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르비니아 Cervinia

2019-11-01     아츠앤컬쳐
photo by Matteo Catanese

[아츠앤컬쳐] 유명한 알프스 마터호른(Matterhorn)산을 보다 가까이에서 즐기기 위해서는 해발 1,600m에 위치한 스위스 체르마트(Zermatt) 마을을 찾는 것이 한국에서는 상식처럼 통하는 것 같다. 더군다나 마터호른산이 오직 스위스만의 산인 줄 아는 사람들도 많다. 하지만 알프스산맥을 경계로 스위스와 국경을 마주하고 있는 이탈리아도 웅장한 알프스 산들을 소유하고 있으며 우리가 잘 아는 마터호른산도 일 체르비노(Il Cervino)라는 이름으로 이탈리아에서 각광받고 있는 산 중 하나다.

물론 스위스 쪽에서 바라보는 마터호른산과 이탈리아에서 바라보는 체르비노산은 똑같은 산이지만 보이는 각도에 따라 그 산의 모양과 느낌도 사뭇 다르게 느껴지는 게 사실이다. 어느 쪽에서 바라보는 산이 더 아름다운지는 각자의 취향이 다르기에 필자의 의견을 삼가겠다.

이탈리아의 체르비노산을 보기 위해서는 이탈리아 북서쪽 발레 다오스타(Valle d’Aosta)주의 체르비니아(Cervinia) 산속 마을을 찾아야 한다. 거주민 700명의 이 작은 산속 마을은 해발 2,050m에 위치하며 스위스 체르마트 마을과 마찬가지로 알프스 산들을 오르내리는 다수의 케이블카들이 설치된 베이스캠프와도 같은 곳이다. 특히 스키 코스가 옆동네 스위스까지 이어져 있고 3,000m가 넘는 높은 지대에선 한여름까지 스키를 즐길 수 있는 장점이 있어 스키마니아들의 천국으로 각광받는 유명한 곳이다. 사계절 모두 아름다운 자연경관을 즐기기 위해 유럽 전 지역에서 수많은 여행객들이 이곳 체르비니아 마을을 방문한다.

photo by Joshua Fuller

겨울에는 모든 케이블카가 운영되지만 여름에는 여름 스키를 탈 수 있는 3,500m 플라토 로자(Plateau Rosa) 행 케이블카만 운영이 된다. 중간에 한번 2,560m 플란 메종(Plan Maison)에서 내릴 수 있는데 이곳은 바로 체르비노산을 가장 가까이에서 접할 수 있는 최상의 지역으로 체르비노산을 병풍 삼아 바라보며 점심을 즐길 수 있는 멋진 산장이 두 곳이나 있다.

필자도 좋은 기회를 놓칠세라 체르비노산이 코앞에서 올려다보이는 야외 식탁에 앉아 정말 원 없이 체르비노산을 관망하며 행복한 시간을 보냈다.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스위스 쪽에서 보는 그 날카로운 절벽 느낌의 뾰족한 삼각형 산은 아니지만 옆에 바위산들이 붙어 좀 더 부드럽게 주변의 산들과 어우러져 위용보다는 친근감과 따뜻함을 맛볼 수 있는 편안한 아름다움이다. 

Breuil-Cervinia, Aosta Valley, Italy photo by Karin Hiselius

그렇게 점심을 먹고 커피를 마시러 올라간 곳이 케이블카 종착지인 3,500m 플라토 로자(핑크 고평원)다. 올라가는 도중에 내려다보이는 여러 크고 작은 호수들의 다양한 물 색깔이 마치 그림물감을 풀어놓은 듯 비현실적이다. 하지만 더욱더 비현실적이었던 것은 8월 한여름에 눈앞에 펼쳐진 새하얀 세상이었다! 한겨울처럼 스키복을 차려입은 스키어들이 더 높이 올라가는 스키 리프트를 타고 구름 속으로 하나둘 사라지는 광경이란.... 이 모든 경이로운 상황을 그저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깊은 힐링이 된다. 한여름일지라도 기온이 낮은 높은 산에 오르니 옷을 따뜻하게 준비해 입었음에도 불구하고 바람이 세게 불어 사뭇 춥다. 30도를 웃도는 무더운 한여름의 피서지로서는 도시에서 가깝고 자연경관이 수려한 이곳 체르비니아 마을이 정말 안성맞춤이다.

알프스산맥 빙하가 녹아 흐르는 물줄기

케이블카를 타고 산에 올라가지 않더라도 체르비니아 산속 마을은 이곳저곳 트레킹 할 곳이 많고 멋진 호수와 동굴, 폭포 등 볼거리가 한가득하다. 특히 높은 알프스 산꼭대기의 빙하가 곳곳으로 흘러내리며 크고 작은 폭포수를 이루어 강의 기원이 되는 모습은 쉽게 접할 수 없는 값진 풍경이다. 골프장도 있어 알프스산맥에 둘러싸여 기억에 남을 멋진 라운딩도 할 수 있다. 로마 피렌체 등 유명 역사 문화 유적지를 찾아 이탈리아를 방문하는 가운데 하루 이틀 정도는 이탈리아의 자연을 찾아 산과 바다, 호수, 강으로 현지인들에게 사랑받고 있는 작은 마을들을 방문하는 것도 진정한 이탈리아를 즐기는 좋은 방법이다.

글·사진 | 김보연
아츠앤컬쳐 밀라노특파원, 문화 칼럼니스트
lavitajit@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