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르디 생가를 찾아서 ....
[아츠앤컬쳐] 올해는 이탈리아가 낳은 위대한 음악가 베르디 탄생 200주년을 기념하는 행사가 전 세계적으로 이루어지고 있다. 서울에서도 베르디 오페라를 중심으로 제4회 대한민국오페라페스티벌이 개최되었고 그 외 크고 작은 음악회가 열리고 있다. 이탈리아에서는 주세페 베르디의 고향인 부세토(Busseto)와 많은 도시에서 베르디 탄생을 기념하는 행사가 열리고 있다. 베르디가 태어나서 유년시절을 보낸 론콜레 베르디(Roncole Verdi)는 부세토 시내에서 약 7km 떨어진 동네인데 그곳에 있는 베르디의 생가(Casa Natale)를 찾아 그의 숨결을 느껴 보았다.
6월 12일, 오후 1시 30분에 도착한 베르디 생가(Casa natale)가 있는 론콜레 베르디, 초여름 날씨에 거리는 매우 한산했고 관광객은 많지 않았다. 생가는 깨끗하게 잘 보존되어 있었고 2층 침실 창문에서 바라본 광장 건너편으로 베르디가 다니던 성당이 잘 보였는데 성당 안에는 지금도 베르디가 연주했던 오르간이 보존되어 있다. 생가(Casa Natale)를 방문하고 부세토(Busseto) 시내의 안토니오 바레찌(Antonio Varezzi) 저택을 돌아보았다. 베르디의 후원자이자 장인이었던 바레찌는 베르디가 훌륭한 음악가로 성장하는데 전적인 지원을 해준 사업가였다.(베르디는 바레찌의 딸 마르게리타와 결혼해서 두 자녀를 두었는데 일찍 자식을 모두 잃고 26세의 젊은 아내마저 세상을 떠났다.)
바레찌의 저택은 2001년부터 베르디박물관으로 바뀌어 일반에 공개되고 있고 이곳에는 베르디의 많은 유물이 전시되어 있다. 안토니오 바레찌의 전폭적인 지원이 없었다면 우리가 아는 위대한 음악가 베르디는 존재하지 못했을 거라는 생각을 잠시 해보았다.
부세토 시내에서 약 4km 떨어진 산타 아가타(S. Agata)에 자리한 빌라 베르디(Villa Verdi)는 베르디가 1848년에 구입해서 증축했는데 둘째 부인 주세피나 스트레포니(Giuseppina Strepponi)와 1851년부터 이 집에서 살기 시작했고 가장 오래 살았던 집이다. 주택을 둘러싼 넓은 정원은 그 크기가 공원을 방불케 했다. 베르디는 키우던 개가 죽자 정원에 ‘사랑스러운 친구를 기억하며’라는 글귀를 새겨 묘비까지 세울 정도로 개를 무척 아꼈다고 한다. 그리고 마차를 여러 대 소유했던 걸로 봐서는 마차수집에도 취미가 있었던 것 같다.
부세토(Busseto) 방문의 마지막 장소인 베르디극장(Teatro Verdi)에서는 부세토 시청이 베르디 탄생 200주년을 기념해서 마련한 렉쳐콘서트(Lecture Concert)가 있었는데 베르디의 오페라 ‘맥베스’의 음악분석과 함께 세계적인 바리톤 레나토 브루손(Renato Bruson)의 노래를 들을 수 있었던 것은 큰 행운이었다. 전 세계의 유명 오페라극장을 누비며 전성기를 보냈던 노장의 노래는 또 다른 감동을 주었다. 오페라 ‘맥베스’에 나오는 유명한 아리아 ‘Pieta, rispetto, amore’를 듣고서 극장을 나서는 기분은 정말 좋았다. 베르디는 생전에 자신의 이름이 붙여진 이 극장을 한번도 방문하지 않았다는 사실이 무척 궁금했는데 뭔가 불만이 많았기 때문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베르디는 이탈리아통일운동에도 적극적이었는데 ‘VERDI’는 이탈리아를 통일한 비토리오 엠마누엘레 2세의 이름을 넣은 Vittorio Emmanuelle Re Di Italia(이탈리아의 왕 비토리오 엠마누엘레)의 이니셜이기도 하다. 베르디의 음악회가 끝나면 관객들은 항상 통일을 염원하며 ‘VIVA VERDI’를 외쳤다고 한다. 이탈리아는 1861년에 통일을 이룩했다.
말년에 밀라노에 많이 머물렀던 베르디는 밀라노에서 생을 마감했고 생전에 가장 큰 업적이라고 스스로 말했던 은퇴한 음악인들을 위한 휴식처로 지은 ‘Casa di Riposo per Musicisti’에서 영원한 휴식을 취하고 있다.
글 | 전동수 발행인
2007년부터 카자흐스탄 잠빌국립극장 고문을 맡고 있으며.
국내에서는 음악평론가, 대한적십자사 미래전략특별위원으로 활동 중이다.
그리고 한신대학교 서울평생교육원에서 ‘전동수의 발성클리닉’ 강좌를 진행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