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훈숙 Julia H. Moon
유니버설발레단 단장
[아츠앤컬쳐] 최현철 유니버설발레단 창단 30주년을 진심으로 축하합니다. 감회가 어떠신지요?
문훈숙 30년. 돌이켜보니 참 멀고도 험한 길이었네요. 지금은 70여 명의 무용수와 50여 명의 스태프가 상주하고 있는 최고 수준의 발레단의 모습을 갖추고 있지만, 창단 당시인 1984년에는 시작이 초라했어요. 그 동안 유니버설발레단과 함께 한 모든 무용수와 스태프들이 최고가 되겠다는 열정과 꿈을 가지고 흘린 땀과 눈물, 그리고 끊임없는 노력이 있었기에 이런 기쁘고 영광스러운 순간을 맞이하게 될 수 있는 것이라 생각해요. 그분들의 노고에 감사할 따름입니다.
최현철 유니버설발레단만의 정체성이라고 해야 할까요? 색깔이라고 하면 뭘까요?
문훈숙 유니버설의 스타일은 섬세함이에요. 화려하고 스케일이 큰 것도 좋지만, 작은 디테일에도 손이 가야지 명품이 되는 법이니까요. 전 그런 부분들을 많이 고집하는 편이에요. 무용수, 의상, 조명, 장치 등 하나하나 세심한 정성을 담는다고 할까요.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부분 중 하나가 정성이죠. 같은 작품을 올리게 되더라도 그냥 무대에 올리는 것이 아니라, 극진히 정성을 들여서 올려야 하거든요.
최현철 직접 뵈니까 카리스마도 느껴지네요. 우리나라에서 ‘영원한 지젤’로 불리시잖아요. 89년도 키로프발레단 <지젤> 공연 당시 일곱 차례 커튼콜로도 유명했는데요. 이런 닉네임이 어떻게 생기게 되셨죠?
문훈숙 카리스마까지는 아니고요.(웃음) 현역 무용수로 활동할 때는 가만히 서 있기만 해도 내가 에너지를 발산하고 있다는 느낌이 있어요. 하지만 일상생활이나 경영을 하면서는 그런 게 없죠. 그리고 ‘지젤’이라는 캐릭터의 성격이 저랑 비슷하다고 해야 할까요. 좋게 말하면 순박하고 소박한 캐릭터가 저랑 맞았던 것 같아요.
최현철 경영자로서 15년의 세월이 흘렀습니다. 무대가 그립지는 않나요?
문훈숙 그렇지는 않고요. 사실 무대보다 연습실이 그립긴 해요. ‘그냥 음악에 맞춰 움직이고 싶다’ 이런 거죠. 지금도 음악을 들으면 그 음악을 표현하고 싶어요. 아마 이 부분은 할머니가 돼서도 그러지 않을까요.(웃음) 물론 무대에서 표현할 수도 있겠지만, 무대에 서고 싶은 생각은 없어요. 너무 어렵고 함부로 설 수 없는 것이 또 무대니까요. 내가 만약 어렸다면, 당연히 무용수를 선택하겠죠. 육체적으로는 너무 힘들지만 한 가지에 몰두하면서 무언가를 만들어 낸다는 게 좋아요.
최현철 유니버설발레단의 창작발레에 대한 특별한 애착이 있으실 듯해요.
문훈숙 ‘심청’, ‘춘향’, ‘흥부놀부’. 3부작을 만들면 재밌겠다고 생각했어요. 심청은 3막짜리 고전 클래식에 맞춰 만들었고, 춘향은 2막짜리 드라마 발레로 만들었죠. 그래서 흥부놀부는 1막으로, 그리고 토슈즈도 안 신는 완전한 모던 발레로 만들고 싶어요. 아주 재밌게요. 각각 다른 세 작품을 다 만들면 숙제가 끝나지 않을까 싶어요. 사실 저희 발레단은 86년도 동남아를 시작으로 98년부터 미국, 99년부터는 유럽까지 해외공연을 해오고 있어요. 그때마다 ‘심청’은 항상 가지고 나가죠. 우리 유니버설발레단의 이름을 잘 모르던 시절이 있었어요. 그래서 관심을 끌기 위해서 창작발레를 만들게 됐죠. 우선 외국 사람들이 익숙할 만한 작품, 백조의 호수와 같은 클래식발레로 평가를 받은 뒤에 심청을 보여줬어요. 그랬더니 반응이 달라지더라고요. 이제는 우리도 기반이 닦여졌기 때문에 우리만의 고유 작품들을 선보여야 한다고 생각해요. 86년도 ‘심청’으로 창작발레의 모델을 만들어준 ‘에드리언 델라스’ 감독께 감사하죠. 하지만 한국문화와 발레를 조화롭게 배합하는 것이 생각보다 쉽지 않은 작업이에요.
