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의 눈이 감겼네 Sus ojos se cerraron

비극이 인생이 될 때

2024-11-01     아츠앤컬쳐
Carlos Gardel Pajaro-1930

 

[아츠앤컬쳐] 1935년 6월 24일은 라틴 음악 역사상 손에 꼽을 만한 안타까운 사건이 일어난 날이다. 콜롬비아 메데인으로 향하던 SACO Ford가 폭발하면서 당시 탱고의 제왕이었던 카를로스 가르델(Carlos Gardel)과 콤비 작가 알프레도 레 페라(Alfredo Le Pera)가 사망했기 때문이다. 이 두 사람은 그해 발표될 파라마운트사의 영화 홍보 차 함께 비행기에 올랐는데, 약 3년 동안 마흔 편에 달하는 작품을 남긴 이들의 사망 소식은 탱고 팬들을 경악하게 했다.

가르델과 레 페라의 만남은 <Por una cabeza(간발의 차이로)>, <Cuesta abajo(내리막길)>, <El día que me quieras(당신이 나를 사랑하는 날)>, <Melodía de arrabal(교외의 멜로디)>, <Mi Buenos Aires querido(나의 사랑 부에노스아이레스)>, <Volver(귀향)> 등 수많은 탱고로 결실을 맺었다.

그리고 작품들 가운데 유독 이들의 죽음처럼 비극적 운명을 연상시키는 곡이 있는데 바로 ‘그의 눈이 감겼네’이다. 사실 곡의 첫 구절인 ‘그의 눈은 감겼지만 세상은 계속된다’라는 가사는 이들의 죽음을 수식하는 유명한 구절로, 1997년 스페인의 동명 영화에도 차용된 바 있다.

1999년 3개의 실버 콘도르상(Premios Cóndor de Plata)을 수상한 이 영화는 한 무명 탱고 가수가 가르델의 목소리를 가지게 되면서 콜롬비아 공연에 가담하는 스토리를 지닌다. 뮤지컬 로맨틱 코미디 답게 영화의 별미는 뭐니 뭐니 해도 사운드트랙에 사용된 14곡의 탱고들이며, 당시 소위 가르델리언(Gardeliano)이라 불리던 탱고 팬들의 마음을 그리움으로 적셨다.

Gardel Ultima Foto

가르델의 가창력이 압권인 ‘그의 눈이 감겼네’에는 사랑하는 이의 죽음으로 인한 고통이 암시되어 있다. 가슴 한 편을 묵중하게 짓누르는 비극적 기운은 가사의 구절 마다 배어나는데 이는 레 페라 개인의 경험에서 기인한다. 실제로 레 페라는 과거에 아이다 마르티네즈(Aida Martínez)라는 여성과 사랑에 빠져 우루과이에서 함께 살았으며, 그녀의 급작스러운 죽음 이후 고통스러운 나날을 보낸 바 있다.

“왜 그 날개는 그토록 잔인하게 삶을 불태웠나?

왜 행운은 왼쪽 볼을 찡그렸나?

그녀를 지키고 싶었지만 죽음이 더 강했네.

고로 상처는 더욱 더 깊이 파고든다.

이젠 괴상한 얼굴들이 오리라는 걸 알아.

마치 고통을 덜어줄 푼돈처럼.

모든 게 거짓이고, 거짓 또한 탄식이다.

내 심장은 오늘도 홀로일 뿐”

그의 눈이 감겼네’의 비극적 기운은 또 다른 이유로 격증되는데 이는 노래가 가르델과 레 페라의 유작인 <당신이 나를 사랑하는 날>의 삽입곡이기 때문이다. 각각 주연과 대본 작가로 활동한 이들은 영화의 촬영이 끝나고 얼마 안 가 홀보를 위해 메데인 행 비행기에 올랐다.

당시 영화는 오스트리아 감독인 존 레인하르트(John Reinhardt)와, 배우이자 댄서인 로지타 모레노(Rosita Moreno), 티토 루시아르도(Tito Lusiardo)의 합류로도 큰 주목을 끌던 차였다. 이때 탱고 팬들은 새로운 소식을 접했는데 바로 RCA 빅터사가 가르델이 출연한 모든 영화의 노래들을 음반으로 제작할 것이라는 계획이었다.

Museo Carlos Gardel, Buenos Aires

그러나 모두가 열광하던 그 계획은 얼마 후 불발되었고, 가르델과 레 페라는 첫 영화의 시사회에 참석할 수 없었다. 영화보다 더 영화 같은, 비극보다 더 비극적인 일이 실제로 일어났기 때문이었다.

1978년 피아졸라(Astor Piazzolla)는 가르델을 그리워하며 한 통의 편지를 썼다. “친애하는 찰리! <당신이 나를 사랑하는 날> 촬영 후의 바베큐 파티를 나는 결코 잊지 못할 거예요. 카스텔라노의 반주에 당신이 주제곡을 불렀고 난 반도네온을 연주하게 됐죠. 그 밤 당신과의 탱고는 내게 세례식과 같은 행운이었어요. 1935년, 14살이었던 나에게…”.

 

글 | 길한나
보컬리스트
브릿찌미디어 음악감독
백석예술대학교 음악학부 교수
stradakk@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