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장과 부작위 살인

2025-07-01     아츠앤컬쳐
La Balsa de la Medusa_Théodore Géricault(1818-1819)

 

[아츠앤컬쳐] 테오도르 제리코(Théodore Géricault)(1791~1824)는 프랑스 낭만주의 회화를 대표하는 화가로, 짧은 생애 동안 강렬하고 극적인 주제를 통해 예술사에 깊은 흔적을 남겼다. 그는 고대 그리스와 로마 예술을 중심으로 질서, 균형, 조화를 강조하는 미술 양식인 고전주의의 시대이자 프랑스 왕립 회화·조각 아카데미(Académie royale de peinture et de sculpture)에서 교육하고 규범화한 예술을 의미하는 아카데믹 미술이 지배하는 시대에 살면서 인간의 감정, 고통, 격정을 표현하는 회화로 새로운 흐름을 열었다고 평가받는 화가이다.

제리코는 젊은 시절부터 승마와 군사적 주제에 관심을 가졌고, 전쟁 관련 사항을 그림의 소재로 삼았다. 그가 21세때 그린 작품 중 하나인 <기병 장교의 돌격(The Charging Chasseur)>(1812)은 나폴레옹 전쟁의 영웅상을 그렸지만, 단순한 영웅주의보다는 역동성과 인간의 감정이 강조된 것이 특징이다. 이처럼 그는 전통적인 역사화의 틀에서 벗어나 개인의 고통과 극한 상황에 집중하는 새로운 방향을 모색했다.

제리코의 유명한 작품 중 하나는 1819년에 발표한 <메두사 호의 뗏목(The Raft of the Medusa)>(1818~1819)으로, 이 작품을 통해 제리코는 프랑스 정부의 무능과 부패를 신랄하게 고발하였다. 그는 이를 위해 해부학 연구와 시체 관찰, 생존자 증언 수집 등 철저한 조사를 수행했다고 한다.

1816년 7월 2일, 프랑스 해군의 군함 ‘메두사 호’(Medusa)는 아프리카 세네갈의 식민지 개척을 위해 출항해 항해하던 중 무능한 선장의 실수로 암초에 부딪혀 좌초된다. 당시 선장은 정치적 인맥으로 자리를 얻은 경험이 부족한 귀족으로, 이 사고는 선장이 지도도 제대로 읽지 못했고 조타수의 경고도 무시한 결과 발생한 인재였다. 뿐만 아니라, 메두사 호에는 구명정이 부족한 상태였다. 이에 당시 고위급 인사들은 구명정으로 탈출한 반면, 전체 승선 인원 약 400명 중 약 147명이 급조된 뗏목에 올라타게 된다. 이렇게 뗏목은 약 13일간 표류하게 되는데, 뗏목 안의 식량과 물이 바닥났고, 살아남기 위해 서로를 잡아먹는 식인 행위까지 벌어졌다고 한다. 구조되었을 당시, 147명 중 단 15명만이 생존하게 된다. 사건 이후 생존자 중 한 명인 앙리 사비니는 참사의 전말을 상세히 기록해 폭로했고, 이 내용은 프랑스 전역에 알려지게 된다. 해당 폭로 사실들은 프랑스 왕정 정부에 대한 국민들의 격렬한 비판을 촉발하는 계기가 된다.

제리코는 이 사건을 단순한 사고로 보지 않고, 무능한 귀족 출신 선장의 임명과 식민지 정책의 부조리를 상징적으로 고발하기 위한 주제로 삼았다. 제리코는 생존자 인터뷰, 해부학 연구, 시체 관찰, 구조 선박 설계도까지 참고하며 극도의 사실성을 추구했고, <메두사 호의 뗏목>은 폭 7m, 높이 5m의 압도적인 규모로 제작되었다.

<메두사 호의 뗏목>은 전시 당시 사회적 충격을 주었고, 제리코는 정치적 탄압과 비난을 감수해야만 했다. 결국 제리코는 불안정한 정신 상태와 건강 악화로 인해 32세의 나이에 사망한다. 그는 죽기 전까지 인간 존재의 불안과 사회의 부조리에 깊이 천착했으며, 낭만주의 미술의 정서적 깊이와 사회적 책임을 동시에 구현한 예술가로 평가받는다.

그렇다면 선장이 승선 인원을 두고 먼저 탈출한 것에 대한 법적 책임은 어떻게 물을 수 있을까?

The Charging Chasseur_Théodore Géricault(1812)

우리나라는「해상교통안전법」등을 통해 선박의 안전과 함께 선원 관리에 관한 포괄적이고 절대적인 권한을 가진 선장이 효율적인 지휘명령체계를 갖추어 항해 중인 선박의 위험을 신속하고 안전하게 극복할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다. 이에 선장은 승객 등 선박공동체의 안전에 대한 총책임자로서 선장에게는 선박공동체가 위험에 직면할 경우 그 사실을 당국에 신고하거나 구조세력의 도움을 요청하는 등의 기본적인 조치뿐만 아니라 위기상황 판단, 구조 지원 가능성과 규모, 시기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하여 실현가능한 구체적인 구조계획을 신속히 수립하고 선장의 포괄적이고 절대적인 권한을 적절히 행사하여 선박공동체 전원의 안전이 확보될 때까지 적극적이고 지속적으로 구조조치를 취할 법률상 의무가 있다. 또한 선장은 「수상에서의 수색ㆍ구조 등에 관한 법률」 제18조 제1항 단서에 의하여 조난된 사람에 대한 구조조치의무를 부담하고, 선박의 해상여객운송사업자와 승객 사이의 여객운송계약에 따라 승객의 안전에 대하여 계약상 보호의무를 부담하므로, 모든 승무원에게는 선박 위험 시 서로 협력하여 조난된 승객이나 다른 승무원을 적극적으로 구조할 의무가 있다.

따라서 선박 침몰 등과 같은 조난사고로 승객이나 다른 승무원들이 스스로 생명에 대한 위협에 대처할 수 없는 급박한 상황이 발생한 경우에는 선박의 운항을 지배하고 있는 선장이나 갑판 또는 선내에서 구체적인 구조행위를 지배하고 있는 선원들은 적극적인 구호활동을 통해 보호능력이 없는 승객이나 다른 승무원의 사망 결과를 방지하여야 할 의무가 있다. 이에 선장이나 승무원에게 요구되는 개별적이고 구체적인 구호의무를 이행함으로써 사망의 결과를 쉽게 방지할 수 있음에도 그대로 방관하여 승객이 사망하는 결과를 초래하였다면, 이와 같이 의무를 이행하지 않는 것 즉 부작위는 실제 적극적인 행위로 발생하는 살인행위와 동등한 형법적 가치를 가진다고 평가할 수 있다.

매두사호의 선장은 조난을 당한 승객 등의 생명ㆍ신체의 안전을 보호할 의무가 있는데, 승객의 인명구조와 관련된 선장의 역할을 전면적으로 포기하였다. 선장은 아무런 명령ㆍ조치도 없이 승객들을 방치한 채 먼저 퇴선함으로써, 승객이 사망해도 어쩔 수 없다는 결과를 인식하였을 것이다. 이는 살인의 행위와 동일하게 평가할 수 있으므로, 현재 우리나라에서라면 부작위에 의한 살인 및 살인미수죄가 적용될 수 있을 것이다.

 

글 | 이재훈

성신여자대학교 법학부 교수

변호사 / 변리사 

법학(J.D.), 기술경영학(Ph.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