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네시아의 모계사회 미낭까바우 지역
[아츠앤컬쳐] 인도네시아 수마트라의 서쪽에 위치한 빠당(Padang)을 주도로 하는 서부 수마트라 주는 미낭까바우(Minangkabau) 지역이라고 하고 이 지역에 사는 종족을 미낭까바우 족이라고 부른다. 수년 전에 이 지역에 지진이 일어나 큰 피해를 입은 적이 있고 지난주 세미나 참석차 빠당을 방문했을 때 아직도 복구가 덜 된 곳이 눈에 띄었다. 이 지역이 역사서인 땀보(tambo)에 기록된 바에 의하면 미낭까바우는 ‘승리’를 의미하는 미낭(minang)과 ‘물소’를 의미하는 까바우(kabau)의 합성어이다.
기록에 의하면 자바를 중심으로 발흥한 마자빠힛 왕국이 수마트라를 점령하고자 할때 이 지역 사람들이 기지를 발휘하여 물소싸움을 제안했다. 자바 사람들은 몸집이크고 사나운 물소를 골랐지만 미낭까바우 사람들은 며칠 굶긴 어린 물소를 대비시켰다. 소싸움이 시작되자 미낭까바우의 어린 물소는 자바의 큰 물소가 어미소인줄 알고 달려들어 젖을 빨았다. 이 과정에서 어린 물소의 뿔이 자바 소의 배를 수차례 들이받아 승리했다는 내용이다. 이야기의 진위를 확인할 수는 없지만 자바에 대한 우월성을 포함한 민담인데 어찌 보면 당시 정세적으로 자바에 대한 열등감이 이렇게 표출된 게 아닌가 싶다.
미낭까바우를 대표하는 여러 가지 아이콘이 있지만 우선적으로 이 지역이 모계사회라는 점이다. 그러니까 가계가 어머니, 딸 이런 식으로 전해지는 것이다. 이들은 사촌 간의 혼인을 허락한다. 이는 이와 같은 근친혼이 자신들의 범주 내에 있는 재산이 가능하면 남의 집안으로 흘러가지 않게 하는 방편이 되기 때문이다. 특히 외삼촌이 후견인(mamak)이 되는데 아직도 자녀의 경제적인 측면은 부모가 지원하지만 배우자의 결정 등에 있어서는 관습에 따라 후견인이 영향력을 행사하며 후견인의 자식인 외사촌과의 결혼이 장려된다.
빠당음식이라고 이 지역의 음식은 매운 것이 특징이며 인도네시아 전역에서 유명하다. 이 중에서도 른당(rendang)은 인도네시아뿐만 아니라 세계적으로 알려진 음식인데 고기를 이 지역의 갖은 향료와 함께 조린 것이다. 미낭까바우이 전통가옥은 루마 가당(rumah gadang)이라고 하는데 곤종(gonjong)이라고 불리는 소뿔 형태의 지붕이 인상적이다. 일반적으로 혼전의 사내들은 수라우(surau)라고 하는 사원에서 이슬람을 배우고 잠을 자지만 결혼 후에는 이 전통 가옥에서 생활한다.
미낭까바우 족은 서부 수마트라 이외에도 다른 지역으로 이주하여 정착한 경우가 많다. 말레이시아의 느그리 슴빌란(Negeri Sembilan) 주에서도 그 전통을 이어가고 있는데 느그리 슴빌란에서 마낭까바우 출신의 왕을 임명했기 때문이다. 말레이시아의 초대 수상을 지낸 압둘 라만 수상도 미낭까바우 출신이다.
빠당은 자카르타에서 비행기로 두 시간 걸린다. 한국에서 가려면 오히려 말레이시아나 싱가포르를 경유하는 것도 좋다. 이들 지역에서는 40분 정도밖에 안 걸리기 때문이다. 빠당에서 두 시간 거리에 있는 부낏띵기라는 지역은 해발이 높아 시원한 지역이다. 외국인들이 많이 찾는 지역 중의 하나이다.
글·사진 | 고영훈
한국외국어대학교 말레이-인도네시아어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