폼페이 최후의 날

2021-11-01     아츠앤컬쳐
폼페이의 중심광장 포룸. 멀리 베수비오 화산이 보인다.

 

[아츠앤컬쳐] 폼페이는 2천 년 전 로마인의 삶을 생생하게 증언하는 ‘죽음의 도시’이다. 폼페이에 비극의 전조가 시작된 것은 기원후 63년 2월 5일. 그날 대지진이 발생하여 폼페이와 그 주변 도시들이 심하게 파괴되었다. 그 후 폼페이 사람들은 지진으로 피해 입은 공공건물들과 개인 주택들을 복구하고 있었는데, 16년이 지난 기원후 79년 8월 24일 오후, 운명의 시간이 아무런 예고 없이 찾아왔다.

수호신 같던 베수비오 화산이 무서운 불을 뿜어 올렸다. 히로시마에 떨어진 원자탄 수백 개와 맞먹는 위력의 폭발이었다. 공교롭게도 바로 전날이 불의 신 불카누스(Vulcanus) 축제일이었다. 참고로, 이탈리아어로 화산을 volcano(볼카노)라고 하는데 영어에서도 이를 그대로 쓴다. 이것은 바로 Vulcanus에서 온 말이다.

화산폭발은 연쇄적으로 12시간 동안이나 계속되었다고 하는데, 그때 마침 바람이 폼페이 쪽으로 불어와 자정 경에는 화산재와 화산석이 하늘로부터 폼페이 사람들 머리 위로 비 오듯이 쏟아져 내렸고 화산가스도 도시 전체를 덮쳤다. 이리하여 폼페이는 하루만에 죽음의 도시로 변했고, 폼페이의 시간은 영원히 멈추어버리고 말았다.

최대 2만 명 수용 가능했던 원형경기장

그 후 폼페이는 완전히 잊혀졌다가 오랜 세월이 흐른 18세기 중반에야 본격적으로 발굴되기 시작했다. 화산재 두께는 4~6미터가 넘긴 했지만 다행히도 비교적 걷어내기가 쉬웠기 때문에 지금까지 상당부분을 발굴해낼 수 있었다.

현재 폼페이 유적지의 입구는 포르타 마리나(Porta Marina)이다. 포르타 마리나는 바다 쪽으로 향하던 성문인데 옛날에는 이곳에서 해안까지 거리가 500미터 정도밖에 되지 않았으나 오랜 세월이 흐르면서 그 거리가 1.5킬로미터 이상 늘어났기 때문에 지금의 폼페이는 내륙에 있는 것처럼 보인다.

포르타 마리나에서 100여 미터 안으로 들어가자면 널찍한 포룸이 펼쳐진다. 폼페이의 정치, 행정, 종교, 경제의 중심이던 곳이다. 이곳에서 시야는 북쪽 멀리 솟아있는 베수비오 화산에 멈추어진다. 옛날 폼페이 사람들은 그 산을 이 도시의 수호신처럼 여겼을 것이다.

포룸의 북쪽에는 유피테르 신전, 서쪽에는 바실리카(공회당)와 아폴로 신전, 동쪽에는 베스파시아누스 황제 신전 등의 주요 건물들의 폐허가 널려있다. 남쪽에는 관청의 유적이 있는데, 규모가 그리 크지 않은 것을 보면 폼페이는 당시 작은 지방 도시였음을 알 수 있다.

​마차바퀴 자국이 보이는 포장된 길​

포룸에서 동쪽으로 길게 뻗은 비아 아본단짜(Via Abbondanza)는 폼페이의 주축을 이루는 거리이다. 포룸과 이 거리 주변에는 목욕장, 화려한 귀족 저택과 중산층 주택, 상가 등을 볼 수 있다. 특히 이 거리의 남쪽 비탈진 곳에는 대극장과 소극장으로 이루어진 ‘문화의 전당’이 자리 잡고 있으며 이 거리가 끝나는 구역에는 대략 2만 명을 수용할 수 있는 원형극장도 있다. 이런 공공시설이 있다는 것은 폼페이가 상당히 부유한 도시였음을 반증한다. 사실 폼페이는 주변의 비옥한 토양 덕택에 농업이, 또 지리적인 위치 덕택에 교역과 해운업 관련된 분야가 크게 발전했기 때문에 당시 이곳 사람들은 경제적으로 상당히 높은 수준의 생활을 누리고 있었다.

현재까지 폼페이의 유적은 전체의 3분의 2정도가 발굴되었다. 발굴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는데 가끔은 기존의 사실을 완전히 뒤집는 새로운 사실들이 밝혀지기도 한다. 일례로, 최근 학자들은 폼페이가 매몰된 것이 여름이 아니라 가을이라고 본다. 이유는 79년 9월 중순에 발행된 동전이 발견되었을 뿐 아니라 청과물 가게에서는 10월에나 볼 수 있는 과일과 채소가 발굴되었기 때문이다.

어쨌든 폼페이는 로마제국 시대의 한 단면을 생생하게 보여주는 세계 유일의 완벽한 ‘열린 박물관 도시’로 일생에 한번은 꼭 찾아가 볼 만한 곳이다. 그러고 보면 옛날 폼페이가 겪었던 끔찍한 비극은 후세 사람들에게는 아주 귀중한 선물이 된 셈이다.

글·사진 | 정태남 이탈리아 건축사
건축 외에도 음악, 미술, 역사, 언어 분야에서 30년 이상 로마를 중심으로 유럽에서 활동했으며 국내에서는 칼럼과 강연을 통해 역사와 문화의 현장에서 축적한 지식을 전하고 있다. 저서로는 <이탈리아 도시기행>, <동유럽문화도시 기행>, <유럽에서 클래식을 만나다>, <건축으로 만나는 1000년 로마>외에도 여러 권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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