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네랄리페 정원의 물소리

2023-04-01     아츠앤컬쳐
헤네랄리페의 분수 정원

 

[아츠앤컬쳐] 국민악파 음악은 낭만주의 후기에 싹터서 서양음악의 주류가 아닌 여러 나라를 중심으로 형성되었다. 국민악파 음악가들은 독일 및 오스트리아의 기악과 이탈리아 오페라의 주도적인 영향에서 탈피해 자신의 조국의 고유한 민요, 춤곡, 전설, 문학적 소재에 눈을 떴다.

스페인 국민악파의 핵심 인물은 페드렐, 알베니스, 그라나도스이다. 이들은 모두 바르셀로나를 중심으로 하는 카탈루냐 지방 사람들이다. 그들의 후배 마누엘 데 파야(Manuel de Falla 1876~1946)는 안달루시아 지방의 카디스에서 태어났는데 그도 사실 따지고 보면 안달루시아 혈통은 아니다. 왜냐면 그의 아버지는 중동부해안의 발렌시아사람이고 어머니는 카탈루냐사람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안달루시아에서 성장한 그는 어느 누구보다도 더 깊숙이 안달루시아 음악의 토속적인 본질에 다다를 수 있었던 것 같다.

그의 대표작은 1915년에 완성한 『스페인 정원의 밤』이다. 이 작품은 <헤네랄리페에서>, <멀리 들리는 춤곡>, <코르도바 산맥의 정원에서>으로 구성된 일종의 3악장의 피아노 협주곡이다. 첫 번째 곡의 제목이 된 헤네랄리페는 안달루시아 지방의 그라나다에 있다.

헤네랄리페에서 내려다본 알함브라 성채와 그라나다 시가지

역사적으로 볼 때 그라나다는 이베리아 반도를 800년 동안 점령했던 이슬람세력의 마지막 보루였다. 이슬람 세력의 본산이었던 알함브라는 이베리아 반도에서 볼 수 있는 이슬람 건축의 백미로 손꼽힌다. 그라나다 시가지를 수호신처럼 내려다보고 있는 알함브라는 군사용 요새 알카사르, 이슬람 왕의 집무 공간과 사적(私的) 공간으로 이루어진 궁전, 후세에 세워진 카를로스 5세 궁전, 또 이 전체의 성채를 내려 볼 수 있는 높은 지역에 세워진 왕의 여름별장 헤네랄리페로 이루어져 있다.

헤네랄리페는 알함브라 성채 건너편 산 중턱에 세워진 이슬람 왕조의 여름별장으로 또 하나의 ‘작은 천국’이라고나 할까. 이곳에서는 ‘속세’가 눈 아래에 보이면서 ‘속세’로부터 멀리 떨어져 있는 듯하다.

헤네랄리페(Generalife)’라는 이름은 원래 스페인어가 아닌 아랍어로 ‘건축가의 정원’이란 뜻에서 유래되었다고 하는데, 이 별장과 정원을 설계한 건축가를 지칭하는 것인지 아니면 어떤 다른 이유가 있는지는 알 길이 없다. 헤네랄리페는 정감이 흐르는 아담한 공간으로 구성되어있다. 절묘한 공간들의 배치, 품위 있는 선, 빛과 그늘이 교차하면서 확 트인 조망은 이곳의 매력이다.

헤네랄리페 안 이탈리아 르네상스 풍의 정원

큰 사이프러스 나무와 이름 모를 관목들과 향기로운 꽃들이 우거진 헤네랄리페 정원에서는 물소리가 들려온다. 마치 운하를 축소해 놓은 것처럼 좁고 길 다란 연못 양쪽에서 일렬로 작은 포물선을 그리며 조용히 물을 뿜는다. 물이 항상 있는 것은 삶을 풍족하게 하기 위한 것일 뿐만 아니라 정원을 지상의 천국으로 승화하려는 기원이 담겨있는 것 같다.

하지만 헤네랄리페를 처음 설계했던 이슬람 건축가의 의도는 그런 것이 아니었다. 원래모습대로라면 길쭉한 연못의 수면은 마치 하늘을 투영하는 거울처럼 잔잔했을 것이다. 또 정원의 조경도 원래는 지금처럼 울긋불긋한 꽃들로 이루어져 있었던 것이 아니라 주로 상록수로 담백하게 처리되었다. 그러고 보면 헤네랄리페는 지금보다 훨씬 더 명상의 공간처럼 느껴졌을 것 같다. 사실 헤네랄리페 정원의 모습은 그라나다가 기독교 세력에 의해 함락된 다음 이탈리아 르네상스 정원의 영향을 받아 다소 변형되었는데 이때 물을 포물선처럼 뿜게 했던 것이다.

한편 <헤네랄리페에서>는 이 정원에서 느끼는 인상을 음악으로 옮긴 것이라고 말할 수 있겠는데 관현악의 흐름을 타고 울리는 피아노의 아르페지오 소리는 바로 이 물소리를 연상하게 한다.

 

글·사진 | 정태남 이탈리아 건축사
건축 외에도 음악, 미술, 역사, 언어 분야에서 30년 이상 로마를 중심으로 유럽에서 활동했으며 국내에서는 칼럼과 강연을 통해 역사와 문화의 현장에서 축적한 지식을 전하고 있다. 저서로는 <이탈리아 도시기행>, <동유럽문화도시 기행>, <유럽에서 클래식을 만나다>, <건축으로 만나는 1000년 로마>외에도 여러 권 있다. culturebox@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