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기도박과 다른 그림찾기
조르주 드 라 투르(Georges de La Tour, 1593~1652)는 17세기에 활약한 프랑스의 대표적인 화가다. 한동안 사람들 사이에서 잊혀졌다가 20세기초부터 재발견되어 회자되는 화가다. 현존하는 그의 작품은 30여 점으로 알려져 있는데, 그 가운데 화가가 직접 사인한 작품은 두 점에 불과하다 하여 유명 작품마다 위작 스캔들로 논란이었다.
특히, <다이아몬드 에이스를 가지고 있는 사기꾼(The Cheat with the Ace of Diamonds)>(1635년 추정)은 루브르 박물관이 약 1,000만 프랑이라는 거액을 지급하고 사들인 것으로 조르주 드 라 투르의 작품 중에서도 이색적인 그림으로 꼽힌다. 이그림은 1980년 당시 등장인물의 의복과 보석, 서명 등이 화가의 정교함을 따르지 못한다는 이유로 위작 스캔들에 휘말린 적이 있었다.
이 화가의 대표적인 작품에서는 예수그리스도의 생애와 그 주변 인물들이 주요 테마였기 때문에 이런 작품들에 견주어 대단히 예외적인 주제가 담겨있던 것이 의혹과 불신을 키웠다. 더구나 조르주 드 라 투르는 후대에 ‘촛불 화가’라는 애칭을 얻었을 만큼 독특한 화면 구성으로 유명하다. 어두운 화면을 슬며시 밝히듯 빛을 발산하는 촛불을 중심으로 드러난 인물들의 생생한 표현은 그의 그림에서만 만날 수 있는 특징이다. 그런데 이 작품에는 화가의 상징적 기호라고 할 수 있는 촛불에 의한 빛의 조율이 부족하다고 하여 진품의 신뢰도를 떨어뜨렸던 것이다.
그러나 이 작품은 오히려 화가의 전기와 후기 경향이 얼마나 다른 지를 확연하게 보여주는 작품이다. 전기에는 가난하고 보잘 것 없는 서민들의 어수선한 생활상을 주된 소재로 삼았으나, 후기의 작품들은 그와 달리 예수와 연관된 사람들의 인간적인 변화, 곧 회개와 성찰에 관한 종교적 주제를 다루었기 때문이다. 이에 작가의 전기 그림을 ‘낮 그림(day pieces)’으로, 후기 그림을 ‘밤 그림(night pieces)’으로 칭하기도 한다.
<다이아몬드 에이스를 가지고 있는 사기꾼>은 영화나 드라마의 한 장면을 옮겨 놓은 것 같은 흥미로운 구성의 그림이다. 수상쩍은 사람들이 모여 무언가를 도모하고 있는데, 세 명이 부유한 젊은이 한 명을 속이는 음모의 현장인 걸까. 그림의 등장인물들은 서로 곁눈질을 하며 상대방의 표정을 파악하려고 하고, 남자의 등 뒤로는 다이아몬드 에이스 카드가 숨겨져 있다.
사실 도박은 재물을 걸고, 운과 확률을 상대로 하는 내기다. 승패는 통제할 수 없는 힘에 의해 결정되며 결과는 불확실하다. 때로 인생에 비유하기도 한다. 하지만 우리나라 형법상 도박은 범죄로 규정된다. 도박죄는 우연에 의하여 득실을 다투는 것을 내용으로 하는 범죄이다. 도박은 정당한 노동에 의하지 않고 재산을 취득하려는 행위이기 때문에 경제 윤리에 반하고 사회의 미풍양속을 해할 뿐만 아니라 그것이 조장되면 건전한 근로 생활을 저해한다.
특히, 폭행, 상해, 절도, 강도에 심지어는 협박, 살인 등 다른 범죄를 유발하는 원인이 될 수 있다는 데 이를 처벌하는 이유가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도박은 인간이 가지고 있는 사행심에 기초하기 때문에 처벌과 단속만으로 모든 것을 근절할 수 없다는 것도 사실이다. 도박죄를 바라보는 시각에는 항상 이를 어떻게 조화롭게 해소할 수 있는지에 대한 문제의식이 내재돼 있다. 즉, 도박은 살인이나 강도 등 피해자가 있는 범죄와는 달리 국가가 정책적으로 처벌 여부를 결정할 수 있는 ‘피해자가 없는, 그러나 국가가 합의하여 정한 범죄’인 것이다.
