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라티슬라바성

2024-04-01     아츠앤컬쳐
브라티슬라바 중심가. 그 너머 오른쪽 언덕 위에 브라티슬라바성이 보인다.

 

[아츠앤컬쳐] 슬로바키아는 1993년에 체코슬로바키아로부터 독립했다. 체코슬로바키아는 제1차 세계대전이 끝난 1918년에 체코와 슬로바키아가 합쳐져서 세워진 나라였다. 그 이전에 슬로바키아는 체코와 마찬가지로 합스부르크 왕가가 주도하는 오스트리아-헝가리 이중제국이라는 한 지붕 아래에 있었는데, 당시 체코는 오스트리아가 관할했고 슬로바키아는 헝가리가 관할했다.

이런 역사적 배경과 지리적 위치 때문에 20세기 초반까지 슬로바키아의 수도는 헝가리의 입김이 강한 곳이면서도 제국의 수도 빈의 외곽도시의 성격이 강했다. 도시명도 독일어로는 프레스부르크(Pressburg), 헝가리어로는 포조니(Pozsony)였던 것이다. 체코와 슬로바키아가 ‘체코슬로바키아’라는 국명으로 독립한 다음 기존의 도시명은 슬라브 냄새가 물씬 풍기는 ‘브라티슬라바(Bratislava)’로 바뀌었었다. 현재 브라티슬라바는 인구 46만 정도밖에 안 되고 구시가지는 모두 발로 걸어 다녀도 될 정도로 규모가 아주 작지만 나름대로 소박한 고유의 매력을 지니고 있다.

도나우강과 브라티슬라바성 야경

브라티슬라바의 구심점은 구시가지 바깥 서쪽에 바위 언덕에 세워진 다소 무뚝뚝한 모습의 브라티슬라바성이다. 이 성은 도나우강과 브라티슬라바 시가지를 마치 수호신처럼 내려다보고 있다. 이 성에서는 브라티슬라바 시가지의 전경이 한눈에 들어올 뿐 아니라 서쪽으로는 국경 너머 오스트리아의 영토가 내려다보이고, 날씨가 좋으면 남쪽으로 헝가리 영토도 보인다. 그러니까 이 언덕은 오스트리아, 슬로바키아, 헝가리의 영토가 만나는 전략적으로 매우 중요한 요충지였음을 쉽게 짐작할 수 있다.

실제로 이 언덕은 카르파티아산맥과 알프스산맥 중간 지점에서 도나우강을 지켜보는 위치에 있기 때문에 수 천 년 동안 중부유럽에서 전략적 요충지로 여겨져 왔다. 그래서 이미 기원전 3500년에 이미 이곳에 고대인의 요새가 세워져 있었다. 그 후에는 켈트족의 일파인 보이족이 이 지역에 거주하다가 로마의 세력이 이곳까지 뻗게 되자 이 언덕은 기원전 9년부터 로마제국의 북동쪽 국경이 되었으며, 기원후 1~4세기에는 로마군이 이곳에 주둔했다. 그러니까 이 언덕이야말로 브라티슬라바의 역사가 시작된 지점인 셈이다.

브라티슬라바성 앞 스바토플룩 1세 기마상

이러한 유서 깊은 언덕 위에 세워진 브라티슬라바성은 그 기원이 9세기 대(大)모라비아 시대의 요새로 거슬러 올라간다. 대모라비아는 833년에 건국된 이래로 그 영역이 현재 슬로바키아의 서부 및 북부, 체코의 동부, 폴란드의 남부, 헝가리 서부, 독일 동부의 일부에 이르는 대국으로 발전했었지만, 내분으로 인해 국력이 쇠약해지는 바람에 100년도 못 되어 동방으로부터 건너온 이민족인 마자르족의 침입을 막지 못하고 903~906년에 멸망했다. 그때부터 슬로바키아는 마자르족의 나라 헝가리의 지배를 오랜 기간 동안 받게 되면서 헝가리의 영토로 굳어졌다.

그 후 오스만 튀르크가 헝가리를 침략하자 헝가리는 수도를 부다(Buda)에서 이곳으로 옮겼고 브라티슬라바성을 요새 및 정청(政廳)으로 사용했다. 그 후 헝가리가 오스트리아의 지배를 받을 때 합스부르크 왕가의 마리아 테레지아는 황제의 권좌에 오르면서 헝가리에도 궁전을 갖겠다고 했다. 그리하여 이 성은 1761년부터 1766년까지 마리아 테레지아 여제의 궁전이 되어 바로크 양식으로 화려하게 단장되었다.

하지만 이 성은 1811년에 소실된 후 완전히 폐허가 되어 오랜 기간 동안 방치되었다. 그러다가 1957년에야 비로소 옛 모습으로 복원되기 시작하여 바로크 양식으로(부분적으로는 고딕과 르네상스 양식으로) 다시 탄생했다. 오랜 복원작업이 완전히 끝난 2010년 6월 6일에는 성 입구에 대모라비아의 영토를 역사상 최대로 넓혔던 왕 스바토플룩 1세(846~894)의 기마상이 제막되었다. 이 기마상은 오랫동안 외세의 지배를 받으면서 살아오다가 1993년에야 비로소 처음으로 완전한 독립국가를 이룩한 슬로바키아 민족을 결속하려는 의미를 담고 있으리라. 그래서인지 도나우강 유역에 어둠이 깔릴 때 야간 조명을 받는 브라티슬라바성은 마치 슬로바키아 사람들의 민족적 자긍심을 밝히는 등불처럼 보인다.

 

글·사진 | 정태남 이탈리아 건축사
건축 외에도 음악, 미술, 역사, 언어 분야에서 30년 이상 로마를 중심으로 유럽에서 활동했으며 국내에서는 칼럼과 강연을 통해 역사와 문화의 현장에서 축적한 지식을 전하고 있다. 저서로는 <이탈리아 도시기행>, <동유럽문화도시 기행>, <유럽에서 클래식을 만나다>, <건축으로 만나는 1000년 로마>외에도 여러 권 있다. culturebox@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