펠레아스와 멜리장드
침묵과 속삭임이 담긴 드뷔시의 오페라
[아츠앤컬쳐] 한없이 맑고 투명한 것 같은 숲 속의 비극적 사랑 이야기를 다룬 드뷔시의 오페라 <펠레아스와 멜리장드>가 파리 바스티유 국립오페라 무대에 올려져 관심과 찬사를 받으며 막을 열었다. 서양의 오페라를 파리 및 유럽의 극장에서 보아왔지만, <펠레아스와 멜리장드>는 동양인인 필자에게 친숙함으로 자리 잡고 있었다. 동양화에서 말하는 ‘여백의 미’를 보는 듯한 로버트 윌슨의 무대는 파란빛 속에서 투명하게 빛난다. 그의 이러한 무대연출은 무엇보다 작곡가 클로드 드뷔시(1862~1918)와 상징주의 작가 마테를링크(1862~1949)의 대본의 성격과 분위기를 잘 표현해내어 성공적이라 평가받았다.
벨기에 출신의 상징주의 시인이자 수필가였던 마테를링크가 <침묵>이라는 제목으로 쓴 글에서 인용해 보았다. “침묵 속에는 거대한 요소들이 구성되어 있다. 말은 너무 잦아서 때로는 생각을 질식시키고 사고를 멈춰버린다. 물론 말이 차지하는 비중은 크다. 하지만 그것이 절대적이지는 못하다. 사람들 간의 최상의 소통을 위해서 언어를 사용해야 한다는 생각은 버려야 한다. 입술이나 혀는 우리의 영혼의 모습을 표현하는 하나의 수단에 불과하다. 이는 마치 숫자나 번호를 통한 방식과 유사하다. 하지만 꼭 전해야 하는 진실된 것들은 오히려 말을 멈추고, 그 순간에 보이지 않는 것들에 귀를 기울이고 침묵에 집중해야 한다.”
당시 클로드 드뷔시가 남긴 글을 보면 흥미롭다. 제목은 <내가 왜 펠레아스를 쓰는가?>이다. “내가 처음 펠레아스를 접한 것은 거슬러 올라가 1893년이다. 처음 대본을 읽고 의욕에 찼지만, 결국 작업에 대하여 고민하기 시작한 것은 같은 해 말이다. 아주 오래전부터, 나는 극을 위한 곡을 쓰고 싶었다. 하지만 내 곡의 스타일은 너무나 실험적이라서 수차례 시도한 끝에 거의 포기했던 상태였다. 나는 자유로운 음악을 하고 싶었다. 예술의 장르를 막론하고, 자연을 그대로 재현하는 데 그치는 작업이 아니라, 자연과 상상 사이에 존재하는 미스테리한 부분을 표현해내고 싶었다. … 이후 내가 이를 수정하고 다듬은 시간을 합치면 12년이라는 세월을 이 오페라에 바쳤다.”
그렇다. 드뷔시의 음악을 듣고 있노라면 자연의 아름다운 풍광이 머릿속으로 펼쳐진다. 석양의 분홍빛과 보랏빛으로 물들어가는 잔잔하면서 차가운 바다라든가, 안개와 공기 사이의 무한하면서도 막힌 듯한 공간이라든가, 때로는 청명함과 신비로움이 담겨 있는 깊은 숲 속에서 알 수 없는 불안한 떨림도 느껴진다. 그의 음악 세계는 소리를 넘어서 피부로 온도와 습도가 느껴지는 것 같고, 빛깔이 자유롭게 넘실넘실 그려지면서 신비로움으로 가득하다.
그렇다면 이처럼 맑고 투명하면서 압도적인 오페라를 작곡한 드뷔시는 어떤 작곡가라고 후대에서 평가하고 있을까? 그를 두고 인상파와 상징주의의 경계선에 위치해 있다. 또는 인상파 음악과 상징파 음악을 어우른다고들 얘기한다. 실상 드뷔시는 다소 알려지지 않은 젊은 작곡가였는데, 1884년 로마 그랑프리를 수상하면서 세상의 조명을 받기 시작했다. 그 자격으로 얻은 3년간의 빌라 메디치에서의 로마 체류는 당시 예술가들에게는 최고의 포상이라고 할 수 있었다.
로마에서 머무르면서 국가에 그가 제출한 곡 <봄>은 당시 아카데미의 비서실장으로부터 거부당했다. 이유는 “인상주의, 이는 진정한 예술의 세계에서 가장 위험한 적이다”라고 서문에 기록되어 있다. 이 때문에 드뷔시는 인상파 작곡가라는 꼬리표가 붙어 유럽 전역에 인식되어 버렸다. 하지만 드뷔시 정작 본인은 인상파가 아니라는 것을 증명하려고 그의 작곡인생을 바쳤다고 한다.
3년간의 로마 연수를 마치고 돌아온 드뷔시는 상징주의 문인들과 가깝게 지냈다. 그중에는 유명한 프랑스 시인 스테판 말라르메도 속해 있다. 그리고 <펠레아스와 멜리장드>의 대본을 쓴 벨기에 작가 모리스 마테를링크도 상징주의 작가이다. 마테를링크의 작품들의 공통된 특징을 보면 일상생활의 내부에 깃들여 있는 섬세하면서도 신비한 요소들을 정적으로 표현해냈다. 마치 베일에 가려져 있거나, 안개로 자욱하게 덮여 있는 것처럼, 실체를 정확히 파악하기 힘든 몽환적 분이기이다. 그 내면에 흐르는 축은 현실과 인간의 통제를 초월한 운명의 힘에 대한 감각이다.
<펠레아스와 멜리장드>는 전형적인 상징주의 작품이다. 숭고한 듯 잔혹한 듯 전개되는 주인공들의 운명을 보면서 드뷔시의 침묵과 속삭임을 동반한 신비로운 음악 속으로 빠져들게 된다.
글 | 이화행 아츠앤컬쳐 파리특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