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상적 조각의 창시자, 브랑쿠시

Constantin Brancusi

2024-07-01     아츠앤컬쳐
잠자는 뮤즈, 1963, © Succession Brancusi - All rights reserved (Adagp, Paris, 2024) - © Centre Pompidou, MNAM-CCI/Adam Rzepka/Dist. RMN-GP

 

[아츠앤컬쳐] ‘날렵하다. 차갑다. 매끈하다. 깔끔하다. 그리고 세련되었다.’ 단지 이러한 형용사들로 그의 작품을 형용할 수 있을까? 요즘 창작된 작업이라고 해도 손색이 없을 듯 그의 작품들은 시대를 앞서갔다. 대리석과 금속, 목재를 사용한 그의 작업에는 마치 천상의 시처럼 간결하면서 하늘을 날아가는 한 마리 새처럼 자유로움을 표현하고 있다. 사람의 얼굴이 저처럼 함축적으로 표현이 가능할까 싶을 정도로 달걀에 가까운 간소화된 표현으로 우리의 탄성을 자아낸다. 30여 년 만에 선보인 프랑스 파리의 퐁피두센터 미술관에 열린 브랑쿠시의 회고전을 통해 루마니아 태생 천재 조각가의 예술세계를 체험해 보자.

브랑쿠시 아뜰리에 © Succession Brancusi - All rights reserved (Adagp, Paris, 2024) - Collection Centre Pompidou, Paris, Musée national d’art moderne – Centre de création industrielle - Crédit photographique : © Centre Pompidou, MNAM-CCI/Dist. RMN-GP

루마니아 태생의 조각가

브랑쿠시는 루마니아의 왈라키아 지방의 농촌 페스티사니 고뤼 출생이다. 1876년에 오바에서 태어났다. 루마니아의 가난한 농부의 자식으로 태어난 그는 정식 미술을 배우지 못하고 어린 나이에 일자리를 찾아 이곳저곳 떠도는 신세였다. 가축을 돌보며 그는 하늘과 땅이라는 개념에 관심을 가졌다. 특히 그토록 그에게 중요했던 하늘과 땅을 이어주는 주체가 새라는 것에 매료되었다. 그의 새에 대한 관심은 훗날 다양한 작품에 표현되었다. 실상, 어린 소년의 손재주를 눈여겨 본 한 독지가의 도움으로 부쿠레슈티의 미술학교에 다닐 수 있었다.

수탉, 1957, © Succession Brancusi - All rights reserved (Adagp, Paris, 2024) - © Centre Pompidou, MNAM-CCI/Adam Rzepka/Dist. RMN-GP

에꼴 드 파리 Ecole de Paris

그의 미술에 대한 열정은 깊어져 당대 미술의 수도로 불리던 파리로 떠나게 된다. 흥미롭게도 당시 그는 걸어서 유럽을 횡단하여 파리에 도착했다고 전해진다. 지금은 그 명성이 이전 같지 못하지만 19세기의 예술의 수도는 파리였다. 미술뿐 아니라, 음악과 문학 등 창작예술의 중심이었다. 이는 우디 앨런의 영화 <미드나잇 인 파리>에 잘 묘사되어 있다. 영화에는 피카소, 달리, 헤밍웨이 등이 등장한다.

한편 파리에 도착한 브랑쿠시는 프랑스의 저명한 조각가 로댕 스튜디오에 문하생으로 들어간다. 그는 로댕의 밑에서 작업을 배우며 피카소, 모딜리아니 등 역사적 인물들과 어울리게 된다. 그는 당시의 파리에서 활발히 활동하였지만 로댕의 지도를 피해 독자적인 길을 걸었다. 이는 거장의 영향에서 벗어나 독자적인 자신만의 스타일을 구축하고자 했던 루마니아 출신의 브랑쿠시의 의지였다.

© Centre Pompidou 퐁피두센터 브랑쿠시 전시장

단순화와 추상화

1908년경부터 형태를 단순화하였다. 이는 부수적인 것들을 배제하고 존재의 핵심으로 접근해 가기 위함이었다. 이러한 과정에서 구상적인 요소를 진지하고 신중하게 제거하여 갔다. ‘실재감은 외형에 있는 것이 아니라 사물의 핵심에 있다’는 신념에 따른 것이었다. 그의 작업 방식은 지극히 독창적이었다. 대리석, 목재, 금속 등 다양한 소재를 통해 그의 예술혼을 표출하였는데, 스케치 등 준비 작업을 거의 생략하였다. 형태와 작업 방식 등에 있어 당시로서는 최초였던 그를 일컬어 학자들은 조각에 혁명을 가져왔다고 말한다.

Constantin Brancusi, Le Baiser 1907 Pierre Musee d'art de Craiova, Craiova ⓒ Succession Brancusi - All rights reserved Adagp, Paris 2024 Credit photographique : The Art Museum of Craiova, Roumanie

1907년에 제작된 <입맞춤>이라는 작품은 거의 최초로 준비 작업 없이 바로 돌을 두들기고 깎아서 표현한 작품으로 유명하다. 더불어 그의 단순화 작업은 우리에게 친숙한 동물을 소재로 하기도 하였다. 특히 조류를 많이 다루었고, 물고기나 거북이도 다루었다. 물고기를 보면서, 눈으로 보이는 외관보다는 그가 지닌 속도감을 표현하고자 최대한 단순화와 추상화를 적용한 것이다.

© Centre Pompidou 퐁피두센터 브랑쿠시 전시장

음악과 춤을 사랑한 브랑쿠시

춤과 음악은 그의 일상의 한 부분이었다. 특히 광적으로 음악을 좋아했던 그는 몇몇 작곡가 친구들이 있었는데, 그중 한 명이 에릭 사티이다. 1922년 에릭 사티의 음악이 발표되었을 때, 브랑쿠시는 춤추는 무용수의 사진을 찍기도 했다. 그는 매우 다양한 음악을 즐겨 들었다고 한다. 루마니아 민속음악, 재즈, 클래식, 플라멩코, 아시아 및 아프리카의 민속음악까지 두루두루 섭렵하였다. 춤과 음악, 그리고 그의 조각들을 통한 예술적 영감에 대한 소통은 그에게 큰 기쁨이었다. 더불어 그를 일컬어 <움직임 속의 형태>라며 독창적인 그의 조각에 대한 찬사를 이어갔다. 전통적인 조각이 풍미하던 시대에 센세이션을 일으켜 과감하고 혁신적인 작품을 발표했던 루마니아 출신의 조각가 브랑쿠시의 창의성과 용기에 찬사를 보낸다.

 

글 ㅣ 이화행 Inès LEE

파리 예술경영대 EAC 교수

파리 소르본 미술사대학 졸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