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트라
[아츠앤컬쳐] 페트라(Petra)는 와디 무사(Wadi Musa) 마을에서 시작한다. 와디는 건천으로 대부분 늘 말라있다. 무사는 모세를 말한다. 와디 무사도 모세가 지팡이를 내리쳐 물이 솟아나게 했다는 미르바 샘을 제외하면 물을 보기 힘들다.
세계 7대 불가사의에 속하는 페트라를 보려면 수박겉핥기를 한다 해도 적어도 나흘은 머물러야 한다.
첫째 날은 알 카즈네(Al Khazneh, 보물이라는 뜻)와 더불어 두 개의 암석 오벨리스크가 서 있고 희생제를 올리던 곳인 하이플레이스(High Place)에 올라가 페트라 전경을 내려다 본다.
다음날은 알 카즈네 맞은편의 산에 올라 새로운 각도로 높은 곳에서 알 카즈네를 내려다봐야 한다. 이곳에서 내려다보는 알 카즈네가 가장 멋있다고 한다.
셋째 날은 수많은 동굴이 있는 중심가 대로를 지나 건너편 바위산을 넘어 뒤편으로 숨어있는 알 데이르(Ad Deir)에 가야 한다. 힘들지만 가장 보람있는 순간이 될 것이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또 하루를 준비해 모세의 형 아론의 무덤이 있는 산꼭대기에 다녀와야 한다. 일찍 출발하여 하루 종일 걸어 올랐다가 내려와야 하므로 가장 힘든 날이 될 것이다.
페트라는 걸으며 차분히 보는 것이 가장 좋지만, 운행 수단으로 낙타와 마차, 동키를 타고 둘러볼 수 있다. 90kg도 넘을 듯한 거구의 서양여자가 어린 동키를 타고 산을 오를 때는 동키의 다리가 꺾일 것 같이 위태로워 보인다. 하지만 동키는 베두윈 주인에게 돈을 벌어드려야 여물을 먹을 수 있다. 어떤 동키는 무겁고 힘든 것을 참다못해 절벽 아래로 그냥 떨어져 죽어버리기도 한다니 너무 가슴 아픈 일이다.
페트라는 해가 쨍한 날 가야 가장 아름다운 경관을 볼 수 있다. 햇빛을 받아 장미빛으로 붉게 타오르며 빛나는 알 카즈네는 이름처럼 그야말로 진기한 보물이다. 알 카즈네는 1세기 나바테안 왕 아레타스4세의 무덤이라 추정되고 있다. 사암으로 위에서부터 파내려오며 조각된 건축물이다.
전설에 의하면 파라오가 마법으로 이곳에 보물을 숨겼다고 하며 파라오의 왕비에게 바쳐진 신전이라고도 한다. 크라운 상단의 항아리에 보물이 숨겨져 있다고 믿어져왔으나 누가 훔쳐갔다고도 하고 실은 아무 것도 없었다고 말하기도 한다. 현지인들이 자기가 믿고 싶은 대로 가이드하기 때문에 어떤 것이 옳은지 모른다.
맨 위에는 영혼을 실어나르는 독수리 네 마리가 날개를 접고 앉아 있고, 상단부 양쪽은 아마조네스 여전사가 도끼를 들고 춤추는 모습이며, 하단부의 양쪽 부조는 하늘에 올라 쌍둥이 별자리가 된 카스토르와 폴룩스라고 한다. 알 카즈네 건물 안은 거대한 홀로 지금은 텅 비어 있다.
이제는 너무나 유명해진 페트라는 원래 이삭의 큰아들 에서의 땅, 에돔의 수도였다고 한다. 붉고 거칠었다는 에서를 닮아 그런지 온통 붉은 바위산이다. 에돔은 동생 야곱의 후손인 이스라엘 민족이 모세를 따라 출애굽하여 사십년간 광야를 헤맬 때, 길을 내어주지 않고 왕의 대로로 돌아가 고난을 겪게 했다고 한다. 그 후 기원전 4~6세기에 나바테아가 에돔을 물리치고 이곳을 장악했다.
나바테아 왕국은 평지에서 한참 떨어져 감춰진 협곡 속에 자리하여 이곳을 지나야만 하는 무역상들에게 큰 위협이 되는 산적 집단에서 출발하였다. 하지만 점차 경제력을 갖추게 되자 안전하게 통행세를 받고 물과 숙소를 제공하는 왕국으로 성장해나갔다. 상인들은 이곳에 도착하여 쉬면서 동서양 문물을 교류하였으며 무역 품목은 향신료, 몰약, 유향, 헤나, 약품, 소금 등 다양하고 진귀한 것들이었다.
