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주귀걸이와 귀금속
[아츠앤컬쳐] 요하네스 베르메르(Johannes Vermeer, 1632~1675)의 생애에 대해서는 별로 알려진 것이 없다. 하지만 어떤 과장도 없이 자연스럽게 표현한 17세기 네덜란드의 일상이 마치 손에 잡힐 것 같은 느낌을 주고 있기 때문에 시대를 뛰어넘어 오늘날까지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을 받고 있다.
베르메르는 1632년 네덜란드 서부의 운하와 벽으로 둘러싸인 작은 도시 델프트(Delft)에서 태어났다. 17세기의 델프트는 맥주, 모직물 등의 수출로 번성했던 상업도시였다. 평생 고향을 떠나지 않고 40여 년 생애의 절반을 그림을 그리며 보낸 베르메르는 여인숙과 술집을 경영하면서 틈틈이 작업하였고, 현재 30여 점의 회화작품을 남겨두고 있으나 아직까지도 그의 작품 중에는 진위 여부에 논란의 여지가 있는 작품도 많다. 요하네스 베르메르에 대한 개인적인 기록은 11명 자녀의 좋은 아버지이자 델프트의 존경받는 시민이었다는 사실 외에는 거의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베르메르의 대표작이라고 할 수 있는 <진주 귀걸이를 한 소녀(Girl with a Pearl Earring(네덜란드어: Meisje met de parel)), 1665년 추정>는 세심한 붓놀림, 빛의 이용에 뛰어난 작품이다. 진주 귀걸이가 반짝반짝 빛나는 이 매혹적인 그림이 미술 애호가들에게 최고의 사랑을 받은 여러 이유 중 하나는 바로 검은 배경이 대조되는 얼굴을 두드러지게 보이게 하며 공간의 힘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네덜란드의 모나리자라고도 불리는 이 작품은 검은 배경으로 인해 소녀가 있는 장소도 추측하기 어렵고, 소녀가 누구인지도 확실치 않다.
베르메르의 그림의 주인공이 하고 있는 진주 귀걸이를 보면, 사회적 계급이 높거나 부유한 계층에 속했을 것 같다. 표정만 봐서는 감정도 도무지 파악이 되지 않는다. 사실 베르메르는 유명한 화가였다고 보기는 어렵다. 이러한 베르메르가 관심을 받기 시작한 것은 1866년 테오필 토레(Théophile Thoré-Bürger)라는 학자가 베르메르 관련 논문을 발표한 후부터다.
이후 트레이시 슈발리에(Tracy Chevalie, 1962~)가 베르메르의 동명의 회화작품에 착안해 저술한 소설 ‘진주 귀걸이의 소녀’가 히트를 치게 된다. 트레이시 슈발리에는 바로 앞선 베르메르 그림의 주인공에 대한 해석을 문학의 몫으로 이해했다. 베일에 싸여있는 그림의 주인공을 예술가의 영혼을 지닌 어린 하녀로 추리한 것이다. 베르메르의 작품은 이를 바탕으로 피터 웨버(Peter Webber, 1960~) 감독에 의해 2003년에 영화로 제작되어 대중에게 널리 알려지게 되었다(영화에서 이 그림의 주인공을 스칼렛 요한슨이 맡아 큰 화제가 되기도 하였다).
인류 최초의 보석이라고도 할 수 있는 진주는 베르메르의 작품을 통해서, 그리고 수천 년이 지난 지금에 와서도 많은 사람들의 사랑을 한 몸에 받고 있다. 진주는 어떻게 만들어질까? 조개는 입수관을 통해 물을 빨아들여 유기물을 걸러 먹고 남은 물을 출수관을 통해 배출하는데, 이때 물에 섞여 들어온 불순물 중 미처 걸러내지 못한 것들이 조개껍질을 만드는 물질에 천천히 둘러싸이며 조금씩 커져 결정을 이룬 것이 진주이다. 즉, 조개의 체내에 모래나 조개 파편 또는 기생물질 등이 침투하면 조개는 이 침투 이물질을 서서히 부드러운 탄산칼슘 성분으로 자연스럽게 감싸게 되는데 이것이 바로 천연 진주다.
