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주곡(前奏曲)과 휴대(携帶)
[아츠앤컬쳐] “쇼팽이 작곡한 음악 가운데 가장 뛰어난 곡이 어떤 곡이냐?”라는 질문을 받게 된다면 가장 흔히 들을 수 있는 대답이 바로 전주곡(前奏曲, Prelude)일 것이다. 물론 다른 누군가는 쇼팽의 연습곡(練習曲, Etude)을 꼽기도 할 것이다. 쇼팽이 단순한 ‘연습곡’에 예술성을 부여해 하나의 연주곡으로 만들어 낸 것과 같이, 쇼팽의 전주곡도 그 자체로 독립된 음악으로서 후대에 큰 영향을 미쳤다.
쇼팽의 연습곡은 24개의 전주곡과 여러 가지 면에서 많이 닮아 있는 곡이지만, 연습곡은 ‘기교의 연마’라는 1차적인 목표를 우선할 수밖에 없는 반면, 전주곡은 일체의 기교적인 제약 없이 자유롭고 깊이 있는 음악적 내용을 다루고 있으므로 작품의 ‘질’ 측면에서 전주곡에 더 무게가 실리는 데는 이견이 없다.
쇼팽의 전주곡 중 어떤 곡은 정열적이고 과격하며(16번), 또 어떤 곡은 경쾌하고 목가적이며(3번, 23번), 혹은 유쾌하고(11번), 어떤 곡은 절망적이다(24번, 18번). 위에서 열거한 몇 가지 성격 외에도 전주곡집에는 쇼팽의 수많은 표정이 남김없이 드러나 있으며 이 곡들을 하나의 연속적인 음악으로 연주했을 때는 어쩌면 매우 아름다운 선율이라기보다는 복잡하고 애매한 느낌이 들 수도 있다.
사실 전주곡은 사전적 의미로서 ‘종교적 또는 세속적 음악 작품에 있어서, 시작 또는 도입의 역할을 하는 악곡’으로 정의된다. 하지만 전주곡은 시대에 따라 다양한 형태로 변형되어 왔다. 전주곡은 현악기의 한 종류인 류트(Lute)를 연주할 때 사용하는 짧은 즉흥곡부터 시작하였다. 그리고 건반악기 연주자들이 연주할 음악의 음고나 음계를 확립하기 위한 짧은 즉흥곡으로 발전하였다. 그러던 것이 쇼팽(Frédéric Chopin, 1810~1849), 리스트(Franz Liszt, 1811~1886), 드뷔시(Claude Debussy, 1862~1918) 등에 이르게 되면서 시작이나 도입을 의미하던 초기의 전주곡과는 달리 단일 주제로 이루어진 사실상 ‘독립된 악곡’의 형태로까지 변화한 것이다. 쇼팽 이전의 전주곡은 바로크 시대 음악에서 주된 악곡의 형식으로 쓰던 푸가(fuga)의 앞에 항상 붙는 짤막한 도입곡으로 사용되거나 모음곡의 첫머리를 장식하는 역할을 담당하였다.
독립적인 전주곡은 19세기 피아노를 위한 전주곡 형태로 발전하기 시작했다. 이 시기의 전주곡은 사실 제목만 전주곡일 뿐 당시 낭만파 정신의 표현에 가장 적당한 악곡 형태로서의 독립된 소곡이라 할 수 있다. 낭만파 시대의 음악에서 보이는 음악적 특징 중 하나는 고전파 시대의 다악장 형태의 대규모 형식에서 벗어나는 것이었다. 이러한 소곡은 형식이 극히 단순하고 내용의 표현이 자유로우며, 감정을 담아 표현하기에 적절하기 때문이다. 독립적 전주곡이 단악장의 소규모 음악 형식으로서 당시의 낭만파의 개성적인 표현 양식이 될 수 있었던 이유이기도 하다.
