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승영의 여행
[아츠앤컬쳐] 어느덧 10년이란 시간이 흘렀다. PS1에서 작품 설치 코디네이터로 일을 시작한 지가 얼마 되지 않았던 시기인 듯하다. 2004년 가을이었던가… 미술관에 한국작가의 전시가 잡혀 있었다. 기대가 되었다. 일본작가와 함께한 프로젝트 ‘Picnic on the Ocean: Documentation of a Korean-Japanese Project’. 그렇게 김승영 작가님을 처음 만났다.
1층 카페 건너편 끝에 위치한 갤러리. 그곳에는 길쭉한 창이 하나 있었는데, 먼저 그 창을 제거해내니 안과 밖이 뻥 뚫려 휑하니 열리었다. 바람도 들어오고 낙엽도 들어온다. 미술관에 설치 베테랑들이 꽤나 있었건만 김승영 작가는 자비를 들여 어시스트와 함께 왔다. 섬세함이 요구되는 설치작업이었다. 창이 있던 뻥 뚫린 공간에 노오란 빛이 도는 투명한 벽돌이 한개 한개 쌓여갔다. 모두 똑같은 크기와 모양의 벽돌들인데 어떤 벽돌 속에는 사람의 이름이, 또 다른 벽돌 속에는 종이배가 담겨있다. 그저 창이었던 공간이 미술관 안과 밖을 오묘하게 연출해내는 설치작품 일부로 재탄생되었다.
1999년 함께 PS1에서 레지던시 프로그램에 참여하였던 일본작가 히로노리 무라이(Hironori Murai)와 한국과 일본의 만남, 소통을 주제로 공동 프로젝트를 진행하였다. 한국과 일본의 경계선에서 나무로 만든 두 개의 배가 노도 젓지 않은 채 바람에 이끌려 만난다. 만남의 퍼포먼스에 관한 사진과 설치 작품이 어우러져 함께 전시되었다.기억, 흔적, 시간, 만남, 소통, 소외, 경외, 자연, 망각, 소리, 환경, 장소, 일상, 감성, 기다림, 상처, 순환, 삶, 존재, 그 잔상들.
사비나 미술관에서 오랜만에 그를 만났다. 김승영 작가의 개인전, 소통과 기억이라는 테마로 그의 최근 영상과 설치 작업을 두루 볼 수 있었다. 그중 ‘의자’라는 작품에 매료되었다. 색이 벗겨져 녹이 슬어 있는, 무겁고 차가운, 그래서 짐짓 다가가고 싶지 않은 한 개의 붉은 쇳덩이 의자. 세월의 흔적과 삶의 지친 맛이 진하게 배어 있는 한 의자가 하이얀 공간 속에 덩그러니 놓여있다. 바닥에는 두 덩이의 물의 흔적이 조명과 만나 공간은 알듯 모를 듯 은은하고도 오묘한 감성을 연출하고 있었다. 고요했다.
먼발치서 한참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여러 생각이 들었다. 스르르 눈물이 흘렀다. 그 작품 앞에서 그 고요함 속에서 나도 모르게… 맘 속에 안고 있었던 작은 상처가 조용히 흘러나왔다. 삶의 무게를 짊어진 듯 무거워만 보이던 의자와 그 물체를 감싸안고 있는 공간은 한 편의 영상이 되어 나 또한 그 공간 안에서 함께 둥둥 허공에 떠 있는 듯했다. 작품은 한 편의 시와 같았다. 아무도 없었기에 문득 의자에 앉고 싶었다. 차가울 것만 같았던 의자는 따뜻했다. 갑작스러운 그 따뜻함에 짐짓 놀랐다. 그리고는 한참을 앉아 있었다. 몸을 내려놓고 마음을 내려놓고 그의 작품 안에서 위안을 받았다.
최근 그는 남극에서의 놀라운 경험을 벅찬 듯 특유의 느리면서도 구성진 어투로 이야기한다. 일상에서 사용하던 단어들을 온몸으로 경험하고, 온 자연들이 한 통으로 하늘과 빙하와 땅 모두가 하얗게 그저 한 덩어리로 연결되는 느낌을 말한다. 감동을 넘어선 경외감. 작가는 뉴욕 PS1 레지던시 경험에서 수많은 인종과 문화, 언어로 인한 충격을 받았고, 프랑스 스트라스브르크 CEAAC 레지던시에서는 아름다운 도시에서 뜻하지 않게 폐허를 발견하여 삶에 대해 사색을 하게 되었다. 광활한 자연과 그 자연을 닮은 사람들에게 영감을 받은 고비사막 레지던시, 자연의 숭고함을 느꼈던 남극 레지던시…
그러한 일상의 이탈에서 오는 경험들은 작가를 통하여 그의 삶과 무의식의 무엇들과 만나서 작품으로 만들어진다. 한 달 전 이탈리아 토스카나지방의 작은 도시, 아직도 중세의 건축물을 잘 간직하고 있는 루카 성곽동굴에서의 전시는 그로 하여금 또 다른 경험과 감성을 불러 넣어준 듯하다.
편안한 안식처와 같은 느낌. 작가는 몸과 마음이 가벼워지고 맑은 정신의 자유로움을 만끽한다. 주어진 공간 그 특유의 감성과 교감으로 작품은 성곽동굴이라는 공간 안에서 자연스럽게 피어오른다. 마치 식물이 자연의 섭리로 빛과 양분을 머금고 자연스럽게 피어오르는 것처럼. 그 여행들에서 충만하여진 가슴으로 그의 세포 속에 스며들어 갔을 감성들… 새로 탄생하여질 그의 작품이 기대된다. 그는 삶을 진하게 산다. 그의 작품은 사람을 감싸안는 진한 매력이 있다.
글 | 장신정
아트 컨설팅 & 전시기획. 국제공예트렌드페어 주제관, 큐레이터. 이천국제조각심포지엄, 수석 큐레이터. 홍익대학교 강사. NYU 예술경영/행정 석사. 전 MoMA P.S.1 전시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