보석으로서 가치를 인정받는 진주를 더 얻기 위해 사람들은 인위적으로 양식 진주를 생산하기 시작했고, 이 양식 과정에서 조개를 속이게 된다. 이러한 양식 진주는 조개 속에 인공 핵(침투 이물질)을 인위적으로 삽입하여 조개가 이를 감싸는 물질을 만들도록 한다.
진주에 대한 정의는 무엇일까? 국내에서 진주에 대해 명확하게 정의하고 있는 규정을 찾아보기는 쉽지 않다. 다만, 스위스 소재 비영리 단체인 “CIBJO(World Jewelry Confederation)”라는 곳에서는 진주에 관한 사항들을 정리한 책자(blue book)를 만들어서 공개하고 있다. 이 단체에서는 천연 진주는 조개 내부에 우연히 (인력이 완전히 배제되어야 한다) 형성된 것으로 유기물과 탄산칼슘이 동심원상으로 층을 이루고, 겉은 광택을 갖는 것이라고 정의하고 있다.
아쉽게도 국내에는 이러한 명확한 규정이 없다. 국내에서는 국가기술표준원에서 국가표준으로 ‘귀금속 및 그 가공제품’을 규정하고는 있으나, 귀금속은 ‘금, 백금 및 은으로 만들어진 제품’을 뜻하며 그 가공제품은 ‘귀금속 또는 그 합금을 사용하여 여러 가지 형태로 가공한 제품’이라고 정의하고 있다. 결국 ‘귀금속 및 그 가공제품’은 말 그대로 귀한 금속에 관한 표준일 뿐이기 때문에 금속이 아닌 진주는 그 범위에 포함되지 않는 것이다.
진주는 보석이라고 할 수 있을까? 우리나라 일부 법령을 통해 진주가 보석에 속하는지 여부를 간접적으로나마 확인해볼 수 있다. 우리나라에는 개별소비세법이라고 있는데, 개별소비세는 특정한 물품, 특정한 장소에의 입장행위(入場行爲), 특정한 장소에서의 유흥음식행위(遊興飮食行爲) 및 특정한 장소에서의 영업행위에 대하여 부과하는 세금이라고 할 수 있다. 가령, 진주로 만든 제품이 500만원을 초과한다면 그 500만원을 초과하는 부분에 대한 20% 비율로 세율이 적용된다. 그런데 이러한 물품을 다음과 같이 나열하고 있다. ①보석(공업용 다이아몬드, 가공하지 아니한 원석(原石) 및 나석(裸石)은 제외한다), ② 진주, ③ 별갑(鼈甲), ④ 산호, ⑤ 호박(琥珀), ⑥ 상아와 이를 사용한 제품(나석을 사용한 제품은 포함한다), ⑦ 귀금속 제품으로 총 7가지로 구분한다.
진주는 유기질(有機質)이기 때문에 다른 보석 원석이나 귀금속과는 다르다. 진주는 우리들이 흔히 이야기하는 유색 보석(루비, 사파이어, 에메랄드 등)의 한 종류가 아니다. 바로 살아있는 생명체가 만들어낸 것이라서 차이가 난다.
별갑, 산호 등도 귀금속으로 보기는 어렵다. 별갑(鼈甲)은 일반적으로 인도양이나 카리브해 앞에 서식하는 자라과 동물의 등딱지를 말려서 가공한 것이다. 장신구나 안경테에 사용한다. 산호는 열대 바다에 대부분 서식하며, 강장과 입을 가진 작은 개체(個體)인 산호충들이 모여 있는 군체(群體)로 분류되는 자포동물이다. 산호를 두고 18세기까지만 해도 광물이나 식물로 오인하기도 하였으나, 동물이 맞다. 산호 중에서도 심해에서 자라는 빨강과 분홍 산호가 장신구로 활용되는 주종이다. 마지막으로 호박(琥珀)은 나무의 수지가 화석화된 것이다.
글 | 이재훈
문화 칼럼니스트, 변호사, 한국과학기술기획평가원 연구위원, (주)파운트투자자문 감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