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례본과 NFT
[아츠앤컬쳐] 1446년에 세종이 펴낸 《훈민정음》 해례본(解例本) 초간본 원본은 1940년에 발견되어 이 원본을 소장하고 있던 전형필(全鎣弼, 1906~1962) 선생의 호를 따서 흔히 ‘간송본(澗松本)’이라 부른다. 전형필 선생이 1939년 국내 최초로 세운 사립 미술관이 바로 ‘간송미술관’이며, 현재 해당 미술관에 간송본이 보관되어 있다. ‘간송본’은 해례본에 대한 원본 유일본으로 내려오다가 2008년도 경상북도 상주에서 배익기 선생에 의해 또 다른 원본이 발견되어 이를 흔히 ‘상주본’이라 부르지만 배익기 선생이 이를 공개하고 있지 않아 원본 여부를 확인하기는 어렵다.
‘해례본’은 무엇을 뜻하는 것일까? 1446년 반포된 훈민정음 판본에는 1443년에 창제된 문자 한글을 공표하는 조선왕조 제4대 임금 세종대왕(재위 1418-1450)의 반포문(頒布文)이 포함되어 있다. 또한 정인지(鄭麟趾) 등 집현전 학자들이 해설과 용례를 덧붙여 쓴 해설서인 해례본이 포함되어 있다. 이를 훈민정음해례본이라 칭한다.
이 훈민정음은 문자 체계의 혁명을 불러왔다. 무엇보다 한자로는 제대로 쓸 수 없었던 우리 말까지 완벽히 표기할 수 있게 되었다. 이를 두고 정인지는 해례본에서 “한자로 우리말을 적는다는 것은 네모난 손잡이를 둥근 구멍 안에 억지로 밀어 넣는 것만큼 어울리지 않는다.”고 표현했다. 세종대왕이 한국말의 음운체계를 반영하는 문자를 창제하였고, 이로써 우리 말을 글로 온전히 적을 수 있게 되었다. 또한 훈민정음을 통해 우리 글자를 아주 쉽게 배우고 쓸 수 있게 되었다.
훈민정음이 창제된 후, 한국인은 독특한 민족의 말을 완벽하게 적을 수 있게 됨으로써 민족문화가 새로운 차원으로 발달하기 시작하였다. 또한 오늘날 한국의 식자율(識字率)이 높은 이유는 누구나 문자를 쉽게 배울 수 있기 때문이다. 한국 정부는 해례본의 발간일을 기준으로 계산하여 10월 9일을 한글날로 지정한 뒤 1946년부터 매년 국가 기념행사를 개최하고 있다. 그만큼 이 책은 한국인에게 중요하다. 오늘날 유네스코가 비문해 퇴치에 기여한 이에게 주는 상을 세종대왕상(King Sejong Prize)이라고 일컫는 사실이 이 책이 세계문화에 끼친 영향을 보여준다.
한편, 지난 2021년 7월, 간송미술문화재단은 간송미술관이 소장 중인 해례본을 100개 한정의 대체불가토큰(Non-Fungible Token, 이하 NFT)으로 발행할 계획을 밝혔다.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으로 등록된 국보가 디지털 자산이 된다는 점에 화제를 모았다. 실제 ‘해례본 한정판 NFT(해례본 NFT)’는 개당 1억 원에 판매됐고, 80개 이상이 팔렸다.
NFT는 블록체인에 저장된 데이터 단위로, 일련번호를 부여받고 고유 가치에 따라 값이 결정되는 토큰이다. 한번 해당 일련번호를 부여받으면 어떠한 디지털 자산이라도 온라인 상에서의 전송, 복제에 관한 모든 이력이 블록체인에 저장된다. 쉽게 기념 우표 발행을 디지털 파일 형태로 온라인으로 진행했다고 생각해보자. 기존 디지털 콘텐츠는 복제가 매우 용이하다. 인터넷에 있는 누군가의 발행된 기념 우표를 소위 ‘컨트롤(Ctrl) C +컨트롤 V’만 한다면 쉽게 복사할 수 있기 때문이다. 물론 이는 「저작권법」 위반에 해당되나, 무한정 복제할 수 있는 디지털 파일의 특성 상 해당 기념 우표의 가치는 희석될 것이다.
