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법의 화가 도쏘 도씨 Dosso Dossi

2020-04-23     아츠앤컬쳐
Dosso Dossi – Juppiter , Mercury and Virtue (1515-1518) Wawel Castel , Krakow - Poland

도쏘 도씨(1468~1542)는 일반 대중들에게 조금 낯설지만 벨리니, 미켈란젤로, 페루지노, 라파엘로, 레오나르도와 같이 이탈리아 르네상스기를 대표하는 화가 중 한 명이다. 그에 대한 자료는 매우 희박하고, 출생연도나 장소 또한 명확하지 않다. 알려진 바로는 그의 가족이 트렌티노 출신이고, 아버지가 만토바의 빌라 디 도쏘(Villa di Dosso)에 거주 등록되었으며, 페라라의 공작 에르꼴레 1세(Ercole I)의 궁에서 회계사로 일했다는 정도이다. 그의 예명인 도쏘 도씨는 정확히 출생지 근처의 가족 소유지 명에서 유래되었다.

도쏘의 위대함은 그의 화법이 15세기를 대표하던 페라라 화파가 아닌, 조르조네(Giorgione)와 같은 베네치아의 화가들의 비법을 통달하여 형성되었다는 사실에 있다. 이 기본적 배움에 고전 문화와 라파엘로(Raffaelo)의 화풍 그리고 도쏘 자신의 특화된 서술적 관점이 더해졌다. 아마도 그는 베네치아 화풍을 연구하면서 또 다른 르네상스의 중심지이자 자신의 거주지였던 만토바의 화풍을 유지했을 것이다.

Dosso Dossi – Melissa – 1518 - Galleria Borghese- Roma,

1510년 도쏘는 만토바의 군주였던 곤자가(Gonzaga) 가문을 위해 일했다. 몇 년 후엔 당시 르네상스 궁정 중 가장 컸던 페라라 궁정에서 화가로 임명되었고, 유명한 알라바스터 카메리니(Alabaster Camerini)를 포함하여 군주가 후원하는 대부분의 장식 사업에 관여했다. 카메리니(작은 방들)는 군주의 사회적 지위를 표현하기 위한 개인적이고도 특별한 장소이자 고대와 고전 신화의 주기가 장식적으로 그려진 다양한 공간이었다.

방의 그림들은 종종 그리스 신화의 디오니소스의 삶이나 이와 관련된 비너스와 키벨레 여신들의 축제와 신성 등을 나타내는 에피소드를 담고 있는데, 이로부터 우리는 고전성이 그에게 미친 영향을 떠올릴 수 있다. 염두에 두어야 할 점은 페라라 궁정의 활기찬 환경으로서, 당시 그곳에서 다양한 예술가 및 지식인들과 긴밀한 관계를 유지하며 작업할 수 있었다. 무수히 많은 페라라와 베네치아의 괴짜 무리 집단들, 크레모나와 롬바르디아 예술가들 그리고 장차 페라라 군주들의 그림을 맡게 될 티치아노(Tiziano)에 이르기까지다.

르네상스기의 페라라는 어쩌면 로마보다 더 중요한 전시의 중심지였다. 로마에는 부와 재정으로 훌륭한 예술가들을 끌어들인 교황과 그의 궁정이 있었지만, 페라라의 궁정은 이보다 더 독특했다. 계몽사상을 지닌 페라라의 군주들은 화가들뿐 아니라 시인들과 음악인들을 후원했으며, 아울러 지역 귀족들과 르네상스 예술가들이 함께 서로 다른 궁정들을 지속적으로 드나들도록 했다. 도쏘 도씨는 바로 이러한 궁정의 구성원이었다.

베네치아 화풍을 배운 후 도쏘는 고전 문화와 라파엘로의 회화를 연구했으며, 피렌체와 로마, 특히 베네치아를 돌며 교류했다. 그는 항상 이탈리아 반도의 예술적 중추에 관한 새로운 정보들을 갱신했으며, 무엇보다 베네치아의 저명한 화가 티치아노와 깊게 교류하며 색채의 풍부함과 폭넓게 펼쳐진 풍경들을 배웠다. 일정 기간 미켈란젤로와 접촉하기도 했으나, 1517년 피렌체에서 작업하는 동안 티치아노의 화풍에 한층 더 이끌렸다.

