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켈란젤로 안토니오니의 '정사'

새로운 이탈리아 영화 1960년대 이후

2014-01-16     아츠앤컬쳐

 

[아츠앤컬쳐] 1960년대를 대표하는 이탈리아 영화들은 루키노 비스콘티, 페데리코 펠리니, 미켈란젤로 안토니오니 등 전후 네오리얼리즘에 뿌리를 둔 경력 있는 감독들에 의해 만들어졌다. 이들의 영화는 왕성한 의욕을 지닌 신진 감독들에게 미래의 발전 방향을 제시해 주었다.

2차 대전으로 인해 정치, 경제, 사회적으로 큰 변화를 겪으면서도 놀라우리만큼 빠른 회복속도를 보였던 이탈리아는 인간의 안락한 삶을 위해 분주히 움직였다. 하지만 부자들은 자신이 선택한 대로 인생을 누릴 수 있기 때문에 도덕적 진공상태에 빠져 있었고, 경제의 기적은 전혀 무의미한 쾌락주의자들을 양산했을 뿐이다.

비스콘티, 펠리니, 안토니오니 감독의 관심은 하층계급과 그들의 빈곤에서 상층 계급과 그들 사이에서 매우 명백하게 발견되는 현대 생활의 불만족스러움으로 옮겨가기 시작했다. 스캔들 속에서도 대성공을 거둔 비스콘티의 <로코와 그의 형제들>, 칸영화제에서 황금종려상을 받은 <달콤한 인생>, 대중들의 야유에도 불구하고 심사위원 특별상을 받은 <정사>가 이때의 영화들이다.

비스콘티를 제외한 두 감독은 프랑스 누벨바그의 혁신적인 테마나 스타일을 어느 정도 공유하고 있다. <로코와 그의 형제들>은 멜로드라마적인 성격과 사건을 강조하는 점에서 일반적인 네오리얼리즘의 원칙을 벗어나고 있다. <달콤한 인생>과 <정사>는 주제나 스타일에서 누벨바그와 동일한 점이 많다. 거기에는 사르트르나 까뮈의 작품, 파베세의 소설에서 유래하는 실존주의적 공동 토대가 있었다. 이것은 의사소통의 불능과 소외를 강조한 사상이다. 세계를 신에 대한 믿음이 사라지고 인간의 사랑이 부재하는 시대로 파악한다는 점에서 베르히만의 작품세계와 유사하다. 새로운 이탈리아 영화들은 서술 구조 면에서 프랑스 영화와 마찬가지로 느슨하게 구성되었다.

삶의 예술가 안토니오니 감독
네오리얼리즘 영화들을 비평하는 평론가이자 대본작가로 활약했던 미켈란젤로 안토니오니는 다수의 기록 영화와 단편을 연출했다. 그의 작품들 대부분은 중 상류층의 가치와 인간 상호관계를 다루고 있다.

정열과 모호성, 파열과 불균형 혹은 관계 끊기 등 안토니오니의 영화는 안토니오니적 나레이션을 구성하며 분해하는 <정사>에서 시작돼 점점 더 복잡해진다. 안토니오니의 세계는 펠리니의 격정적인 세계와 대조를 이룬다. <달콤한 인생>과 <정사>는 똑같은 사회계층과 비슷한 테마를 담고 있는데, 이러한 경향은 이후의 대표작에서도 계속된다. 펠리니 영화의 기저에 가톨릭 휴머니즘이 놓여 있다면, 안토니오니는 후기 종교적인 마르크시즘과 실존주의적 지식인의 관점을 표명한다. 그의 영화의 내러티브 구조는 모더니티의 형태를 규범적으로 보여준다. 시작도 끝도 없는 줄거리에 엄격한 인과 관계도 일관성도 없으며, 부차적인 에피소드가 있는 마무리도 없다. 그는 상투적인 장르를 해체시킨다. 영화를 통해 안토니오니는 삶의 모든 측면을 균형 있게 통제할 수 있는 예술가였다.

‘인간적인 것’과 ‘배반’으로의 모험 <정사>
안토니오니의 1960년 작품으로 원제목의 뜻은 ‘모험’이라는 뜻이다. 이 영화는 베니스국제영화제에서 수상하는 등 작품의 우수성을 인정받지만, 관객들에게는 야유와 외면을 받은 영화이다.

요트 여행 중 안나라는 여자가 실종된다. 안나의 여자친구 클라우디아와 애인 산드로가 그녀를 찾아다닌다. 그러던 중에 두 사람은 연인이 되는 이야기이다. 2시간 20분가량 아주 느슨하게 흘러가는 영화는 안나의 실종을 아무것도 아닌 것으로 다루고 있으며, 실종에 대한 어떤 해결이나 결과도 보여주지 않는다. 한 사람의 실종에 대해서 여자 친구와 애인이 가질법한 걱정과 죄책감은 영화에서 전혀 찾아볼 수 없다. 하지만 그들의 침묵, 미세한 움직임, 공허한 표정, 방향을 잃은 자태는 완벽하게 아름다운 화면구성과 길고 짧은 리듬감을 가진 촬영과 편집의 힘에 의해 스스로 많은 이야기를 풀어놓는다. 플롯 자체가 이 영화를 이끌어가는 것이 아니라 관객 스스로가 비어있는 듯한 화면과 인물, 배경과의 관계를 읽으면서 이야기를 만들어가는 것이다.

이 작품은 인간과 인간 사이에서 벌어지는 배신행위와 원인을 늘어놓으면서 현대인의 성적인 방향 상실보다는 커다란 사회적 역기능을 설명하고 있다. 주인공 클라우디아가 산드로의 약점에 연민을 느끼고, 산드로가 클라우디아를 배반하려는 자신의 욕구에 비애를 느끼는 것은 인간적인 화해와 동정의 마지막 순간을 향해 나아가는 것이다.

이 영화는 ‘사랑’, ‘신뢰’, ‘의무’와 같은 정통의 개념들을 현대세계와 싸우게 한다. 등장인물들은 안락하지만 정신적으로 불만족스러운 상황으로부터 일시적인 위안을 얻기 위한 목적 없는 모험 L’avventura에 사로잡혀 있다. 산드로가 주는 교훈이 배반을 피할 수 없게 만드는 인간적인 약점을 발견하는 것이라면, 클라우디아가 주는 교훈은 배반이 인간 삶의 실제이며, 그 사실을 무시하는 것은 자신을 인간적인 것으로부터 차단시키는 행위이다. ‘인간적인 것’과 ‘배반’을 동의어로 취급하는 이 영화는 산드로와 클라우디아를 출발점으로 데려오는 여행이자 모험이다.

정란기
이탈리아 문화와 영화를 사랑하는 단체인 이탈치네마(italcinema.com), 뉴이탈리아 영화예술제(www.ifaf.co.kr)를 주최하는 등 이탈리아와 한국과의 문화교류를 위한 일을 하고 있다. 엮은 책들과 역서로 <영화로 떠나는 시네마천국_이탈리아>, <난니모레티의 영화>, <비스콘티의 센소_문학의 재생산>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