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메타나와 블타바 강

2023-11-01     아츠앤컬쳐
블타바 강변의 스메타나 동상

 

[아츠앤컬쳐] 블타바(Vltava) 강은 남부 보헤미아 숲으로부터 흘러나오는 강줄기에 서부 보헤미아 숲에서 흘러나오는 또 하나의 지류가 합류하여 흘러가다가 비셰흐라드 언덕을 스치고는 프라하 시가지를 관통한다. 비셰흐라트 언덕은 10세기 후반 프르제미슬 왕조의 탄생 전설이 깃든 곳인데 이 왕조는 체코역사의 문을 연 순수 체코민족의 왕조였다. 이 왕조가 끝난 후 체코는 외세의 지배를 받으면서 격동의 역사를 맞게 된다.

체코는 17세기에 오스트리아 합스부르크 왕가의 지배 아래에 놓이게 되면서 점점 독일화되었고, 1918년 제1차 세계대전이 끝난 다음에야 ‘체코슬로바키아’라는 국명으로 비로소 독립국이 되었다. 하지만 나치독일의 점령, 공산주의 통치, 1989년 벨벳 혁명 등을 거친 다음자유를 다시 찾았고 1993년에 체코와 슬로바키아 두 나라로 조용히 갈라졌다. 이런 격동기 속에서도 프라하는 다행히 파괴되지 않고 아름다운 옛 시가지 모습을 거의 그대로 보존하고 있다.

비셰흐라트 언덕과 블타바 강

프라하의 유서 깊은 카렐 다리 남쪽 블타바 강변에는 스메타나 박물관이 있고 바로 앞에는 그의 동상이 세워져 있다. 베드르지흐 스메타나(Bedřich Smetana 1824~1884)는 체코 국민음악의 선구자였다. 그의 17년 후배인 드보르작은 그가 다져놓은 토양 위에 체코 음악을 세계적인 수준으로 끌어올렸고 국제적인 명성을 누렸다. 하지만 스메타나만큼 체코 사람들의 마음속 깊이 자리 잡은 음악가는 없다.

그가 24세였을 때인 1848년의 일이다. 프라하에서는 오스트리아의 지배에 항거하여 시민들이 일어섰는데 이 투쟁에 스메타나도 나섰다. 하지만 결과는 참담했다. 그후 그는 민족의식에 더욱 고취되어 음악에 체코 민족혼을 불어넣는 데 앞장섰다. 그런데 오스트리아 지배하에서는 독일어가 공용어였기 때문에 독일어는 그의 모국어나 다름없었다. 그가 체코어를 제대로 배우기 시작한 것은 나이가 이미 30이 넘었을 때였으니 그의 체코어 이해력이나 구사력은 한계가 있었으리라. 하지만 그는 이런 약점에도 불구하고 독일문화권 음악의 주류에 뿌리를 두고 체코의 역사, 영웅담, 전설, 민속 등과 같은 요소를 첨가시키거나 체코의 풍경을 표제로 하는 등 음악을 작곡했던 것이다.

프라하 중심부를 흐르는 블타바 강

그런데 그의 삶은 운명의 신과의 싸움 그 자체였다. 한때 그는 스웨덴의 외테보리에서 몇 년 동안 객원지휘자로 있으면서 약간의 행복감을 느껴보긴 하지만, 이를 제외하고는 끝없는 고난과 고통 속에서 살았던 것이다. 젊었을 때는 경제적인 어려움을 처절하게 겪었고, 어느 정도 사회적 기반을 갖춘 다음에는 딸 넷 중에서 셋이 죽는가 하면, 첫 번째 아내도 병으로 잃는 등 이루 말할 수 없는 인간적인 슬픔도 겪었다. 그것도 부족한지 큰 시련이 또 엄습해 왔다. 음악가에는 치명적인 재앙이라고 말할 수밖에 없는 청력장애였다.

하지만 스메타나는 운명의 신과 맞섰다. 소리가 제대로 들리지 않는 상태에서 작곡하기 시작한 것이 바로 연작교향시 《나의 조국(Má Vlast)》이다. 6곡으로 이루어진 이 교향시의 첫 번째와 두 번째 곡 <비셰흐라트>와 <블타바 강>은 1874년에 작곡했고 나머지 4곡은 그가 완전히 귀머거리가 된 다음인 1879년에 완성했다. 그런데 침묵의 세계에서도 창작열에 불타던 그에게 운명의 신은 계속 가혹했다. 청력상실에다가 정신착란증까지 겹치게 되었던 것이다. 1884년 5월 12일 그는 프라하의 정신병동에서 60세의 일기로 파란만장한 삶을 마감했고, 그의 시신은 모든 체코국민들의 애도 속에 블타바 강변 비셰흐라트 언덕 묘지에 안장되었다.

《나의 조국》에서 가장 많이 알려진 곡은 단연 두 번째 곡 <블타바 강>이다. 두 곳의 다른 원천에서 흘러나와 합류하여 프라하를 지나는 블타바 강처럼, 이 곡에서도 그의 마음에 드리워진 슬픔과, 이를 극복하고 승화된 우아함이 어우러져 흘러가고 있다. 애수어린 환희를 담고...

 

글·사진 | 정태남 이탈리아 건축사
건축 외에도 음악, 미술, 역사, 언어 분야에서 30년 이상 로마를 중심으로 유럽에서 활동했으며 국내에서는 칼럼과 강연을 통해 역사와 문화의 현장에서 축적한 지식을 전하고 있다. 저서로는 <이탈리아 도시기행>, <동유럽문화도시 기행>, <유럽에서 클래식을 만나다>, <건축으로 만나는 1000년 로마>외에도 여러 권 있다. culturebox@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