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향에서 만나는 박수근

2025-02-01     아츠앤컬쳐
박수근 ‘앉아 있는 두 남자’ 자료 : 박수근 미술관

 

[아츠앤컬쳐] 2025년 2월 9일까지 국립현대미술관은 강원도 양구군 박수근 미술관까지 찾아가 소장품 순회전을 개최한다. 여기에 국립현대미술관 소장 박수근 작품이 포함되어 있다. 중앙의 국립미술관이 시골 군립미술관을 찾아가는 매우 바람직하고 흥미로운 기획이다.

우리나라에서 낙찰가 최고가의 화가는 작품가격 기준으로는 1위에서 10위까지 모두 김환기지만 22.7 cm * 15.8 cm 호당 가격 기준으로는 압도적 1위가 박수근이다. 한국 최고의 화가 두 분이 한반도 정반대의 끝과 끝에서 태어나신 것이 우연이 아닌 것 같다. 김환기 화백의 고향은 전남 목포에서 다시 배를 타고 들어가야 하는 신안군 안좌도다. 박수근 화백의 고향은 강원도 산과 개울을 지나 양구군 양구읍에 있다.

한 분은 푸르른 바다를 보며 어린 시절을 보냈고, 한 분은 갈색 땅 진흙과 먼지 속에서 뛰놀았다. 그리고 다도해의 짙푸른 바다 색은 그대로 저 유명한 환기 블루가 됐다. 휴전선 인근 강원도 양구 깡촌의 흙바닥은 한국인의 정서를 가장 잘 표현했다는 박수근의 논 바닥 갈라진 것 같은 흙색 마티에르가 되었다.

김환기는 1913년 2월 27에서 1974년 7월 25일까지, 박수근은 1914년 2월 21일에서 1965년 5월 6일까지 동시대를 살았다. 모두 일제 치하, 해방, 6.25, 4.19, 5.16 등 현대사의 격변기를 겪었다. 하지만 같은 어려운 시대적 상황속에서도 두 사람의 삶은 차이가 있었다.

박수근은 가난으로 중학교 진학마저 포기해 초등학교 졸업이 학력의 전부다. 이후 그림 독학, 평안남도 도청 서기로 근무하며 계속 그림 작업을 했다. 6.25를 거치며 평양에서의 삶이 공산당에 의해 위협을 받았고 월남해 다시 가난한 그림쟁이의 삶으로 복귀했다. 서울에서 미군들의 초상화를 그려주며 생활을 했고 당시 비싼 유화 그림 물감을 힘들게 구해 2호, 10호 등 아주 작은 작품 위주로 그릴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박수근의 작품은 작은 화폭에 가난과 흙과 개울가 빨래터와 자신이 책임져야 할 가족과, 머리에 무거운 짐을 진 아낙의 모습을 그렸다. 그것이 박수근의 눈에 보이는 세상이었다. 그래서 역으로 박수근은 한국인의 가장 깊은 속으로 파고들고 있는 것이다.

박수근의 그림은 우리 모두의 가슴속에 깊이 들어와 있지만 매우 귀해서 실물을 볼 기회가 흔치 않다. 모든 그림이 그렇듯 박수근의 그림이야말로 특히 직접 보아야 그 깊고 슬픈 마티에르를 직접 확인할 수 있다.

2002년 10월 25일 뒤늦게 개관한 양구의 군립 박수근 미술관은 개관 당시는 물론 현재까지도 충분한 컬렉션 확보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하지만, 예술 애호가로서 물리적으로 강릉이나 속초보다 가는 시간이 더 걸릴 수도 있는 양구의 박수근 미술관은 우리가 꼭 가봐야 하는 곳이다. 한국에서 단위 면적당 최고 비싼 박수근 작품 감상 이외에도 미술관 건물 자체의 독보적 아름다움을 자랑하기 때문이다. 박수근의 작품이 땅을 표현한 것처럼 박수근 미술관 건물도 땅과 깊게 교감한 건축 명작이다.

2002년 당시 젊고 유망한 건축가였던 이종호 교수의 설계로 건립된 박수근미술관은 외벽을 국내에서 제일 흔한 화강암 석재 공장에서 버리는 파쇄석을 택하고, 박수근 그림의 흙색 마티에르를 닮은 화강암 파쇄석 미술관 벽을 구현했다. 또 벽이 약간 비탈진 미술관 대지속으로 멋지게 스며드는 독창적 디자인의 걸작을 탄생시켰다. 우리의 혼과 우리 땅의 마티에르를 가장 잘 표현한 박수근 작품과 박수근 그림을 가장 잘 표현해 담고 있는 이종호 건축가의 작품이 어우러진 저 멀리 양구 박수근 미술관이 또 가고 싶다.

 

글 | 강일모
경영학 박사 / Eco Energy 대표 / Caroline University Chaired Professor / 제2대 국제예술대학교 총장 / 전 예술의전당 이사 / 전 문화일보 정보통신팀장 문화부장 / 전 한국과학기자협회 총무이사/ ‘나라119.net’, ‘서울 살아야 할 이유, 옮겨야 할 이유’ 저자, ‘메타버스를 타다’ 대표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