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메닐 컬렉션을 다녀오다
The Menil Collection
[아츠앤컬쳐]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이 백과사전이라면 더 메닐 미술관은 한 편의 시와 같다.” 어느 책에서 읽은 구절이 내게 설렘으로 다가와, 꼭 가보고 싶은 미술관으로 자리 잡았다.
미국 텍사스주 휴스턴에 소재한 더 메닐 컬렉션은 제2차 세계대전을 피해 미국 휴스턴으로 이주한 프랑스 출신 존 더 메닐과 도미니크 더 메닐 부부가 수십 년 동안 수집해 온 그들의 소장품을 보존하고 대중에게 공개하기 위해 세운 곳이다.
메닐 미술관
메닐 부부의 소장품은 현대미술뿐만 아니라 수메르 문명, 아프리카, 오세아니아 등의 그림, 조각, 사진, 장식품 외에 다양한 예술품들로 무려 15,000여 점에 이른다. 특히 20세기 초중반의 초현실주의 작가의 작품들과 미국을 중심으로 발달한 팝 아트와 추상표현주의 작가의 작품이 많아 현대미술의 보고라 할 수 있다.
오래된 떡갈나무 사이사이 어우러진 대주택 단지 내에 위치한 미술관은 높지도 크지도 않은 간결한 이미지의 건축물로, 리처드 로저스와 함께 퐁피두센터를 설계한 렌조 피아노에 의해 1987년에 만들어졌다. 자연 채광이 은은히 들어오도록 설계된 미술관 실내는 밝고 아늑하며 우아함이 느껴졌다. 소장품 하나 하나에서 컬렉터의 뛰어난 예술적 안목이 놀라웠고 그 어느 뮤지엄보다 각 작품의 가치가 최대한 돋보이도록 전시되어 있다는 인상을 받았다.
또한, 더 메닐 캠퍼스를 구성하고 있는 그곳엔 그림의 중요도로 보면 메인 미술관을 능가하는 작품을 품은 싸이 톰블리 갤러리, 마크 로스코 채플 등 보석같은 공간이 존재한다.
싸이 톰블리 갤러리
이 갤러리에는 미국 출신으로 로마에서 오랫동안 머물며 자신만의 작품세계를 구축한 추상표현주의 작가 싸이 톰블리(Cy Twombly, 1928~2011)의 대표작에서 말년의 작품들까지 30여 점의 대작들이 전시되어 있다. 싸이 톰블리를 좋아하는 나에겐 더없이 행복하고 벅찬 공간이다.
마크 로스코 채플
메닐 부부는 모든 종교의 이념을 초월해 마음의 안식을 구하는 명상의 공간을 만들고자 마크 로스코(Mark Rothko, 1903~1970, 미국 추상표현주의 1세대로 대표되는 색면화가)에 의뢰하며 시작됐다. 첫 설계자에서 다음 설계자를 거쳐 로스코 사후 1971년에 완성됐다. 실내에서는 명상의 공간인 만큼 어두운 색감을 이용한 마크 로스코의 작품 14점을 감상할 수 있고, 채플 앞의 정원에는 바넷 뉴먼의 <부러진 오벨리스크>가 인상적이다. 그 밖에도 드로잉 인스티튜트관, 리치몬드 홀(댄 플라빈) 등 다양한 전시관을 둘러보는 재미가 있다.
더불어, 기념품과 책을 파는 소박한 가게, 맛에 있어서도 제 역할을 톡톡히 하는 레스토랑, 곳곳의 조각품과 어우러져 있는 오래된 나무 그늘 밑의 평화로운 풍경은 건물 내의 작품과 자연스럽게 연결된 듯한 착각에 빠져들게 한다.
한 편의 시(메닐 미술관)가 전하는 감동은 몇 년 전 여러 날에 걸쳐 방문했던 백과사전 격인 메트로폴리탄의 경험과는 다른 잔잔하고 진한 여운이 남는다. “모든 사람은 문화, 예술을 누릴 자격이 있다”는 철학으로, 무료로 이 공간을 마련하고 개방한 메닐 부부의 열정과 신념에 고개가 숙여진다.
글·사진 이경희
세계 미술관 여행 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