튤립과 선물거래

2022-07-01     아츠앤컬쳐
Semper Augustus Tulip_Unknown artist(before 1640)

 

[아츠앤컬쳐] 네덜란드의 상징 중 하나는 튤립이다. 그런데 사실 튤립의 원산지는 터키다. 네덜란드에 튤립이 전해진 것은 16세기 중반이었다. 신성로마제국(라틴어: Sacrum Romanum Imperium)의 오기에르 부스베크(Ogier Ghiselin de Busbecq)(1522~1592)라는 사람이 오스만제국(Osman Turk Empire)에 대사로 파견되었다가 튤립 구근(Bulb)을 유럽에 가져왔는데, 그 구근을 네덜란드 식물학자인 카롤루스 클루시우스(Carolus Clusius)(1526~1609)에게 선물하면서 튤립이 알려지게 되었다.

구근은 식물이 생육하고 꽃을 피우는데 필요한 양분을 저장하기 위하여 잎, 줄기, 뿌리 등이 특별히 비대하게 커져 마치 뿌리 조직처럼 보이는 기관이다. 튤립은 씨앗 재배에는 한계가 있다. 씨앗으로 재배하면 꽃을 피우는데 3~7년의 시간이 소요되지만 구근을 땅에 이식시키면 그해에 꽃을 피울 수 있다. 그래서 튤립은 꽃만큼 구근이 중요하다. 뿐만 아니라, 구근에 바이러스가 침투하면 꽃에 변종이 발생한다. 클루시우스가 튤립 변종을 만들어 모양과 색깔이 다양해지면서 이색적인 변종 튤립이 귀족이나 부호 사이에 유행하기 시작한 것이다.

변종 튤립들은 약 400여 종 이상 존재하는데, 그중에서도 튤립 무늬와 색상이 황제를 상징하는 문양과 유사하다 하여 황제(Augustus) 튤립이라고 불리는 변종이 출현하여 더 비싼 가격에 판매가 되었다. 가장 인기가 높았던 품종은 보라색과 흰색 줄무늬를 가진 센페이 아우구스투스(Semper Augustus), ‘영원한 황제’라는 의미의 튤립이었다.

이와 같이 황제튤립, 총독(Viceroy)튤립, 제독(Admiral)튤립, 장군(Generalissimo)튤립 등 튤립 무늬와 색상이 계급을 상징하게 되자, 튤립은 신분 상승의 욕구를 지닌 사람들에게 인기가 높아졌고, 유행에 따라 점점 가격이 치솟게 되었다. 당시 튤립 재배자들은 모두 돈을 벌었다. 말 그대로 튤립 사업 불패의 신화가 만들어졌다.

Spring_Pieter Breughel the Younger(1635)

이에 꽃을 피울 수 있는 튤립 구근을 가지고 있으면, 구근을 튤립꽃으로 키워 더 비싼 값에 팔 수 있겠다는 생각에 튤립꽃이 아닌 튤립 구근이 투기 대상이 되기 시작했다. 이렇게 튤립 구근 시장 규모가 커지면서 선물시장(先物市場)도 생겨났다. 선물시장은 장래의 일정 시점에 인수·인도할 것을 약속하는 거래로, 현재의 상품을 거래하는 현물시장(現物市場)에 상대되는 개념이다. 즉, 한겨울임에도 내년 여름에 나올 튤립 구근에 대한 거래가 이루어지기 시작한 것이다.

일확천금을 노리는 사람들이 튤립 구근 선물거래에 참여했다. 튤립 구근은 양산하기 어렵기 때문에 개수가 한정되었고, 수요가 몰리자 가격이 급등했다. 튤립 구근을 사면 떼돈을 번다는 소문이 돌면서 영주는물론 장인(匠人), 농민들도 투기에 참여했다.

그러다가 1637년 2월 3일 갑작스럽게 튤립 거래가가 폭락했다. 거품이 꺼진 것이다. 평소대로라면 경매가격으로 1200길더(약 8억원)면 여러 명이 사려고 안달했던 ‘하얀 왕관’이란 별칭이 붙은 튤립 구근 1파운드(lb)가 한 번 유찰되기 시작하자 불안한 분위기는 빠르게 전파되었고, 결국 가격 폭락은 인근 지역으로 빠르게 번져나갔다. 같은 해 1월에 600길더(약 4억 원)에 판매되던 튤립 구근이 5월엔 6길더(약 4백만원)로 떨어져 튤립 시장은 붕괴되었다.