도쏘는 페라라의 알폰소 1세(Alfonso I)에 고용되어 그를 위한 신화적 장면들을 그리기도 했으며, 1516~1519년 사이에는 베네치아와 만토바에 드나들었다. 1519년 티치아노와 함께 이사벨라 데스테(Isabella d’Este)의 미술 컬렉션에 참석하기 위해 만토바로 향했는데, 바로 그곳에서 더욱 풍성하고 생산적인 두 번째 인생이 시작되었다.

Dosso Dossi- Allegory of Music- 1522- Museo Horne, Florence, Italy

극소수의 화가만이 진정한 ‘마법’이라 불리는 영예를 누리며, 도쏘 도씨가 바로 이 희귀한 천재 무리에 속한다. 아마도 도쏘가 모든 뛰어난 천재들처럼 우리를 교란의 위험에 빠뜨리기 때문인데, 이에 관해 미국의 르네상스 전문 비평가 버나드 베렌슨(Bernard Berenson)은 저서 <이탈리아 북부의 화가들(North Italian Painters)>에서 도쏘의 그림을 “너무 오래 쳐다보거나 너무 자주 들여다보지 말라”하고 언급했다.

사실, 그의 풍경들은 아침과 같은 젊음을 환기시키고, 분위기는 미지의 황홀경에 빠지게 하며, 인물들은 열정과 신비를 전달한다. 도쏘의 그림 앞에서 느끼는 감흥에 대해 베렌슨은 “도원경(桃源境)의 공기를 들여 마신다”는 멋진 표현을 사용했는데 이는 신화와 신비 그리고 마법으로 가득 찬 매혹적 공기를 의미한다.

도쏘 도씨와 가장 밀착된 도시는 사실상 페라라였다. 이곳은 행복한 삶에 기반을 둔 세속적이고도 쾌락적인 문화를 표방하는 도시로, 즐거움의 고양을 꾀하는 문학의 도시이자 군주들이 베푸는 정기적인 향연들이 넘쳐나는 도시였다.

또한 이곳은 당대의 가장 재능 있는 음악가들이 전 유럽을 통틀어 가장 풍부한 음악적 활동을 벌였던 곳이기도 했다. 위대한 르네상스 시인 루도비코 아리오스토(Ludovico Ariosto)가 <광란의 오를란도(L’Orlando Furioso)>에서 노래했던 도시, 바로 ‘여성과 기사, 무기와 사랑이 넘쳐나는 페라라’였다. 이 도시에서 도쏘는 <광란의 오를란도>를 통해 ‘현존하는 가장 위대한 9명의 화가 중 하나’라 언급되었다. 이로 도쏘가 라파엘로나 페루지노 같은 대중에게 잘 알려진 유명 르네상스 화가들을 능가했다고도 볼 수 있다.

당시 베르나르도 클레지오(Bernardo Clesio) 추기경의 선택은 이 사실을 증명하는 한 예이다. 그는 당대의 가장 강력한 인물, 카를로 5세(Carlo V)의 비서관으로서 이탈리아의 수많은 화가 중 도쏘 도씨를 부온콘실리오 성(Castello del Buonconsiglio)의 장식과 벽화를 위해 섭외했다. 이곳에서 도쏘는 1년 이상 르네상스의 또 다른 거장 로마니노(Romanino)와 함께 작업했다.

도쏘 도씨의 위대함은 그가 서술적 화가가 아니라는 점이다. 그는 이야기를 묘사하는 화가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우리에게 이야기를 상기시킨다. 또한 마법과 시적(詩的)인 능력을 통해 실상을 노출하기보다는 분위기를 재현하여 우리를 상징과 신화가 가득한 세계로 이끈다. 마치 그의 친구이자 시인이었던 위대한 루도비코 아리오스토처럼.

번역 | 길한나 백석예술대학교 음악학부 교수


글 | 로베르토 파시 Basera Roberto Pasi
Journalist, Doctorate Degree University of Siena(Literature, Philosophy, History of Art with honors), Study at Freiheit Unverisität Berlin, Facilitator at Osho Resort, Poona Indi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