<다이아몬드 에이스를 가지고 있는 사기꾼>도 단순한 도박이라기 보다는 아마 사기도박을 염두에 두고 도박을 권유하는 상황일 것이다. 물론 사기도박임을 숨기기 위해서 처음에는 실제 도박을 몇 차례, 몇 시간을 하였을 것이다. 이렇게 도박을 하며 시간을 보내다가 어느 시점 이후부터 사기도박을 했을 텐데, 그렇다면 이들의 금원 편취는 전체적으로 사기일까? 도박일까? 아니면 사기와 도박 둘 다에 해당할 수 있을까?
이와 같은 경우, 대법원은 “도박이라 함은 2인 이상의 자가 상호 간에 재물을 도(睹)하여 우연한 승패에 의하여 그 재물의 득실을 결정하는 것이므로, 이른바 사기도박에 있어서와 같이 도박당사자의 일방이 사기의 수단으로써 승패의 수를 지배하는 경우에는 도박에 있어서의 우연성이 결여되어 사기죄만 성립하고 도박죄는 성립하지 아니한다(대법원 1960.11. 16. 선고 4293형상DIce 650743 판결, 대법원 2011. 1. 13. 선고 2010도9330 판결 등 참조).”고 판시하고 있다.
즉, 사기죄는 편취의 의사로 기망행위를 개시한 때에 실행에 착수한 것으로 보아야 하므로, 사기도박에 있어서도 사기적인 방법으로 도금을 편취하려는 자가 상대방에게 도박을 참가할 것을 권유하는 등 기망행위를 개시한 때에 실행의 착수가 있는 것으로 보아야 한다는 것이다. 도박판의 사기꾼이 처음부터 사기도박을 공모하였다면, 사기도박에 들어가기 전에 소위 ‘밑밥’으로 도박을 시작했을지라도, 이는 ‘사기’의 실행에 착수한 것이라고 보아야 한다는 것이다.
사기도박을 하기 위해 처음에는 도박으로만 시작했다고 할지라도 도박이 사기죄의 일환, 즉 기망행위의 한 형태로 행해진 것이라고 판단된다면 도박죄가 아닌 사기죄만 성립하는 것이다. 물론, 위와 같은 판단을 하기 위하여는 사기죄의 실행의 착수가 언제 있었는지가 중요한 기준이 될 것이다.
사기죄의 실행의 착수 시기가 도박을 시작하기 이전에 있었는지 이후에 있었는지에 따라 도박을 한 행위의 성격이 달라질 수 있다는 것인데, 가령 처음에는 그저 도박을 하다가 도박이 진행되던 중간 시점부터 갑작스레 사기도박을 할 의사가 생겼고, 이에 사기도박을 한 것이라면 이 경우에는 ‘사기죄’만 성립한다고 보기는 어렵고 사기죄와 도박죄 모두 검토 대상이 될 수 있다. 하지만, 중간에 갑작스레 사기도박의 의사가 생겼는지를 판단하는 것은 쉽지 않을 것이다.
재미있는 사실은 <다이아몬드 에이스를 가지고 있는 사기꾼> 말고도 <클로버 에이스를 가지고 있는 사기꾼(The Cheat with the Ace of Clubs)>(1630~1634)이라는 작품이 또 현존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자세히 보지 않으면 같은 그림으로 착각하기 마련이다(실제 국내 기사나 블로그에서 이를 제대로 구분하는 경우를 찾기가 쉽지않다). <클로버 에이스를 가지고 있는 사기꾼>은 루브르 박물관이 아닌 미국의 캠벨 박물관에 소장 중이다. 두 작품을 가만히 보고 있으면 “다른 그림 찾기”를 할 수 있을 정도이다. 두 그림의 남자 주인공이 사기꾼인지 아니면 다른 누군가가 사기꾼인지는 모르겠지만 말이다.
글 | 이재훈
문화칼럼니스트, 변호사, 고려대학교 겸임교수, 한국과학기술기획평가원 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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