헨릭 입센 원작, 에릭 러프 연출 페르 귄트 Peer Gynt de Henrik Ibsen, Mise en scène d’Eric Ruf

코메디 프랑세즈, 그랑팔레 살롱 도네르 (Comédie-Française, Salon d’Honneur du Grand Palais)

2012-10-15     아츠앤컬쳐
© Brigitte Enguérand Adeline d’Hermy(Ingrid) & Hervé Pierre(Peer Gynt) 

 

[아츠앤컬쳐] 한 인간의 파란만장한 인생을 다룬 19세기의 대표적인 노르웨이 연극인 ‘페르 귄트(Peer Gynt)’가 프랑스 최고의 국립극단인 코메디 프랑세즈 연출로 무려 5시간에 걸쳐 상연되었다.

이번 공연은 파리의 대표적인 문화예술 기관인 그랑팔레(Grand Palais) 내부의 살롱 오눼르(Salon d’Honneur)의 재개관을 기념하고자 특별히 기획된 것이다. 현실과 판타지를 넘나드는 환상적인 무대는 본래 노르웨이의 민속 설화를 바탕으로 헨릭 입센(Henrik Ibsen, 1828-1906)에 의하여 1867년에 운문국의 형태로 탄생된 것이다. 무엇보다 극 중 내내 장엄하게 연주되는 에드바드 그리그(Edvard Grieg, 1843-1907)의 명곡들은 북유럽 특유의 멜로디로 관객들을 스토리에 한층 더 몰입시켰다.

주인공 ‘페르 귄트’는 또 한 명의 ‘돌아온 탕자’라고 할 수 있다. 부와 권력을 좇는 인간의 과대한 야망과 인생의 덧없음, 그리고 사랑이라는 주제를 토대로 스토리는 전개된다. 이처럼 연극을 보는 내내 주인공 페르와 긴 여정을 함께 하며 과연 삶의 참된 의미는 어디에 있는가 의문을 던져 보았다. 한편, 주인공 페르의 모습이 이창동 감독의 영화 ‘박하사탕’에 나오는 영호(설경구)를 연상시키기에 결코 낯설지 않은 인물이다.

Adeline d’Hermy(Ingrid) & Hervé Pierre(Peer Gynt)© Brigitte Enguérand

 

화려한 성공을 꿈꾸지만 막상 엉뚱하고 게으른 페르는 어느 날 마을처녀 ‘잉그리드’의 결혼식 파티에서 청순한 아름다움을 지닌 ‘솔베이그’라는 독실한 기독교 집안의 처녀와 사랑에 빠지게 된다. 그런데 어이없게도 드레스를 차려입은 ‘잉그리드’의 모습을 보고는, 망상에 사로잡혀 그녀를 산으로 납치해 버린다. 이를 시작으로 기나긴 페르의 방황은 시작된다. 산에서 그는 왕이 되겠다는 맹목적인 일념으로 도브레 족장의 딸인 ‘초록여인’에게 구혼한다. 자신의 어머니 이름을 따서 자신을 ‘아세여왕’의 아들이라고 속여서 결혼한다. 하지만 금세 권력에 무력감을 느끼고 만다. 그러던 그에게 ‘솔베이그’가 산속으로 찾아와 변함없는 사랑의 마음을 보여준다. 그리고 페르는 갑작스러운 어머니의 죽음을 겪으며, 먼 바다로 떠나 버린다.

총 5막으로 구성된 극의 후반부는 모로코의 해안을 배경으로 시작된다. 노예 매매와 럼주 장사로 큰돈을 벌게 된 페르는 전쟁을 통해 더 큰 권력을 거머쥐려다 결국 다른 상인들의 배신으로 빈털터리 신세가 된다. 그리고 우연히 얻은 말과 보석으로 예언자 행세를 하던 중 아랍 추장의 의붓딸인 ‘아니트라’의 유혹에 빠지며 그의 파란만장한 인생은 계속된다.

결국, 백발의 노인이 되어 무일푼 신세로 고향에 돌아오지만 아무도 그를 알아보지 못한다. 허무한 자신의 신세를 양파에 비유하면서 양파를 깎고 있던 페르에게 어딘가에서 ‘솔베이그’의 노래가 들려온다. 페르는 비로소 자신의 진정한 안식처가 어디인지를 깨닫고 솔베이그에게 한없는 용서를 구한다. 그런 그에게 그녀는 관대한 모성으로 포옹하며 나지막한 자장가를 들려주면서, 마침내 대서사시의 막이 내린다.

주인공역의 에르베 피에르(Hervé Pierre)는 청년부터 백발노인까지 다양한 모습을 모두 혼자서 소화해 냈다. 연출자 에릭 러프(Eric Ruf)는 인터뷰를 통해 처음에는 이번 주인공역에 두세 명의 배우를 출연시키는 것을 검토했었다고 한다. 그런데 어느 날 에르베 피에르가 출연한 ‘비방(Vivant)’이라는 연극을 보며 확신을 얻었다고 한다. ‘‘바로 저 배우다. 늙은 페르다. 나는 그에게서 분노와 나약함, 그리고 참회를 보았다.’’

1996년에 페르 귄트 역에 직접 출연하기도 했던 배우 출신의 에릭 러프는 무대도 직접 연출했다. 이번 무대는 지평선처럼 가로로 길게 늘어진 형태로 되어 있고, 이를 축으로 관객석이 대칭으로 마주 보게끔 되어 있어서 마치 패션쇼의 런어웨이 무대를 보는 듯했다. 한편, 이색적인 무대와 절묘하게 조화를 이루었던 환상적인 무대 의상은 프랑스 오뜨 꾸튀르 디자이너인 ‘크리스티앙 라크르와(Christian Lacroix)’가 노르웨이의 민속의상에 착안하여 판타지 스타일로 화려하게 디자인하여 많은 화제가 되었다.

글 | 이화행
아츠앤컬쳐 파리특파원, 큐레이터/ 아트컨설턴트, 파리예술경영대 EAC 출강
EAC 예술경영학 학·석 사 졸업, 소르본느대 Sorbonne 미술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