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이 14세 앤틱가구 다시보기
[아츠앤컬쳐] 프랑스 하면 무엇이 떠오를까? 관광 코스에 꼭 들어가는 에펠탑, 노트르담 성당, 루브르 박물관, 베르사유 궁전일까? 꼭 먹어봐야 한다는 달팽이 요리와 푸아그라(거위 간)일까? 보르도 와인과 부르고뉴 와인과 곁들여 먹을 수 있는 다양한 치즈일까? 인상파 화가들의 그림일까? 로댕의 생각하는 사람일까? 예술, 철학, 문학, 건축, 정치 등 프랑스 문화는 우리에게 결코 낯설지 않다.
그 중에서도 프랑스 대혁명은 전 세계인들에게 이례적인 역사적 사건으로 기억된다. 그렇다면 이처럼 센세이션한 혁명이 일어난 데는 어떤 이유가 있었을까? 바로 프랑스 왕권의 거침없는 영향력 과시와 귀족들이 누린 사치와 특권의식이 백성들을 화나게 한 것이다. 거슬러 올라가서 프랑스 왕권이 가장 비약적으로 강화되었던 시기인 루이 14세의 화려한 생활을 앤틱가구들 사이로 살펴보면서 문화의 뿌리를 이해하면 그들의 현재를 이해하는 것이 쉬워질 것이다.
유수의 역사적인 통치자가 그러하듯, 태양왕 루이 14세의 절대왕정이 화려하고 강력했던 만큼 그에 대한 후대의 평가는 찬파와 반대파로 확연히 나뉜다. 루이 14세(1638~1715, 재위 1643~1715)는 파리 근교에 고즈넉한 도시인 생제르맹앙레에서 태어나 베르사유 궁전에서 숨을 거두었다.
루이 14세와 더불어 기억해야 할 인물들은 그의 아버지 루이 13세 서거 후 섭정으로 나라를 다스린 안 도트리슈, 루이 14세와 마리 테레즈 도트리슈의 결혼을 배후에서 성사시킨 마자랭 추기경이 있다. 참고로, 루이 14세의 어머니 안 도트리슈(1601~1666)는 스페인 공주 출신으로 1643년부터 1651년까지 섭정을 맡았고, 1651년부터 마자랭 추기경(1602~1661)에게 섭정을 이양하였다.
한편, 루이 14세의 아내 마리테레즈 도트리슈(1638~1683)는 스페인 태생으로 아버지는 합스부르크가의 스페인 왕 펠리페 4세이며 어머니는 프랑스의 왕 앙리 4세와 마리 드 메디시스의 딸인 엘리자베스 드 부르봉이다. 이에 루이 13세는 그녀의 외삼촌이었으며, 훗날 남편이 된 루이 14세는 외사촌 오빠가 된다.
루이 14세 부부의 결혼 생활은 결혼 첫해에는 금실이 좋았지만 이내 왕은 평생 수많은 정부들과 염문을 뿌린 것으로 유명하다. 그러나 왕위 계승을 위해 후계자를 봐야 되는 것을 염두에 두고 규칙적으로 아내의 침실을 방문했다고 전해 내려온다. 왕비는 지나치게 아이처럼 천진하여 복잡하고 다난한 프랑스의 궁정 생활에 잘 적응하지 못한 것이다. 그녀는 신앙이 독실했으며, 정치와 문학에는 전혀 관심이 없어서 카드놀이로 시간을 보냈다고 한다.
반면 루이 14세는 문화와 예술이 나라를 다스리는데 얼마나 중요한지 마자랭 추기경으로부터 교육을 받아서 잘 알고 있었다. 왕의 이미지를 높이기 위해서는 예술가를 보호하고 문화사업을 장려하는 것이 필수임을 인지하고 이를 적극적으로 이행하였다. 왕립 아카데미 설립은 물론 훗날 프랑스 오페라가 탄생하는데 기반을 마련하였다.
여지없이 루이 14세는 화려하고 웅장한 가구를 좋아했다. 이후의 앤틱가구와 비교해 보았을 때 루이 14세의 앤틱가구는 빛깔이 화려하고 장식으로 뒤덮여 있으며 마치 조각품처럼 입체적이다. 은은한 미나 다소 밋밋한 가구는 철저히 배척당했다고 하니 태양왕답다. 가구의 목재는 수입목이 아닌 프랑스 영토에서 생산되는 목재를 사용하였다. 무엇보다 특징적인 것은 금지로 목재를 덮어 번쩍번쩍 광택을 과시하였다.
더불어 루이 13세 때 최초로 등장했던 합판 방식으로 표면을 장식하는 ‘마케트리’ 기술은 루이 14세 때 화려한 꽃을 피웠다. 다양한 색상의 목재로 가구 표면에 리듬감을 주거나, 구리나 은을 비롯한 금속으로 포인트를 주었다. 그뿐만 아니라, 상아나 조개류의 껍질, 거북이 등껍질 등을 활용하여 가구의 개성을 강조하고 가치를 높였으니 가히 창의적인 디자인이 발달한 시기라 할만하다.
또한, 도금 브론즈를 전격 활용하여 장식의 견고함을 높이고 다양한 모티브를 연출할 수 있었다. 그 외에도 중국문화의 영향을 받아서 옻칠을 한 가구를 통하여 독특하면서 이국적인 아름다움을 추구하기도 했다. 한편, 당시에는 생활에서 사용하는 것이 목적이 아니라 오로지 장식용으로 멋들어지게 고안된 가구가 별도로 제작되었으니, 심플하고 시크한 미를 추구하는 요즘과는 상반된다고 볼 수 있다.
루이 14세 앤틱가구의 또 다른 특징은 가구의 다리 부분에 조각기법으로 장식 효과가 더해진 것이다. 의자군의 가구를 살펴보면 크게 세 가지로 나눌 수 있는데, 팔걸이가 있으면서 안락함을 추구하는 소파라는 뜻의 ‘포테이유(fauteuil)’와 팔걸이가 없는 의자라는 뜻의 ‘쉐즈(chaise)’, 그리고 등받이가 없는 스툴 타입의 ‘타부레(tabouret)’이다. 불어로 스툴을 타부레라고 하는데 루이 14세 당시에는 ‘플루와양(ployant)’이라 불렀다고 한다.
높이가 매우 낮은 ‘플루와양’은 접을 수도 있게 제작되었으며 주로 화려한 천으로 쿠션방석처럼 앉는 부분이 제작되었다. 베르사유 궁전에는 1,300여 개의 ‘플루와양’이 있었는데, 이는 왕과 고위직을 제외하고는 모두 플루와양에 앉았기 때문이다. 당시의 삶은 신분의 수직 구조가 가구의 선택에 확연히 반영되었다.
글 | 이화행
아츠앤컬쳐 파리특파원, 파리 예술경영대 EAC 교수
소르본느대 미술사 졸업, EAC 예술경영 및 석사 졸업
inesleeart@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