비록 사막 속에 숨겨있는 왕국이었으나 기원전 1세기에 이르면 통상무역으로 축적된 부를 과시하기 위해 거대한 건축물을 짓기 시작한다. 당시 8천 명을 수용하는 극장 등의 흔적이 남아 그 위용을 짐작하게 한다. 가장 세력을 크게 떨칠 시기에는 팔미라까지 장악했었다고 한다.
크고 작은 동굴마다 들어가면 벽과 천장에 돌 무늬가 그 어떤 벽화보다도 웅장하고 아름답다.
이 고대 도시는 수세기 동안 잊혀져 있었는데, 19세기 초에 들어서 스위스 탐험가 요한 부르크하르트가 발견하고 다시 세상에 드러나게 되었다.
전체가 붉은 바위로 이루어진 요새 도시는 거대한 암벽 사이로 난 좁은 길 시크(Siq)를 따라 삼십 분쯤 걸으며 시작한다. 시크에는 양쪽 암벽 아래로 파인 물길이 있는데 페트라 밖 모세의 샘 므리바에서 시작하는 물이 파이프를 타고 시크에 연결되며 암벽 아래쪽으로 물길을 따라 흘러들었다고 한다. 에돔은 이 좁은 길 시크를 지킴으로 안전했지만, 또한 그 멸망도 바로 이 물길을 차단 당함으로써 시작되었다.
시크에는 암벽에 부조로 조각된 거대한 석상의 흔적이 곳곳에 남아있다. 간간이 널따란 공터도 있지만 대부분 마차 한 대가 지날 정도의 좁다란 길인데 서늘하고 높은 암벽으로 자연 그늘이 져서 암벽의 색깔과 다양한 조각상을 감상하며 걷기에도 좋은 길이다.
이렇게 높은 자연 암벽 사이 그늘길을 반 시간 가량 걷다가 갑자기 햇빛을 받아 붉게 빛나는 알 카즈네가 나타나면 모두 탄성을 짓는다. 이름처럼 정말 보석과 같이 아름다운 알 카즈네는 블록버스터 영화에도 여러 번 소개되었다.
알 카즈네를 지나 알 데이르에 가려면 나바테안 대로를 통과하여 바위산을 올라야 한다. 바위에 홈을 내어 만든 끝이 없는 듯한 계단으로 된 바위산은 온갖 다채로운 경관을 보여주기 때문에 계단이 많아도 그다지 힘들지 않다. 800계단을 올라 오른쪽 뒤편에 갑자기 나타나는 알 데이르의 위용이 과연 대단하다.
위가 바위로 막혀있지 않고 앞에도 넓은 공간이 펼쳐져 여유로운 알 데이르는 알 카즈네와 또 다른 느낌으로 상쾌하다. 전체를 보기 위해 어느 정도 떨어져 바라보니 세월을 담은 고즈넉한 분위기가 세상 어디에도 비길 데가 없이 편안함을 준다.
사방이 탁 트인 산 정상에 있는 알 데이르를 마주하니 잡념이 사라지고 마냥 머무르고 싶은 기분이 든다. 비잔틴 시대에는 교회로도 쓰였다고 하는데 내부를 들여다보면 앞쪽 정중앙에 십자가가 파여 있다.
맞은편으로 가면서 돌아볼수록 아늑하다. 몇 걸음 더 올라가 '세상의 끝'이라 불리는 곳에 이르면 베두윈이 어렵게 지고 온 물로 차를 끓여 팔고 있다. 베두윈족 아저씨가 전통 악기로 반주하며 들려주는 아랍 노래가 그윽하게 퍼져나간다. 눈으로는 세상의 끝을 바라보며 허브 향이 나는 차를 마신다. 사람의 발길이 닿지 않은 험한 바위산들이 눈앞에 펼쳐져 있다. 더 이상 갈 수가 없어 세상의 끝, 또는 세상의 꼭대기라고 한다.
아쉬움을 뒤로 하고 하산하는데, 석양을 받을 때 황금빛으로 가장 아름답다는 바위산이 마지막 눈길을 사로잡는다.
편집 전예원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