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이킹의 배

2022-02-01     아츠앤컬쳐
1904년에 발굴된 바이킹의 배

 

[아츠앤컬쳐] 노르웨이의 수도 오슬로는 바다와 언덕과 산으로 둘러싸인 매우 쾌적한 도시이다. 바다에서 오슬로를 바라볼 때 가장 눈에 띄는 건물은 오슬로 시청사이다. 20세기 기능주의 스타일의 디자인으로 세워진 이 시청사는 우람하면서도 북유럽 특유의 간결함과 소박함을 보여주는데 특히 두 개의 높은 탑은 바이킹의 삶의 터전이었던 바다를 지켜보고 있는 듯하다.

바이킹이라면 8세기 말에서 11세기 중엽에 걸쳐 유럽을 공포의 도가니로 몰아넣던 약탈자들이었지만 동시에 유럽의 광대한 지역과 교역한 항해자들이기도 했다. 이들의 본거지는 오늘날의 노르웨이, 스웨덴, 덴마크의 해안이었다.

5세기 후반 로마제국이 멸망한 지 약 3세기가 지난 다음 등장한 바이킹은 북유럽의 스칸디나비아를 거점으로 유럽 역사의 주도권을 잡았다. 이들은 남쪽으로는 프랑스와 스페인을 거쳐 북아프리카와 지중해의 이탈리아까지, 동쪽으로는 강을 따라 러시아, 우크라이나를 거쳐 비잔티움 제국까지, 서쪽으로는 브리튼 섬(영국)을 넘어 아이슬란드에도 발을 디뎠다.

바다에서 본 오슬로 시청사

그다음에는 세상의 끝이라고 생각하던 대서양을 건너 그린란드를 지나 북미대륙 동쪽까지 활동 영역을 넓혔다. 즉, 콜럼버스가 신대륙을 발견하기 약 500년 전의 일이다. 이처럼 바이킹은 포르투갈과 스페인이 15세기 후반에 대항해 시대를 열기 한참 전에 중세판 대항해 시대를 주도했으며 아메리카 대륙에도 거점을 두었을 정도였던 것이다.

그것이 가능했던 것은 그들만의 고도로 특화된 배가 있었기 때문이다. 이 배는 날렵한 유선형의 길쭉한 형태로 가볍고 유연하여 속도가 빨랐고 바닥부분이 다소 평평하여 수심 1미터의 얕은 물에서도 항해할 수 있었으며 앞뒤가 같은 모양이라서 후진하려면 뱃머리를 돌릴 필요 없이 노 젓는 방향만 바꾸면 그만이었다. 따라서 물길이 있는 곳이라면 어디에서나 쉽게 항해할 수 있었던 것이다.

바이킹이 타던 배의 실물을 두 눈으로 직접 볼 수 있는 박물관이 오슬로 항구 남서쪽 조용한 뷔그되위(Bygdøy) 지역에 있다. 박물관의 정식명칭은 ‘바이킹 배 박물관’이다. 즉 대표적인 전시물이 노르웨이에서 출토된 바이킹 배 3척이기 때문이다. 이 배들은 튀네(Tune) 지역, 곡스타(Gokstad) 지역, 우스베르(Oseberg) 지역 등 바다에 가까운 경작지에 있던 바이킹 분묘에서 각각 1867년, 1880년, 1904년에 발굴되었다.

보존 상태가 매우 좋은 바이킹의 배

바이킹은 장례풍습에 따라 신분이 높은 자를 매장할 때는, 죽은 자가 마지막 가는 길에 필요한 물건을 시신과 함께 배에 함께 실었다. 그리고는 배를 돛대 끝까지 진흙으로 모두 덮고 완만한 곡선의 커다란 능을 만들었다. 그 후 약 1천 년이 흐르도록 사람들은 이것이 바이킹 분묘인지 전혀 몰랐다. 그러다가 우연히 땅속에서 배의 파편이 나오자 본격적으로 발굴했던 것이다. 이곳에 전시된 3척의 배는 각각 크기와 보존된 상태가 다르지만 모두 바이킹 배의 전형적인 형태이다.

그중에서 1904년에 발굴된 배의 길이는 21.58미터, 폭은 5.10미터, 돛대 높이는 약 10미터로 보존 상태가 가장 좋은데 원래 모습의 90% 이상을 유지하고 있다. 다른 배에 비해 이 배에는 섬세한 장식이 아주 많은 것을 보면 전투나 수송보다는 예식용으로 더 많이 사용했던 것으로 추정된다. 이 배는 서기 800년경에 제작되었고 843년에 매장되었다고 하니 스칸디나비아에서 발굴된 가장 오래된 바이킹 시대의 배인 셈이다.

이처럼 이곳에서는 바이킹 배를 직접 보면서 그들의 모험의 세계를 상상해 볼 수 있다. 물론 이 박물관의 배들이 항해한 최종 목적지는 신대륙이나 인간이 사는 세상이 아니라 죽은 자들의 세계였지만.

 

정태남

글·사진 | 정태남 이탈리아 건축사
건축 외에도 음악, 미술, 역사, 언어 분야에서 30년 이상 로마를 중심으로 유럽에서 활동했으며 국내에서는 칼럼과 강연을 통해 역사와 문화의 현장에서 축적한 지식을 전하고 있다. 저서로는 <이탈리아 도시기행>, <동유럽문화도시 기행>, <유럽에서 클래식을 만나다>, <건축으로 만나는 1000년 로마>외에도 여러 권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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