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이스 김대영
[아츠앤컬쳐] 지난 4월 19일, 비가 촉촉이 내린 저녁에 예술의전당 IBK홀에서 오랜만에 멋진 독창회를 봤다. 아니 한 편의 드라마 같은 음악회였다. 베이스 김대영은 저음의 안정감 있는 목소리로 부드러우면서도 드라마틱한 사운드로 고음까지 자유자재로 구사하며 노래를 들려주었는데, 노래를 했다기 보다 연기를 했다는 표현이 더 어울렸다. 담담하면서도 진실이 담긴 목소리로 들려준 노래는 울림이 있었고 품격이 있었다. 독일 가곡과 오페라 아리아 그리고 윤동주 시인과 이중섭 화가를 노래하는 무대에서는 성악가라기 보다 연기자였고 시인이었으며 철학자라는 생각이 들었다. 진심이 담긴 노래를 들으며 오랜만에 행복한 시간을 가졌다. 그날은 앵콜도 없었고 로비에서 인사하는 시간도 없었지만 김대영의 진실한 마음이 느껴져서 흐뭇했다.
Q. 두 번째 독창회의 성공을 축하합니다. 그동안의 근황을 얘기해 주세요.
A. 아직 젊은 나이지만 시간의 흐름이 정말 빠르다는 것을 느끼는 요즘입니다. 천방지축(天方地軸) 유년기를 보내고 질풍노도(疾風怒濤)의 청소년기를 보내고 칠전팔기(七顚八起)의 청년기를 거치며 14년간 독일 극장 생활을 하면서 유럽 활동 중에 팬데믹을 계기로 귀국하게 된 지 어느덧 5년 차가 되었습니다. 귀국 후 운이 좋게 좋은 무대에서 좋은 아티스트들과 꾸준히 연주를 이어 나가고 있습니다.
그 중에 지금 기억나는 연주는 제 본업이 오페라 가수인 만큼 여러 오페라도 있지만, 광주시립오케스트라(홍석원 지휘)와 쇼스타코비치 교향곡 13번 'Babi Yar'를 한국 초연했을 때가 가장 많이 생각이 납니다. 다른 언어도 아니고 러시아어로 베이스 솔로가 교향곡 전체를 이끌어가는 대곡이라 공부도 정말 많이 했고 연주 내내 긴장했던 기억이 있습니다. 초연을 했던 다음 해에 예술의전당 교향악 축제에서 재공연하였습니다.
Q. 지난 독창회에 대한 소감을 듣고 싶네요.
A. 한국에서 두 번째 독창회를 가졌습니다. 3년 전에 첫 독창회는 포핸즈 연주에 오페라 아리아 12곡을 노래했었고 한국에서 첫 독창회인 만큼 저의 노래 인생 18번인 오페라 아리아를 관객분들께 보여드렸습니다. 그리고 두 번째 독창회 타이틀은 ‘This is who I am‘이다. ‘이게 바로 나야’ 경상도 말로 ‘내가 낸데~’입니다. 말도 많고 탈도 많은 지금 사회에서 그리고 마흔 중반을 넘어가는 현재, 누가 뭐라 해도 묵묵히 그리고 꾸준히 나의 길을 간다라는 스스로의 다짐이었습니다. 이런 다짐과 함께 제가 가장 사랑하는 윤동주 시인과 이중섭 화가를 초대해서 무대를 만들었습니다.
Q. 이번 독창회에서 윤동주 시인과 이중섭 화가에 대한 노래가 인상적이었습니다. 이 노래를 하게 된 특별한 동기가 있나요?
A. 평생을 “부끄럽다, 부끄럽다”를 반복하다가 감옥에서 홀로 돌아가신 윤동주 시인이 들었던 펜의 의미는 어느 장군의 칼과 어느 독립군의 총 못지않게 대단합니다. 그 시대에 한글로 시를 쓴다는 자체가 큰 용기였으니 말입니다. 영화 ‘동주’에 이런 대사가 나옵니다. ”부끄러움을 아는 건 부끄러운 게 아니야, 부끄러운 걸 모르는 놈들이 부끄러운 거지…” 참 많은 생각을 하게 하는 대사였습니다.
화가 이중섭은 금수저였습니다. 그 시대에 공부를 쉼없이 하고 유학까지 갔으니 말입니다. 일본에서 만난 여인조차 금수저였다고 합니다. 그런데 그런 그가 평생을 가난과 함께하며 가족을 그리워하다가 차가운 병실에서 혼자 죽음을 맞이했습니다. 마흔이라는 많지 않은 인생을 살면서 일제강점기, 광복, 남북전쟁, 분단 이 모든 걸 겪으면서 그의 인생에서 제일 아름다웠던 순간이 있습니다. 바로 가족들과 제주도 서귀포 좁디좁은 방에서 지낸 10개월입니다. 그 1년도 채 안 되는 시간을 마음에 품고 버티고 버티면서 가족과 함께 할 날만을 기다린 그의 참혹한 삶. 윤동주 시인은 향연 27세, 그리고 이중섭 화가는 39세에 세상을 떠났습니다.
이번 독창회 포스터를 보면 알 수 있듯이 내가 만약 그들과 동시대 사람이라면 꼭 만나서 서로의 작품과 예술 세계를 나누고 싶고 꿋꿋이 우리만의 길을 가자는 다짐을 했을 듯합니다. 감히 그분들을 예술 친구라고 생각하고 저의 부족한 음성으로 그분들의 삶을 기리고 싶었습니다.
Q. 앞으로의 계획이나 다짐을 듣고 싶습니다.
A. 저는 아직 많이 부족하고 흠 많은 가수지만 누구보다 하루하루 열심히 살고 있고 제가 계획한 60대부터 전성기를 맞이하기 위해서 최선을 다하고 있습니다. 이번 연주를 통해서 제가 무엇을 해야 할지 어떤 길로 가야 할지... 그리고 관객과 어떻게 소통해야 하는지 좀 더 알게 되고 어느 정도 확신을 갖게 되었습니다. 앞으로도 남과 다른 무대, 남과 다른 주제… 특별한 무대를 선보이고자 합니다.
노래 잘하는 사람 너무 많습니다. 그런데 제가 생각하는 좋은 가수는 노래만 잘하는 사람이 아닙니다. 인간적으로 우선 매력이 있어야 하고 누구와도 소통이 가능하며 공감할 줄 알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저만의 길을 가겠습니다. 그 길이 비포장이고 먼지가 날린다고 하더라도…
대담 ㅣ 전동수 발행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