NFT는 여기에 착안했다. 블록체인 기술의 탈중앙화 전략을 바탕으로 이러한 우표에 고유의 일련번호를 넣는 것이다. 디지털 파일 형태의 우표를 NFT로 발행했다고 하자. 해당 NFT화된 디지털 우표는 온라인 상에서 복사하거나 혹은 다른 사람에게 해당 파일을 전송하면, 해당 고유 일련번호에 이러한 행위가 모두 기록된다. 즉, 한정판 NFT 우표를 최초 구매한 사람부터 현재 NFT 우표를 가지고 있는 사람이 그 NFT 우표를 쉽게 복사한 것인지 실제 원본을 넘겨 받은 것인지 이력을 확인할 수 있게 된다.
이와 같이 NFT는 블록체인에 기반하고 있어 복제가 어려워 디지털 자산의 원본성, 희소성을 유지할 수 있다. 간송미술관의 디지털화된 100개의 해례본은 그 100개로 정확히 한정되며, 복제를 하더라도 최초의 파일을 복제했다는 기록이 남으므로 100개 한정이라는 희소성이 유지된다. 또한 해당 디지털화된 해례본 파일의 권리가 누구에게 이전되는지 블록체인에 거래 내용이 모두 기록된다. 즉, 누구나 NFT의 출처, 발행 시간, 발행 수, 해당 디지털 파일의 소유 내역 등을 살펴볼 수가 있다.
이러한 블록체인 기술 특성상 생성된 NFT는 위조하거나 폐기하기도 어려워 디지털자산에 대한 원본인증서 또는 소유 관계를 증명하는 데도 활용될 수 있다. 즉, 현재 해당 디지털 자산의 저작재산권이 누구에게 있는지 증명이 용이하다. NFT는 그림과 사진, 음악 등을 포함해 디지털 형태로 저장될 수 있는 모든 것에 적용할 수 있다.
물론 NFT 저작권 거래에도 주의할 점이 있다.「 저작권법」 상 저작자는 그 저작물의 내용, 형식 및 제호의 동일성을 유지할 권리를 가지는 바(저작권법 제13조 제1항), 이를 동일성유지권이라고 하는데, 동일성유지권은 저작자의 저작물이 변형, 조작, 왜곡되는 것을 방지함으로써 저작자의 인격적 이익을 보호할 수 있도록 한다는 점에서 저작인격권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다. 저작권은 저작인격권과 저작재산권으로 분리될 수 있으며, 작품의 창작자는 작품을 제3자에게 양도하면서 저작재산권을 이전시킬 수 있으나, 저작인격권은 일신전속권이므로 창작자에게 남아 있다.
원작의 저작재산권을 양수한 자가 창작자의 동의를 얻지 않고 원작을 NFT화하는 경우, 즉 창작자의 동의 없이 내용 또는 형식을 변경하여 이용한 것으로 판단된다면, 이러한 행위는 동일성 유지권 침해에 해당할 수 있다. 일반적으로 동일성유지권 침해는 약간의 변경만 있어도 성립이 가능하여 저작권 침해 사건에서 쉽게 인정될 수 있다.
이러한 문제를 우회하기 위해, 주로 저작인격권이 소멸된 작품 위주로 NFT화가 많이 이루어지고 있으며, 해례본 NFT도 저작 인격권을 둘러싼 법적 쟁점에서는 자유로울 수 있다.
글 | 이재훈
성신여자대학교 법학과 교수
국가과학기술연구회 감사위원회 감사위원
변호사 / 변리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