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의 흐름이 멈춘 곳, 또바 호수와 바딱 족
[아츠앤컬쳐] 인도네시아의 관광지나 휴양지 하면 발리나 욕갸카르타를 떠올리는 사람이 많겠지만 수마트라 섬의 북부에 위치한 또바 호수도 이에 못지않은 휴양지이다. 때 묻지 않은 아름다운 풍광과 이 호수 주변에 사는 바딱 족들의 생활상이 사람들의 관심을 끌기 때문이다.
또바 호수는 폭 30킬로미터, 길이 100킬로미터의 칼데라 호로 해발 700미터에 위치해 있으며 깊이는 500미터 정도로 알려진 호수이다. 이 호수 안에 사모시르(Samosir)라는 섬이 있고 이 섬의 면적이 싱가포르의 면적보다 세 배가 넓은 2천 ㎢이니 그 호수의 넓이가 얼마나 넓은지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이 호수 주변에는 바딱(Batak) 족이 살고 있다. 전체 바딱 족 700만 명 중에 500만 명이 아직도 이곳에 근거지를 두고 살고 있으며 이들은 그 인구에 비하여 인도네시아 역사에 수많은 저명 인물을 배출하였다.
또바 호수에 접근하는 포인트가 여러 개 있으나 북부 수마트라 주의 주도 메단에서 자동차를 이용하여 남서쪽으로 세 시간 정도 달리면 빠라빳(Parapat)이라는 조그마한 도시가 있고 이곳이 또바 호수에 접근하는 포인트 중의 하나이다. 교통 사정은 다소 불편하지만 메단에서 빠라빳으로 가는 도중에 이국적인 풍광을 볼 수 있으며 도로변에서 파는 두리안이나 망고스틴 등 이 지역에서 소출된 과일을 맛보는 것도 흥미를 끈다.
여정 중에 만난 이곳 사람들은 순박하고 친절하여 그야말로 시간의 흐름이 정지된 곳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이다. 지질학자들의 연구에 의하면 이 호수는 약 75,000년 전에 화산이 폭발하여 생긴 칼데라 호이며 화산 폭발 당시 분진이 아프리카와 중국 대륙에까지 이르렀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바딱 족은 이 또바 호수 주변을 생활 근거지로 사는 사람들이다. 바딱 족은 다시 6개의 소 종족으로 나뉘는데 호수 동쪽에는 시말룽운, 북에서 서쪽 아래로 각각 까로(Karo), 빡빡(Pakpak), 또바(Toba), 앙꼴라(Angkola), 만다일링(Mandailing) 족이 살고 있다. 이들은 각각 자신들 종족의 언어를 사용하며 독자적인 문화를 가지고 있다. 인도네시아의 대부분이 이슬람교를 믿고 있는 것에 비해 이 지역 사람들은 기독교를 신봉하는 인구가 많다.
한국의 교회 중에는 이 지역 교회에 지원하는 교회도 적지 않다. 지금은 사정이 좀 달라졌겠지만 10년 전만 해도 교회의 성직자가 평일에는 다른 직업을 가지고 있고, 주일에만 시무를 하는 형식이었다. 그러다 보니 신앙의 점착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었다.
또바 호수는 일단 메단으로 가서 그곳에서 자동차로 이동할 수밖에 없다. 메단에서 호수 사이에 브라스따기(Brastagi)라는 곳에서 일박하며 그곳의 문화와 정취를 맛보는 것도 좋다. 외국인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 것을 보면 가볼 만한 곳임은 분명하다. 시장통을 둘러보는 것도 좋고 깔끔한 현지 식당에서 그들의 전통 음식을 맛보는 것도 좋다. 최근 중국계 거부가 호수 주변을 개발하고 관광객을 유치하려는 사업도 펼치고 있지만 호수 주변을 너무 훼손하지 말았으면 좋겠다.
글·사진 | 고영훈
한국외국어대학교 말레이-인도네시아어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