어머니를 돕고자 보모의 증대를 장려하였다. 이는 모두 어린이의 인권을 높이고 그들에게 더 나은 환경을 제공하려는 취지에서 출발한 것이다. 또한 이러한 운동에 지성인들이 동참했으며 대표적인 사례로 철학자 장 자크 루소가 1762년에 펴낸 <교육으로부터>를 들 수 있다. 궁극적으로, 아이들은 독자적인 인격체로서 보다 나은 대우를 받게 되었고,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어린이를 주인공으로 하는 그림이 많이 나왔다.

Pierre-Auguste Renoir / La Leçon, Bielle, l’institutrice et Claude Renoir lisant / 1906 / Huile sur toile / 65.5 x 85.5cm / Collection Nahmad, Suisse / Photo © Raphaël BARITHEL

샤르뎅의 1738년 작품을 보면 10세 소년이 근사한 복장으로 자신의 서재에 있는 모습이 보인다. 책과 잉크 등의 소품 등을 통해서 소년이 있는 장소가 아이의 서재임을 확인할 수 있다. 소년은 서재에서 책을 읽다가 잠시 지루한 틈을 타서 ‘토통(toton)’이라는 게임을 즐기고 있다. 수줍은 듯 엷은 미소를 띤 소년을 담은 샤르뎅의 이 작품은 18세기 어린이 초상화 최고의 걸작으로 평가되고 있다.

Henri Matisse / Portrait de Pierre / 1909 / Huile sur toile / 40.6 x 33cm / Collection particulière / © Succession H. Matisse / Photo © Ted Dillard Photography

이어 1789년 프랑스 혁명 이후의 어린이들을 보면 마치 꼬마 군인처럼 무장을 한 모습이 눈에 띈다. 순수하고 맑기만 했던 어린이의 이미지에서 마치 전투에 앞장서는 영웅의 이미지로 현격한 변화를 확인할 수 있다. 여류화가 에바 공잘레스의 1870년작을 보면 제복을 입은 군사 어린이를 볼 수 있다. 더불어 어린이 군대의 사회적 인지도도 변화하였는데 1874년부터 군사학교가 설립되어 본격적으로 어린이 군사가 양성되었다.

Fernand Pelez / Un Martyr. Le Apriland de violettes / 1885 / Huile sur toile / 87 x 100cm / Paris, Petit Palais, musée des Beaux-Arts de la Ville de Paris / Photo © Petit Palais / Roger-Viollet

한편, 1830년부터 1870년경에는 소외된 계층의 어린이들을 소재로 그린 그림들이 많이 그려졌다. 대표적인 화가로는 바르비종파의 장밥티스트 카미유 코로, 삽화화가 오노레 도미에, 그리고 만종을 그린 장 프랑수아 밀레를 들 수 있다. 밀레의 그림에는 굴렁쇠를 잡고 있는 어린이와, 아버지가 밭으로 일하러 나간 사이 어머니가 세 아이에게 밥을 주는 모습이 소박한 시골풍경과 함께 담겨 있다.

Pierre Auguste Renoir / L’Enfant à l’oiseau (Mlle Fleury en costume algérien) / 1882 / Huile sur toile / 126.5 x 78cm / Williamstown, Sterling and Francine Clark Art Institute, Massachusetts, États-Unis / Photo © Sterling and Francine Clark Art Institute, Williamstown, Massachusetts, USA (photo by Michael Agee)

그리고 1870년부터 1900년까지는 상반되는 어린이들의 모습들을 그림 속에서 볼 수 있다. 인상파 화가들의 그림을 통해서 부유층 자녀들의 취미생활 모습을 종종 볼 수 있을 뿐 아니라, 거리에서 생활하는 빈곤층 어린이들의 모습도 볼 수 있다. 후자의 경우 10세도 안 돼 보이는 어린이들이 거리의 상인으로 피곤에 지친 모습을 볼 수 있다. 또한 당시에는 파리의 새 도시정책으로 시민 공원이 많이 조성되었던 시기여서 아이들이 정원에서 공놀이를 하거나 뛰어노는 모습도 종종 볼 수 있다.

Pablo Picasso / Le Peintre et l’enfant / 21 octobre 1969 / Huile sur toile / 130 × 195cm / Dation en 1990 / MP 1990-36 / Prêt du musée national Picasso, Paris / Photo © RMN-Grand Palais (musée Picasso de Paris) / Jean-Gilles Berizzi © Succession Picasso 2016

20세기 들어서는 화가들은 영감을 받기 위하여 새로운 것에 눈을 돌리게 된다. 그러던 중 아프리카 예술과 어린이들이 그린 그림에 관심을 갖게 된다. 그 안에서 단순함을 발견하고 미완성된 듯한 형태에서 특유의 아름다움을 보게 된다. 더불어 어린이들의 그림을 선보이는 전시회도 열리게 되었다. 피카소는 1945년에 이 전시를 보고 다음과 같은 말을 남겼다.

“내가 이 어린이들 나이였을 때, 나는 마치 라파엘로처럼 그렸다. 그런데 나는 내 평생을 걸려서 이제 아이들처럼 그리는 것을 터득했다.”

글 | 이화행
아츠앤컬쳐 파리특파원, 파리 예술경영대 EAC 교수
소르본느대 미술사 졸업, EAC 예술경영 및 석사 졸업
inesleeart@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