최현철 ‘유니버설’ 발레단이 한국을 알리는 홍보대사네요.
문훈숙 초대 이사장이 내걸었던 구호가 <한국발레 세계정상!!>이지요. 그러기 위해선 먼저 세계무대에서 평가를 받아야 했죠. 평가를 겸허하게 받아들이고 또 도전을 했어야 했어요. ‘유니버설’이란 이름은 설립자가 정해준 이름이에요. 발레용어는 어딜 가나 똑같죠. 유니버설 언어죠. 그리고 저희 발레단은 초반에는 러시아 무용수들이 많았지만, 지금은 남아공, 일본, 중국, 캐나다, 대만, 이탈리아, 카자흐스탄 등 구성원의 국적이 다양해요. 우리 무용수들과 외국 무용수들이 함께 문화적인 마인드를 서로 공유할 좋은 기회죠. 한국 아이들은 돌고 뛰고 동작만 잘하면 된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는데 반해 외국의 뛰어난 무용수들은 작품을 깊게 생각하거든요. 연극적인 측면이 뛰어나요.
최현철 세계발레 역사가 400년입니다. 국립발레단이 50년 유니버설 30년이 됐고요. 한국 발레의 수준이 어느 정도라고 보시나요?
문훈숙 이번에 남미에 공연을 갔었는데요. 남미의 극장장이 한국 연습실에 와서 직접 수준을 확인하고 초청을 했어요. 유니버설의 트레이닝 수준은 상당히 많이 올라와 있어요. ‘키로프’, ‘선화’ 아카데미에서 배출되는 무용수들이 이미 세계 발레단에 입단하는 건 기본이죠. 요즘 친구들을 보면 체격도 너무 좋아졌고요. 그런데 아직 어리니까 겉모습보다는 내적으로 좀 더 성숙해져야 될 필요는 있죠. 테크닉만이 아닌 문화적으로 뭔가 깊이 있게 내면을 채우고 성숙하게 표현해내는 게 중요하니까요.
최현철 앞으로 유니버설 발레단을 어떻게 꾸려나가고 싶은지, 경영자로서의 계획을 말씀해주시죠.
문훈숙 경영자로서 제 역할이 있다면 유니버설을 설립한 창립자들과 후대를 이어줄 중간 다리 역할을 잘 해 나가는 것이라고 생각해요. 전통과 역사를 후대에 잘 연결시켜줄 수 있게 하는 것. 그게 제 역할이죠. 발레는 영상으로 나타나지 않는 것들이 너무나도 많아요. 지도를 할 때, 전통과 노하우가 제대로 전달이 되지 않으면 후대에 가서 전통을 너무 쉽게 잃어버리게 되죠. 발레는 “하루를 쉬면 선생이 알고 삼일을 쉬면 모든 사람이 안다”는 말이 있어요. 조금만 소홀히 하면 발레의 질이 금방 낮아지죠. 경영자로서 나의 책임은 모든 것을 체계화해서 잘 보존하고 내가 없어도, 다음 세대들이 우리의 전통과 역사를 잘 이어나갈 수 있도록 하는 거예요. 그게 내가 경영자로서 가장 중점을 두는 부분이죠. 겉으로의 화려함도 좋지만, 차근차근 내면의 실속을 다지고 전통을 잃어버리지 않게 하는 시스템을 만들어야죠.
최현철 오늘 말씀 감사합니다.
대담·글 | 최현철 사진 | Bo-Ha Ki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