당시 네덜란드에서는 튤립 열풍으로 튤립의 가치가 여러 사람의 손을 거치면서 끊임없이 부풀려지고, 상품으로 팔 수조차 없는 하급 품종조차 가격이 매겨졌다. 많은 사람들이 튤립 시장에서 거래 자금을 조달하기 위해 소유물을 팔거나 저당 잡혔고, 이들은 단순히 손해를 보는 것으로 끝난 것이 아니라 결국 완전히 파산했다.

The Tulip Folly_Jean Léon Gérôme(1882)

네덜란드의 튤립 사태는 자산 거품 형성과 붕괴의 역사에 늘 언급되는 사례이기도 하다. 빚으로 충당된 자산시장, 튤립 구근의 희소성에 끌린 수요, 그리고 치솟는 가격에 이끌린 수요 등에 의해 내재적 가치를 이탈한 튤립 시장의 거품이 꺼지는 것은 시간문제였던 것이다. 돌이켜보면 튤립 구근이라는 실물이 존재하고 있었고, 그것의 내재적 가치를 매매의 당사자 나름대로 평가하고 있었는데, 실물 시장이 흔들리자 선물 시장은 걷잡을 수 없이 무너질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가상화폐시장에서도 이러한 선물거래를 제한해야 하는 것이 아닌가라는 의문이 들 수 있다. 재산적 가치가 있다면 선물거래가 이루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가상화폐 선물거래가 가능하다면 실제 가상화폐를 사고파는 현물거래가 아니라 가상화폐의 가격의 상승 또는 하락을 예측하여 장래의 일정 시점에 가상화폐를 인수·인도할 것을 약속하는 거래를 할 수도 있게 되는 것이다. 그렇다면 가상화폐에도 재산적 가치가 있는 것일까?

가상화폐의 대표주자 격인 비트코인이 인터넷 환경에서 불법적 거래의 수단으로 이용된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가상화폐에 대해 관심을 가진 사람들은 가상화폐의 결제수단으로서의 기능에 주목하게 되었다. 물론 가상화폐는 한정된 영역 내에서는 사적인 교환수단으로서 기능하고 실제 교환가치를 갖는다고도 볼 수 있다. 하지만 지급결제수단으로 인정받기 위해서는 법률에서 결제수단으로 규정되어야 하는데 우리나라에는 가상화폐를 지급결제수단으로 규정한 법률이 존재하지 않으므로 가상화폐를 지급결제의 수단으로 볼 수 없다.

또한 많은 사람들이 가상화폐를 거래소에서 거래할 수 있는 투자상품으로 인식하고도 있다. 투자상품이라면 금융상품인가?

「자본시장과 금융투자업에 관한 법률」(이하 “자본시장법”)에서는 금융상품을 증권과 파생상품으로 구분하여 규정하고 있는데, 가상화폐가 증권 또는 파생상품에 해당한다면 금융상품으로 볼 수 있다. 먼저 자본시장법은 증권을 채무증권, 지분증권, 수익증권, 투자계약증권, 파생결합증권, 증권예탁증권의 6가지 유형으로 규정하고 있고, 여기에 해당하는 경우에만 증권으로 인정받을 수 있다.

그런데 자본시장법상 증권은 특정 발행자를 전제로 하는 반면 가상화폐의 경우 특정 발행자가 있는 것이 아니어서 가상화폐를 증권이라고 보기는 어렵다는 것이 일반적인 견해이다. 그러면 가상화폐는 파생상품인가? 가상화폐를 사고팔 수는 있겠지만 가상화폐 그 자체가 어떤 기초자산의 가치를 평가하여 장래의 채권계약을 성립시키는 효력을 갖는 계약은 아니므로 파생상품에도 해당한다고 볼 수 없다. 결국 가상화폐는 금융상품이라 보기는 어렵다.

그렇다면 가상화폐는 무엇인가? 전자적 기록 내지 정보에 불과한데 그 자체로 재산적 가치를 인정받을 수 있느냐가 문제된다. 최근 우리나라에서도 가상화폐의 재산적 가치를 인정한다는 전제하에서 비트코인에 대한 몰수를 인정한 판례가 있다. 이미 미국의 상품선물거래위원회(CFTC)에서는 가상화폐를 Commodity 즉, 상품에 해당되는 것으로 보고 선물거래를 허용하고 있다.

 

이재훈

글 | 이재훈
성신여자대학교 법학부 교수
국가과학기술연구회 감사위원회 감사위원
변호사 / 변리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