그럼에도 쇼팽의 전주곡의 바탕에 깔려 있는 음악적인 발상은 바흐(Johann Sebastian Bach, 1685~1750)의 전주곡과 전혀 다르지 않다. 쇼팽의 24개 전주곡은 24개의 모든 조성으로 작곡을 실시하면서 각각의 조성에 대해 작곡가가 가지고 있던 인상, 혹은 즉흥적으로 떠오르는 이미지를 음악적으로 표현했다. 그렇지만 쇼팽의 전주곡은 조의 배열순서에 있어서는 바흐의 전주곡과는 전혀 다른 방법을 취하고 있다. 쇼팽의 전주곡들이 하나의 연속적인 음악으로 연주될 때, 복잡하고 애매하여 형이상학적이라고 표현하기도 하는 이유다.
이와 같이, 어떠한 용어가 가진 내용을 시대나 사회 상황에 따라 다르게 해석하는 경우가 법률용어에서도 존재할까?
A는 1996년 주차위반을 하지 않았음에도 견인차 사무소 관리직원인 B에게 견인료를 납부하라는 요구를 받는다. B가 견인료를 납부하지 않으려는 A의 차량을 가로막자, A는 자신의 차량으로 B의 다리 부분을 들이받아 B는(가) 넘어지는 등의 사고가 발생한다.
법원에서는 개정 전의 「폭력행위 등 처벌에 관한 법률」 제3조제1항의 ‘흉기나 그 밖의 위험한 물건을 휴대하여’ 폭행죄 등을 범한 사람을 단순 폭행죄 등에 비하여 가중처벌하도록 한 규정을 이 사안에 적용할 수 있는지 고민하게 된다. 즉, A가 자신의 차량으로 B를 넘어뜨렸는데, 자동차가 ‘위험한 물건’에 해당하는지, 자동차를 운전한 행위가 위험한 물건을 ‘휴대한’ 것에 해당하는지가 쟁점이었다.
‘위험한 물건’에 관한 정의는 그 물건의 객관적 성질과 사용방법에 따라 사람을 살상할 수 있는 물건을 말하고 그것이 사람을 살상하기 위하여 제조된 것만을 위험한 물건이라고 하지는 않는다는 것이 일반적 해석이다. 자동차가 살상의 목적으로 만들어진 물건은 아니지만 A가 B를 넘어뜨리는데 차량을 사용했다면, 객관적으로 위험성이 증대된다고 볼 수 있어 ‘위험한 물건'에 해당한다고 할 것이다. 어떤 물건이 ‘위험한 물건’에 해당하는지 여부는 구체적인 사안에서 사회통념에 비추어 그 물건을 사용하면 상대방이나 제3자가 생명 또는 신체에 위험을 느낄 수 있는지 여부에 따라 판단하여야 한다면서, 이러한 판단 기준은 자동차를 사용하여 사람의 생명 또는 신체에 위해를 가하거나 다른 사람의 재물을 손괴한 경우에도 마찬가지로 적용된다고 보고 있다. 실제로 자동차가 위험한 물건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판례도 존재한다.
문제는 ‘휴대(携帶)’이다. ‘휴대’의 사전적 의미는 글자의 뜻 그대로 ‘손에 들거나 몸에 지님’이라고 풀이한다. 우리가 자주 쓰는 “손에 들거나 몸에 지니고 다니면서 걸고 받을 수 있는 전화기”가 바로 휴대폰이듯 말이다. 그러나 차량을 ‘운전하여’ 이를 수단으로 하여 가해행위를 하는 경우는 도저히 차량을 ‘손에 들거나 몸에 지닌 것’이라고 해석할 수는 없을 것이므로 사전적 의미로 차량 운전을 수단으로 하여 가해행위를 한 경우는 위험한 물건을 ‘휴대’하였다고 보기는 어려울 수 있다. 그러나 대법원은 ‘휴대’한다는 말에는 소지한다는 뜻뿐만 아니라 널리 이용한다는 뜻이 있다고 해석하면서 운전을 수단으로 한 가해행위도 위험한 물건을 ‘휴대하여’ 행위한 것으로 해석하고 있으며, 이러한 입장은 현재도 유지되고 있다.
글 | 이재훈
성신여자대학교 법학부 교수
국가과학기술연구회 감사위원회 감사위원
변호사 / 변리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