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 스칼라 예술감독 정명훈

2025-06-01     아츠앤컬쳐
라 스칼라

 

[아츠앤컬쳐] 전인미답(前人未踏), 앞사람이 가보지 못한 길을 가다. 247년 역사, 오페라의 최고봉, 라 스칼라(La Scala)에서 가장 중요한 자리인 음악감독에 아시아인으로는 최초로 정명훈이 섰다. K 클래식의 쾌거다.

세계적 도시는 대개 세계적 오페라극장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전 세계 모든 오페라 가수들의 궁극의 꿈. 이 무대에 서지 않으면 세계 정상급 가수로 평가되지 않는 절대 유일한 곳. 가수들에겐 무한한 영광과 동시에 조금이라도 실수하면 청중으로부터 무자비한 비판을 각오해야 하는 두려움이 공존하는 곳. 그곳이 바로 이탈리아 밀라노의 라 스칼라다.

대부분의 국가들이 서울에 그 나라의 대표적 오페라하우스를 가지고 있다. 그런데 이탈리아는 로마가극장 대신 밀라노 라 스칼라가 대표 오페라좌이다. 수도 로마 주변에 역사 유적지가 많아 신규 사업을 펼치기에 근본적 어려움이 있는 반면에, 밀라노는 르네상스 시절부터 주요 거점도시로 부상한 이래 19세기 20세기에 이르러 폭발적 성장을 했다. 그러다 보니 지금 일 인당 GDP가 밀라노는 60,000유로, 로마는 38,700유로로 커다란 편차를 보인다.

하지만 라 스칼라가 로마가극장보다 센 근본적 이유는 경제에서보다 역사에서 찾는 것이 맞을 것 같다. 베르디는 여기서 1842년 ‘나부코(Nabucco)’, 1843년 ‘이 롬바르디(I Lombardi)’, 1887년 ‘오텔로(Otello)’ 등을 초연했다. 후계자 푸치니는 1904년 ‘나비부인’을 초연, 대성공했다. 푸치니는 ‘투란도트’를 작곡 중 1924년 세상을 떠나, 제자가 완성해 라 스칼라에서 초연했다.

베르디가 오페라 작곡가로 이름을 날리기 시작한 것은 라 스칼라에서의 세 번째 오페라 ‘나부코’ 초연 이후다. ‘나부코’ 중에 등장하는 ‘히브리 노예들의 합창’이 베르디의 운명을 근대 오페라의 아버지이자 이탈리아의 국부 중의 한 명으로 만들었다.

당시 밀라노와 인근의 롬바르디아 지역은 오스트리아의 지배를 받고 있었다. 라 스칼라도 오스트리아 여제 마리아 테레자가 1776년 착공을 명령했고 2년 뒤 준공되었다. 어떻게 보면 라 스칼라는 밀라노 및 이탈리아의 굴욕의 역사의 상징이다. 초연곡은 안토니오 살리에리의 ‘유럽의 재탄생’이었다. 밀라노 시민들과 이탈리아 국민들은 오스트리아가 자신들의 땅을 지배하고 있고 라 스칼라 건축을 주도한 것에 대해 굴욕감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여기에 베르디의 ‘나부코’ 중 ‘히브리 노예들의 합창’의 슬프고도 아름다운 선율이 밀라노 청중과 시민들의 가슴에 불을 지르고, 롬바르디아 전역의 이탈리아인들의 피를 끓게 했다. 시민들은 1842년 라 스칼라에서 초연된 ‘히브리 노예들의 합창’을 6년후 길거리에서 제창하며 1848년 제1차 독립전쟁을 시작했고, 1859년 끝내 독립을 쟁취했다. 라 스칼라는 그래서 베르디와 함께 이탈리아인들의 자존심이자 심장으로 자리잡고 있다. 이처럼 역사적 굴욕과 자존감을 모두 가진 라 스칼라는 건축적 측면, 음악적 측면 모두에서 1778년 준공시부터 21세기 현재까지 계속해서 명성을 이어가고 있다.

라 스칼라 오페라하우스는 당시 유명 건축가였던 주세페 피에르마리니가 설계를 맡았다. 라 스칼라가 건축적으로 오늘날까지 명성을 날리고 있는 것은 네오 클래시컬 외형이나 정면 파사드보다 음악당 내부 공간과 음향에 있다. 결국 라 스칼라는 음악적 본질에 충실한 공간인 것이다. 라 스칼라 이후 수많은 전세계 오페라 하우스들이 라 스칼라의 내부 구조와 음향 설계를 따라했다.

음악당 실내 디자인은 3,000여 명의 청중을 수용하는 초대형 말굽형이다. 라 스칼라는 음향적으로도 아주 우수한 음악당으로 평가된다. 가수에게는 실수가 용납되지 않는다. 수준 높은 밀라노의 청중들이 6층 높다란 박스를 가득 메우고 쳐다볼 때 이 비판적인 밀라노 청중들을 압도적으로 제압할 수 있는 가수들의 계보는 바로 전설의 테너 엔리코 카루소, 델 모나코, 루치아노 파바로티 등으로 이어진다. 세계적 음악 수준의 청중들과 세계적 가수들을 제압하고 포디움 위에서 당당히 라 스칼라를 이끌어간 전설의 지휘자, 음악감독에 토스카니니, 사바타, 아바도, 무티, 바렌보임, 샤이에 이어 정명훈(2027-)이 예정되어 있다.

 

글 | 강일모
경영학 박사 / Eco Energy 대표 / Caroline University Chaired Professor / 제2대 국제예술대학교 총장 / 전 예술의전당 이사 / 전 문화일보 정보통신팀장 문화부장 / 전 한국과학기자협회 총무이사/ ‘나라119.net’, ‘서울 살아야 할 이유, 옮겨야 할 이유’ 저자, ‘메타버스를 타다’ 대표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