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그말리온’의 사랑
마음은 힘이 세다
[아츠앤컬쳐] “엄마 손은 약손, 엄마 손은 약손…” 어릴 때, 배가 아프면 배를 쓸어주던 어머니의 손길을 누구나 기억한다. 어릴 때는 소화 기능이 약해서 그런지 배가 참 자주 아팠다. 그럴 때면 어김없이 어머니 손이 아픈 배 위에 얹어졌고 “엄마 손은 약손”이라는 어머니 목소리와 함께 따뜻한 어머니 손길이 느껴지곤 했다. 어머니 손이 아픈 배를 만져주면 정말 신기하게도 배가 낫곤 했다. ‘어머니 손에 약이 들어있나?’ 신기했다. 그것은 곧 마음의 힘이다. 어머니의 따뜻한 손이 닿을 때 전해지는 위로와 위안, 그리고 어머니의 사랑이 아픔을 치유해준 것이다. 이마에 상처가 나도 어머니가 호오~ 불어주면 다 나은 것 같았고, 마음이 찢어지게 아파도 어머니가 안아주시면 그런대로 견딜 만했다. 마음의 힘은 그렇게 강한 것이라고, 사랑은 기적을 낳는다고 전해주는 신화 이야기가 있다. 피그말리온의 사랑 이야기다.
신화에서 나온 용어 중에 ‘피그말리온 효과’라는 말이 있다. 무슨 일이든 기대한 만큼 이루어진다는 것을 말한다. ‘피그말리온 효과’는 교육학 쪽에서도 많이 쓰이는데, “잘한다, 잘한다”라고 칭찬을 하면 용기를 얻어서 더 잘하게 되는 효과를 뜻한다. 반대로 ‘스티그마 효과’도 있다. ‘스티그마’는 오명, 치욕, 오점이라는 뜻을 가진 단어인데, “안돼, 안돼”하다 보면 결국 안 되는 게 바로 ‘스티그마 효과’다.
피그말리온은 키프로스 섬에 사는 조각가였다. 그는 ‘지상의 헤파이스토스’라고 불릴 정도로 뛰어난 조각가였는데 여성에 대한 혐오증이 있었다. 그는 평생 혼자 살겠다고 결심하며 조각에만 몰두했다. 어느 날 피그말리온은 상아로 여자의 조각상을 만들었다. 그 상아 조각은 너무나 잘 조각되어있어서 마치 살아있는 것처럼 보였다. 수줍은 듯 다소곳이 서 있는 그 상아 처녀는 그 어떤 여인보다 아름다웠다. 피그말리온은 아름다운 상아 처녀를 보고, 보고, 또 보았다. 그녀를 보고 있으면 행복했다. 그는 갈망했다. 살아있는 여자라면 얼마나 좋을까. 그녀의 체온을 느낄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녀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어느 날 피그말리온은 고백했다. “사랑합니다.” 조각상인 그녀가 들을 리 없지만 그래도 터져 나오는 고백을 주체할 수 없었다. 그는 상아 처녀의 몸을 안았다. 입맞춤했다. 꽃다발을 바쳤다. 목걸이를 걸어주고 귀걸이를 달아주었다. 아름다운 옷을 입혔다. 편안한 침대를 만들어 그녀를 눕게 했다. 그런데 그녀를 사랑하면 할수록 허무함이 커져만 갔다. 평생 혼자 살겠다고 결심한 그였지만, 이제는 결혼하고 싶었다. 그의 신부는 오직 상아 처녀여야 했다.
섬의 가장 큰 명절이 돌아왔다. 그 섬은 아프로디테가 대지 위에 첫발을 디딘 곳이었다. 키프로스 사람들은 그곳에 아프로디테 신전을 세우고 해마다 큰 축제를 벌였다. 그 축제일에 사람들은 신전에 나가 제물을 갖다 바치며 기도했다. 피그말리온도 신전으로 갔다. 정성껏 제물을 바치고 여신에게 경배를 드렸다. 그리고 기도를 올렸다. 차마 조각상과 결혼하게 해달라는 말은 하지 못했다. 그 대신 조각상과 비슷한 여인과 결혼하게 해달라는 기도를 올렸다. 피그말리온의 기도는 그 누구보다 간절했다.
피그말리온은 기도를 올린 후 집으로 돌아와 언제나처럼 상아 처녀에게 다가갔다. 그녀에게 몸을 구부리고 입을 맞추었다. 그런데 놀라운 일이 일어났다. 늘 차갑기만 하던 상아 처녀의 입술이 따뜻했다. 놀란 피그말리온은 입술을 떼고 손으로 만져보았다. 딱딱하던 입술이 부드러웠다. 피그말리온은 떨리는 손으로 가슴을 만졌다. 상아 처녀의 몸이 점점 따뜻해졌다. 그 순간 상아 처녀가 두 눈을 떴다. 그리고 얼굴을 붉히며 수줍게 피그말리온을 바라보았다. 피그말리온의 오랜 소원이, 안타까운 그리움이, 속이 타는 갈망이 이루어지는 순간이었다.
여신 아프로디테는 간절히 기도를 올리는 피그말리온을 오랫동안 지켜보고 있었다.그의 소원이 얼마나 간절한지 아프로디테는 그의 소원을 들어줄 수밖에 없었다. 피그말리온은 인간 여인으로 환생한 상아 처녀를 품에 안았다. 피그말리온은 그녀에게 ‘우유 빛깔의 여자’라는 뜻의 ‘갈라테이아’라는 이름을 붙여주었다. 피그말리온은 갈라테이아를 안고 신전으로 달려갔다. 그리고 아프로디테 여신의 축복 속에서 결혼했다. 피그말리온과 갈라테이아는 그 후로도 오랫동안 행복하게 살았다.
간절히 원하는 것은 이루어진다는 의미로 인용되는 ‘피그말리온 효과’는 우리에게 마음의 힘을 전해준다. 마음이 가는 방향으로 운명도 간다. 마음이 지극하면 하늘도 움직인다고 해서 ‘지성이면 감천’이라고도 한다. 마음의 힘은 아주 강하기 때문에 기적을 일으킨다. 사랑하고 믿어주는 마음은 기적을 낳는다.
피그말리온의 이야기는 또 하나의 메시지를 전해준다. 사랑은 조각상처럼 만들어가는 과정이다. 그리고 한없이 아껴주는 것이고 하염없이 기다려주는 일이다. 아름다운 갈라테이아는 어느 날 갑자기 눈앞에 나타난 것이 아니었다. 끝없는 기다림과 베풂과 이해 속에 만들어진 것이었다. 그런데 우리는 사랑을 찾는 데만 골몰하는 것은 아닐까.
사랑은 찾는 것이 아니다. 구하는 것이 아니다. 줍는 것이 아니다. 그 과정이 비록 안타깝고 슬프고 아프다고 해도, 기다림의 과정이 애가 타는 시간들이라고 해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랑은 만들어가는 것이다.
글 | 송정림 방송작가·소설가
<녹색마차>, <약속>, <너와 나의 노래>, <성장느낌 18세> 등의 드라마와 <출발 FM과 함께>, <세상의모 든 음악>, <심혜진의 시네타운> 등의 FM, 「명작에게 길을 묻다 1, 2」, 「영화처럼 사랑을 요리하다」, 「성장비타민」, 「마음풍경」 , 「뭉클」, 「감동의 습관」, 「신화처럼 울고 신화처럼 사랑하라」, 「사랑하는 이의 부탁」 등의 책을 썼다. 순간순간 설레는 마음으로, 뭉클한 감동으로 살자가 삶의 모토. 그래서 부지런히 행복 연습을 하며 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