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랑하는 네덜란드인 Flying Dutchman, Wagner

2013-06-19     아츠앤컬쳐
Photos Brescia / Amisano © Teatro alla Scala

 

[아츠앤컬쳐] 이른 아침 파리의 리옹역에서 TGV를 타고 남쪽으로 향했다. 스키장으로 잘 알려진 프랑스의 샹베리를 지나 국경을 넘는데 제법 경비가 삼엄하다. 어느덧 이탈리아의 토리노를 거쳐 마침내 밀라노의 가리발디역에 도착했다. 퍽 긴 시간이었지만 책과 잡지를 두서너 권 번갈아가면서 읽다 보니 어느새 종착지이다.

수차례 밀라노에 다녀갔지만, 스칼라극장에서 공연을 보기는 이번이 처음이다. 오후에 스칼라극장 뮤지엄을 둘러보면서 200년이 넘는 극장의 역사를 실감했다. 또한, 극장 앞 광장에 보이는 레오나르도 다빈치 석상을 보면서 위대한 천재 예술가의 업적에 또 한 번 감탄하지 않을 수 없었다.

Photos Brescia / Amisano © Teatro alla Scala

 

올해 바그너 탄생 200주년을 맞아 스칼라극장에서 <방랑하는 네덜란드인>을 감상하는 행운을 만끽했다. 극장 안으로 들어가니 홀의 내부는 전체적으로 화이트 톤으로 은은하고 화사하면서도 고풍스러웠다. 막이 오르자 보이는 무대의 벽면은 상단부는 세로줄 무늬 벽지로 하단부는 짙은 원목으로 평범한 분위기를 연출했다. 그리고 그 한가운데 우뚝하니 자리 잡은 높은 벽면 기둥에는 마치 대형 액자 속 그림을 연상케 하는 이미지가 보인다. 오페라 도입 부분에서 풍경화였던 이 그림은 극이 전개되면서 비디오아트의 작품처럼 예술적으로 화면이 변화하면서 관객들을 스토리로 몰입시켰다.

Photos Brescia / Amisano © Teatro alla Scala

 

<방랑하는 네덜란드인(Der fliegende Holländer)>은 독일의 작곡가 리하르트 바그너(Wilhelm Richard Wagner, 1813-1883)의 초기 대표작이다. 1841년에 완성되어 1843년 1월 2일에 드레스덴의 왕립극장에서 초연되었다. 3막으로 구성된 이 오페라는 북부 유럽에서 내려오는 전설과 하이네의 소설을 소재로 바그너가 직접 대본을 작성한 것이다. 한편, 이 오페라는 바그너가 음악극(musikdrama)이라는 새로운 형식을 만들어내기 이전의 초기작품으로, 바그너는 이 작품에 ‘낭만적 오페라’라는 부제를 붙였다.

Photos Brescia / Amisano © Teatro alla Scala

 

전설의 스토리는 네덜란드인 선장 반 데르 데켄이 항해하던 중, 아프리카의 희망봉 부근에서 폭풍을 만나게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구 끝까지 항해하리라”라고 외치며 선원들의 반대를 무릅쓰고, 희망봉을 계속 항해하려다가 결국 그의 배는 좌초되어 침몰하고 만다. 이렇게 패배감에 사로잡힌 선장은 신들을 저주하게 되었고, 이에 분노한 신들은 이 선장에게 치명적인 저주를 내린 것이다.

Photos Brescia / Amisano © Teatro alla Scala

 

저주를 받은 네덜란드인 선장은 유령선이 된 자신의 배와 함께 7대양을 떠돌아 항해하였다. 그리고 7년 만에 한 번만 상륙이 가능한데, 그때 자신을 영원히 사랑해 줄 수 있는 여인을 만나면 저주가 풀리게 된다. 한편, 이 북유럽의 전설은 바그너 이전에도 소설 ‘유령선’의 마리아트 선장이야기로 등장하였고, 시인 하이네 역시 ‘헤르 본 슈나벨레봅스키의 회고’를 통하여 다루었다. <방랑하는 네덜란드인>은 바그너의 작품 중에서 최초로 신화나 전설을 채용하여 오페라로 서술한 작품이며, 이후 니벨룽겐의 반지를 비롯하여 여러 작품들이 북유럽의 신화 및 전설에서 영감을 받아 창작되었다.

Photos Brescia / Amisano © Teatro alla Scala

 

이번 스칼라극장의 무대연출을 보면서 흥미로웠던 점은, 2막 1장에 물레 합창에서 원작처럼 처녀들이 물레질을 하며 등장하는 대신, 사무실에서 타자를 치는 장면으로 각색되었다. 제복을 입은 여성들이 나란히 책상에 앉아서 일률적으로 사무를 보는 모습이 오페라의 극적인 스토리와 상반되는 느낌을 주어 극적인 효과를 더했다. 그리고 그 여직원 중의 한 명이 바로 주인공 젠타이다.

Photos Brescia / Amisano © Teatro alla Scala

 

그녀가 보여준 ‘두려움 없는 사랑’이야 말로 바그너가 찾았던 여성상이 아니었을까 싶다. 기록에 따르면, 바그너는 “순수하고 열정적인 여성의 사랑이 제멋대로이고 죄 많은 남자를 구원할 수 있다”고 굳게 믿었다고 한다. 놀랍게도, 바그너는 작곡가 리스트(Liszt)에게 보낸 서신에 주인공 ‘네덜란드인’이 바로 자기 자신을 투영한 인물이라고 고백했다.

글 | 이화행
아츠앤컬쳐 파리특파원, 아트 컨설턴트, 파리 예술경영에꼴 EAC 강사
소르본느대 미술사, EAC 예술경영 및 석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