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흐의 고향 아이제나흐

[아츠앤컬쳐] 독일은 남부 가톨릭 문화권과 중부 및 북부의 프로테스탄트 문화권으로 크게 나누어 볼 수 있다. 가톨릭 문화권은 마인강 남부 지역과, 도나우강 주변 지역이고, 프로테스탄트 문화권은 북해로 흘러 들어가는 엘베강의 중간 지역에 해당하는 튀링엔 지방과 작센 지방이다. 프로테스탄트 지역의 주요 도시로는 라이프찌히, 드레스덴, 할레, 비텐베르크, 쾨텐, 바이마르, 에어푸르트, 아이제나흐 등을 손꼽을 수 있다.

튀링엔 지방 남쪽에는 긴 산맥을 따라 광대하고 울창한 튀링엔 숲(Thüringer Wald)이 펼쳐진다. 이 숲 지역의 북서쪽에 위치한 아이제나흐(Eisenach)는 인구 42,000명 정도로 웬만한 지도에는 나오지도 않을 정도로 작은 도시이다. 하지만 마르틴 루터가 어린 시절을 보낸 곳이고, 뉘른베르크 출신의 오르가니스트이자 작곡가 요한 파헬벨(Johann Pachelbel, 1653~1706)이 활동했던 곳이며, 바흐가 태어나 프로테스탄트교의 영향을 받으며 자란 곳이다.

또 아이제나흐 뒷산에는 바르트부르크(Wartburg) 성(城)이 마치 수호신처럼 아이제나흐 시가지를 내려다보고 있는데, 이 성은 마르틴 루터가 은거하면서 성서를 독일어로 번역한 곳이며, 바그너의 오페라 <탄호이저>의 무대가 된 곳이기도 하다.

이러한 환경에서 요한 제바스티안 바흐(J. S. Bach, 1685~1750)는 1685년 3월 21일 아이제나흐의 프라우엔플란(Frauenplan) 광장에서 태어났다. 이 광장에서 볼 수 있는 현재의 바흐하우스는 바흐가 태어난 집은 아니고 그가 태어난 집으로 추정되는 곳에 세워진 18세기의 건물이다. 이 건물은 라이프찌히의 신(新) 바흐협회가 바흐박물관으로 사용하기 위해 1905년에 매입하여 1907년에 오픈한 것인데 제2차 세계대전 때 파괴되었다가 전후에 말끔히 복원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이곳에는 바흐의 자필악보를 포함하여 바흐 관련 자료 원본이 약 250점 전시되어 있다.

바흐 가문은 모두 경건한 루터교 신자들로, 튀링엔 지방을 중심으로 하여 200년 이상 일곱 세대에 걸쳐, 작곡가, 오르간 주자, 교회의 악장 등 100명 이상의 훌륭한 음악가들을 배출했다. 이는 유전학상으로도 매우 흥미 있는 일이기도 하다. 바흐의 어린 시절에 관한 자료는 별로 남아 있는 것이 없지만, 바흐는 음악가 가족에 둘러싸여, 어려서부터 재능을 나타내었음은 틀림없는 것 같다.

어린 바흐는 아버지로부터 바이올린을 배우고, 아버지의 사촌형인 요한 크리스토프 바흐가 연주하는 오르간을 들으면서 자랐으며, 교회에서는 소년 성가대원으로 노래했다. 어린 나이에 부모가 모두 죽자, 그는 맏형의 집에서 자라게 되는데, 맏형은 당시 바로크 음악의 대가인 파헬벨의 제자로 파헬벨의 작품 사보뿐만 아니라 북스트후데 등 당대의 유명한 대음악가들의 작품 사보를 많이 소장하고 있었다. 어린아이가 이해할 수 있는 곡들은 아니었지만, 어린 바흐는 달이 밝은 밤이면 형이 애지중지하며 소장한 악보들을 몰래 악보를 꺼내어 6개월에 걸쳐 베꼈다고 전해진다. 이리하여 바흐도 파헬벨의 양식을 습득하게 되는데, 그 영향은 훗날 그의 작품에도 나타난다.

음악사적으로 볼 때, 음악에 있어서 근대적 개념이 싹트기 시작하는 1600년대를 전후하여, 음악의 새로운 구성양식, 새로운 표현 수단, 새로운 미학 개념이 발전하고, 또 서로 융합하여 근대적 의미의 음악이 탄생된다. 1600년대를 음악의 소년기라고 본다면, 1700년대는 ‘새로운 시대’, 즉 정신적으로 원숙해가는 성년의 초기라고 볼 수 있다. 이때부터 음악은 1900년대에 이르기까지 완전히 발전하여 음악이 지니고 있던 여러 가지의 가능성이 최고의 수준으로 발휘되기에 이른다.

이 작은 도시 아이제나흐에서 태어난 요한 제바스티안 바흐는 이 새로운 시대의 문을 연 장본인이었던 것이다. 독일어로 바흐(Bach)란 ‘개울물’이란 뜻이다. 하지만 음악가 바흐는 모든 음악을 포용하는 ‘깊은 강’이었다.

글·사진 | 정태남 이탈리아 건축사
건축 외에도 음악, 미술, 역사, 언어 분야에서 30년 이상 로마를 중심으로 유럽에서 활동했으며 국내에서는 칼럼과 강연을 통해 역사와 문화의 현장에서 축적한 지식을 전하고 있다. 저서로는 <이탈리아 도시기행>, <동유럽문화도시 기행>, <유럽에서 클래식을 만나다>, <건축으로 만나는 1000년 로마>외에도 여러 권 있다. culturebox@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