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픔이여 안녕 Adiós Tristezas
재생과 희망을 노래하다
[아츠앤컬쳐] 화려한 전통의상과 함께 현란한 춤과 연주를 선보이는 플라멩코 예술가들의 공연을 보고 있자면, 왜 플라멩코가 스페인을 대표하는 문화유산인지 납득하게 된다. 춤(baile)과 노래(cante), 기타(guitarra)의 기술이 합쳐진 플라멩코가 감상자의 감각적 반응들을 일깨우며 탄성을 자아내게 하기 때문이다.
16세기경 안달루시아의 토착문화에 집시, 무어인, 유대인의 문화가 융합되어 발생한 플라멩코는 19세기 후반 전성기를 거치며 많은 발전과 변화를 이루었다. 20세기에 와서는 다양한 장르와 혼합되어 “뉴 플라멩코” 스타일로 새 바람을 일으켰는데, 이때 하위 장르인 알레그리아스(alegrias), 불레리아스(bulerías), 말라게냐스(malagueñas), 룸바 플라멩카(rumba flamenca) 등도 함께 대중적 지지를 얻어냈다.
특히 불레리아스는 활기 넘치는 축제 분위기와 이에 걸맞은 자연스러운 즉흥성으로 대중 사이에서 인기가 높다. 불레리아스의 매력은 빠르고 민첩하며, 자유롭고 현란한 춤과 연주로서, 그 어원인 불레리아(bullería)의 의미와 무관하지 않다. 이는 소란이나 고함, 소동 등을 나타내는 단어로, 사람들이 함께 모여 떠들고 즐기는 풍경을 연상시킨다.
1998년 퓨전 플라멩코의 대표 주자인 라 마카니타(La Macanita)는 ‘슬픔이여 안녕’이란 불레리아스를 발표한다. 안달루시아 지역의 헤레스 출신인 그녀의 앨범 <헤레스 제레스 셰리(Jerez-Xères-Sherry)>에는 ‘슬픔이여 안녕’ 외에도 ‘연인이 다가오네(El amante se acerca)’, ‘헤레스(Jerez)’ 같은 불레리아스가 담겨있다.
안달루시아 음악의 진수를 보여주는 이 앨범에는 불레리아스 뿐 아니라 알레그리아스, 솔레아, 탕고, 토나스 등 여러 스타일의 퓨전 플라멩코들이 실렸다. 안달루시아의 가장 전통적인 와인명을 그대로 차용한 이 앨범은 유명 플라멩코 기타리스트인 모라이토 치코(Moraíto Chico)와 디에고 모레노(Diego Moreno), 페드로 시에라(Pedro Sierra) 등의 앙상블로 이름값을 톡톡히 해낸다.
“내 사촌이 잠에서 깰 때 세상엔 이미 집시가 불레리아스를 부르고 있다네. 그 엄마 역시 불레리아스를 부르지. 슬픔보다 강한 건 기타와 태양이요, 마음의 길이고 아름다움의 언덕이라네. 슬픔보다 강한 건 헤라늄 꽃이요, 땅을 이루는 흙과 같은 당신의 꿈이라네. 랄랄라.”
‘슬픔이여 안녕’이 품고 있는 메시지는 유럽 전역에 흩어져 세기를 견뎌온 히타노(gitano)들의 회복력이다. 일반적 삶에 편입되지 못하고, 공동체 생활 가운데 온갖 사회적 편견과 배제, 차별을 겪어왔던 집시들은 삶의 애환들을 춤과 노래에 고스란히 담아냈다.
그들의 예술인 플라멩코가 아랍어로 ‘농부(felag)’와 ‘도망자(mengu)’의 합성어라는 가정은 떠돌이 인생의 한과 설움을 겪어온 집시들의 아픈 역사를 떠오르게 한다. 따라서 감상자의 가슴에 자유와 방랑, 열정과 갈망을 끄집어내는 플라멩코는 사실상 집시들의 슬픔과 고통의 토로이자 재생과 희망의 염원이라 할 수 있다. 그래서인지 구슬프면서도 현란한 플라멩코 가락들은 내면과 외향적 정서 사이의 갈림목을 오가게 한다. 그 가운데 감상자는 흥취와 번뇌를 번갈아 맛보며 영혼의 절정 상태인 두엔데(duende)의 불가사의를 경험하기도 한다.
라 마카니타의 거칠면서도 탄력적인 목소리는 ‘슬픔이여 안녕’이 지닌 회복과 성장의 기운을 성공적으로 전달한다. 불레리아스 특유의 빠른 패시지(passage) 위에서 때로는 폭포수처럼, 때로는 개울물처럼 흐르는 목소리는 기타 플레이어들의 충만한 속주, 변주 테크닉과 어우러져 재생의 기쁨으로 표현된다. 이는 마치 새벽녘을 알리는 집시의 노래가 어두운 밤을 지나 피어난 꽃 한 송이를 칭송하듯, 고통을 껴안은 채 희망을 사랑하는 법을 알려주는 듯하다.
글 | 길한나
보컬리스트
브릿찌미디어 음악감독
백석예술대학교 음악학부 교수
stradakk@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