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지의 제왕 ‘골룸’ 이중인격은 바그너의 그림자?
[아츠앤컬쳐] 톨킨이라는 영국 작가가 쓴 ‘호빗’(1937) 그리고 ‘반지의 제왕’(1954 ~1955) 3부작 시리즈는 피터젝슨 감독의 영화(2001~2003)로 제작되어 세계적으로 큰 흥행을 거두며 판타지 영화의 극한을 보여주었다. 이 영화를 보면 ‘절대반지’의 힘을 빌려 세상을 지배하게 되지만 반지를 갖는 사람들은 그 힘에 결국 지배를 받게 되고 자신의 본성을 잃는 부작용이 생긴다. 그래서 반지의 힘을 적게 받는 순수한 이가 반지를 모르도르 화산의 용암 속으로 던져 넣어야 반지가 가진 어둠의 힘을 없앨 수 있다는 스토리인데 매우 신비한 이 판타지 소설은 2차 세계대전 이후 ‘나니아 연대기’와 함께 영국의 많은 어린이와 청소년들의 상상력을 키워 준 작품이었다. 영화 ‘반지의 제왕’이 나오기까지 그 상상력을 화면에 옮기는 기술력의 발전을 50년 가까운 세월을 기다려야만 했을 정도다.
그런데 오페라에도 이와 매우 흡사한 스토리가 있는데 바그너의 ‘반지’ 시리즈 4부작⑴이다. 이 작품은 요즘으로 치면 복잡한 장치를 갖춘 4D 전문 상영관처, 바그너의 상상력을 특수효과 무대장치를 통해 가능케 한 전문극장으로 만들어진 독일 바이로이트 축제 극장에서 1876년에 전곡 공연되었다. 이런 사실로 보면 기술적으로 어려운 판타지 오페라를 생전에 무대에 올린 바그너의 열정과 치밀함은 정말 대단했었다. 요즘 영화감독들이 대본작업을 통해 미리 촬영 앵글까지 생각해 작업하는 원리와 비슷하다.
두 ‘반지’ 시리즈 작품에서 등장하는 유사점으로 보면, 절대반지의 존재와 지크프리트의 명검 ‘노퉁’과 프로도를 지켜주던 푸른 빛을 내는 칼, 괴기한 모습과 이중인격의 골룸과 바그너의 거인 파프너, 여행자인 간달프의 모습과 보탄⑵이 인간세상에서 변장하고 돌아다닌 방랑자 모습, 바그너 시리즈에 등장하는 지하세계(니벨룽겐)의 알베리히와 반지의 제왕의 오크들의 모습, 결국 반지는 온 곳으로 돌려보내야 세상에 평화가 온다는 설정, 반지의 힘을 견디는 순수한 호빗과 두려움을 모르는 인간 ‘지크프리트’라는 점에서 같은 이야기를 영국과 독일이라는 다른 장소로 설정해 놓은 것 같다는 인상을 깊게 받는다.
바그너의 작품은 피터 잭슨이 만든 영화보다도 긴 16~17시간의 공연시간을 자랑한다. 물론 4일에 걸쳐 보는 오페라이지만 1회 평균시간은 4시간을 넘어선다. 3대에 걸친 이 장대한 스토리를 줄여서 간단히 말해보면 라인강에 사는 세 처녀의 아름다움에 빠져 지하세계의 알베리히는 그녀들에게 환심을 사려고 노력한다. 하지만 그녀들에게 무시당한 알베리히는 사랑을 못 얻을 바에야 그녀들이 지키고 있던 황금에 욕심을 낸다. 그 황금으로 반지를 만들어 손에 끼우면 세계를 지배할 힘을 갖는다는 이야기에 황금을 훔쳐가 절대반지를 만든다.
