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상파 다시 보기

2024-05-01     아츠앤컬쳐
Le chemin de fer _ Manet

[아츠앤컬쳐] 따뜻한 화풍, 화사한 풍경, 정겨운 일상을 담은 그림이 인상파 작품이다. 인상파 이전의 그림들은 대부분 의미가 담긴 진지한 작품들이었다. 종교와 역사를 다루거나 신화 이야기 또는 풍경이나 정물들을 묘사했다. 그렇다면 19세기 후반에 나타난 인상파는 그 당시 매우 혁신적인 그림들이었다. 요즘 우리는 인공지능의 등장으로 떠들썩하다. 이전과 이후의 변화가 궁금하다. 이처럼 인상파의 등장도 당시 미술계에는 센세이션 그 자체였다고 한다. 그 중심에 우리에게 친숙한 모네, 마네, 드가, 르누아르, 피사로, 까이보트 등이 있다.

Monet, Boulevard des Capucines 1873 © AFP / MIGUEL MEDINA

인상파 탄생 150주년

당시 프랑스 상황을 되돌아보면 보불전쟁(프로이센-프랑스 전젱, 1870년 7월 19일~1871년 5월 10일)의 여파를 간과할 수 없다. 전후 프랑스는 침체되고 어두운 분위기였으나 이를 극복하기 위한 노력 또한 박차를 가했다. 이에 대한 업적으로 당시 파리의 새로운 도시정책을 들 수 있다. 오스만 남작이 주도한 오페라 거리를 비롯한 방사선형 도로망과 널찍한 거리, 그리고 지금의 아름다운 파리의 건축물들 중 상당수가 건립되었다. 무엇보다 철도의 도래는 당시 프랑스인들의 라이프 스타일에 현격한 변화를 가져왔다. 이러한 도시와 시민들의 모습을 묘사한 이들이 바로 인상파 화가들이다. 현재를 그리고 타인이 아닌 우리의 모습을 그린 화가들이 바로 인상파 작가들이다.

Manet, Le chemin de fer 1873 © AFP / MIGUEL MEDINA

1874년 4월 15일 첫 전시

당시 국전에 해당하는 프랑스의 살롱전과는 별개로 새로운 전시가 열렸다. 국전에는 심사위원의 선발을 통해 전시가 이루어진다면, 인상파 화가들의 전시는 그 어떤 규격이나 검열 없이 자유롭게 전시되었다. 화가들이 직접 선택한 작품들이 약 200여 점 전시되었는데, 다양한 연령층과 이력을 지닌 총 31명의 화가가 참가비를 지불하고 참여하였다. 그들이 선보인 작품들은 매우 다양한 주제, 다채로운 기법과 화풍을 담고 있었다. 시슬리, 모네, 르누아르와 세잔의 작품은 판매가 되었지만 대부분의 작품들은 판매되지 않았다. 한편 당시 전시는 유료 관람이었는데 총 3,500명의 관람객이 다녀갔다고 하지만 주최 측에선 적자의 전시로 기록하였다.

Renoir_Danseuse

현대적인 라이프스타일

1863년 프랑스의 시인 보들레르는 현대화를 부각시켰는데 이는 산업화, 국제화는 물론 도시정책을 내포하고 있다. 1874년 전시 때 소개된 작품 중 30여 점이 이를 소재로 하였으며, 오스만 건축물, 새롭게 조성된 도시의 풍경, 그리고 기차와 역을 담고 있었다. 이는 당시 부르주아들의 라이프스타일을 잘 보여주지만, 드가의 경우 빨래와 다림질을 하는 여성 노동자들의 모습도 여실히 묘사하였다.

Monet, Impression, Soleil Levant, 1872 © musée Marmottan Monet, Paris / Studio Baraja SLB

인상파와 모네의 해돋이 인상

그렇다면 인상파라는 명칭은 어디서부터 시작된 것일까? 1874년 전시를 둘러본 프랑스 기자인 루이 르루아는 모네의 작품을 인상이라는 단어로 표현하였다. 피사로와 시슬리 작품도 그렇게 묘사하였는데, 여기서 인상이라는 표현은 조롱과 비웃음을 담은 어조로 사용되었다. 그리고 이는 20세기 초에 들어서 본격적으로 사용되었다. 이는 찰나를 묘사한 화가들의 작품과 잘 어울리는 표현이며, 기차를 타고 들로, 숲으로, 바다로 나간 화가들의 작품과도 딱 맞은듯하다.

 

글 ㅣ 이 화 행 Inès LEE

파리 예술경영대 EAC 교수

파리 소르본 미술사대학 졸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