이 반지의 소문은 신들에게도 들어가 신들의 우두머리 보탄이 반지를 얻게 된다. 마음에는 안 들지만 신들의 성을 축조한 대가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거인족에게 반지가 넘어가게 되고 파프너라는 거인이 반지에 눈이 멀어 형을 때려죽이고 반지의 주인이 된다. 하지만 반지를 만든 알베리히의 저주로 반지의 소유자들은 차례로 멸망을 맞을 위기에 처하고 신들의 세계를 멸망으로부터 구할 두려움을 모르는 인간을 선택하는 과정에서 보탄의 인간 자녀들이 등장하는데 결국 손자인 지크프리트에 의해 반지를 쟁취하는 데 성공하지만 결국 그도 저주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최초 반지를 만든 알베리히의 아들 하겐의 창에 유일한 약점인 등을 찔려 죽고 만다.
신들의 성은 불타버리고 결국 반지는 보탄의 딸이며 아홉 여전사(발퀴레) 중 보탄의 잔인한 명령을 거부하고 깊은 잠에 빠지는 형벌을 받았지만 지크프리트의 키스로 다시 깨어난 여인 브륀힐더(결국 지크프리트의 이복 고모)에 의해 황금의 주인인 라인강의 세 처녀에게로 다시 돌아간다는 줄거리이다.
이 시리즈는 바이로이트 축제 극장에서 공연되며 많은 창작자들의 마음에 핵폭탄을 터트렸다. 마치 1600년 피렌체의 메디치 가문의 결혼식에서 올라간 오페라 ‘유리디체’를 보고 몬테베르디 등 당대의 많은 작곡가들이 오페라 작품을 발표하며 오페라 빅뱅이 시작된 것처럼 근대 오페라는 바그너의 오페라에서 얻은 영감으로 시작되었다고 할 수 있을 정도로 당시 유럽의 많은 작곡가들이 이 공연을 보러 독일 바이에른 주의 작은 마을 바이로이트로 모여들었다. 이렇게 오페라뿐 아니라 *톨킨 같은 후세의 작가들도 바그너의 작품을 통해 알게 모르게 영향을 받았던 것이다.
매 여름 세계 오페라계의 이목이 집중되는 세계적 축제가 되어버린 바이로이트 바그너 축제는 바그너의 추종자들뿐 아니라 뭘 좀 아는 사람들이 죽기 전에 이루고 싶은 ‘버킷 리스트’에 꾸준히 올라가고 있다.
황금은 지금의 고도 자본주의가 아니더라도 예나 지금이나 사람들을 완전히 다른 모습으로 바꾸어 놓는 힘을 가지고 있다. 아니면 황금이 진정한 우리의 이중인격을 발견하게 하는 도구로 쓰이는 것인가? 반지를 차지하기 위해 친구를 죽인 골룸(반지의 제왕)의 모습이나 형을 죽인 파프너(라인의 황금)의 모습이 우리의 모습이 아니었으면 하는데 자꾸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의 모습과 오버랩 되는 건 왜일까?
⑴ 1. 라인의 황금 2. 발퀴레(보탄의 아홉 딸들) 3. 지크프리트(보탄의 손자이며 인간 영웅) 4. 신들의 황혼
⑵ 북구 유럽 신화에 등장하는 오딘과 동일 신, 바그너의 오페라에서는 신들의 대표이며 규율의 신, 한번 내뱉은 약속은 어떠한 상황에도 꼭 지켜야 한다는 규율 때문에 신과 인간계를 구할 거라고 믿었던 자신의 아들 지그문트를 죽게 만들고 자신의 명령을 어긴 브륀힐더에게 불의 장막 속에서 영웅의 키스로만 다시 깨어날 수 있는 형벌을 내린다.
*물론 작가 톨킨은 죽을 때까지 표절을 완강히 부인했다.
신금호
경기도 교육연수원 발전 전문위원
성악가, 오페라 연출가, M cultures 대표
서울대 음악대학 / 영국 왕립음악원(RSAMD) 오페라 석사
영국 왕립음악대학(RNCM) 성악 석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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