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안 미로와 합성생물학
[아츠앤컬쳐] 호안 미로(Joan Miró)(1893~1983)는 20세기 스페인 카탈루냐 지방의 바르셀로나 출신의 대표적인 화가이자 조각가, 판화가로, 초현실주의와 추상미술의 발전에 지대한 영향을 끼친 인물이다. 그는 생애 동안 현실을 해체하고 꿈, 무의식, 상징을 시각 언어로 풀어낸 독창적인 작업을 통해 현대 미술사에서 독보적인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그는 예술가 집안에서 태어나 자연스럽게 예술 교육을 받았으며, 바르셀로나 예술학교에서 미술을 전공하였다.
1921년부터 1922년 사이에 제작한 <농장(The Farm)>은 그의 전환점을 보여주는 대표작이다. <농장> 작품 이전에 호안 미로는 사실주의적이고 세밀한 표현에 중심을 두었다. <농장>부터는 고전적인 구도화 형태를 중시면서 야수주의(Fauvism)와 입체주의(Cubism)의 영향을 받았다고 평가받는다. 야수주의는 강렬하고 비현실적인 색채로 감정을 표현한 20세기 초의 회화 운동을 의미하고, 입체주의는 대상을 다양한 시점에서 분해하고 기하학적으로 재구성한 현대 미술의 혁신적 양식이다.
호안 미로는 <농장>을 통해 사실적 세부 묘사와 상징적 도형을 결합함으로써 이후 초현실주의(Surrealism)를 보여주기 시작한다. 초현실주의는 무의식, 꿈, 상상 속 세계를 표현하여 현실 너머의 진실을 탐구한 예술 운동이다. 1920년대 초, 프랑스 파리로 이주한 호안 미로는 앙드레 브르통(Andre Breton)(1896~1966), 막스 에른스트(Max Ernst)(1891~1976) 등의 초현실주의자들과 교류하면서 본격적으로 무의식, 꿈, 상징 세계를 표현하는 작업에 집중하게 된다.
물론 호안 미로는 초현실주의 내부에서도 정통적 흐름과 일정한 거리를 유지한다. 미로는 특정 이념이나 그룹에 속하는 것을 꺼렸고, 초현실주의 내부의 정치적, 이론적 흐름에는 적극적으로 참여하지 않은 편이다. 도리어 스페인 내전(Spanish Civil War)(1936~1939)과 프랑시스코 프랑코(Francisco Franco)(1939~1975) 정권 하에서의 정치적 억압에 저항하는 메시지를 작품 속에 내포하기도 하였다. 후안 미로는 1930년대 이후 회화를 넘어 조각, 벽화, 도자기, 판화 등 다매체 예술로 작업 범위를 확장하였다. 그의 바르셀로나 공항의 타일 벽화, 파리 유네스코 본부 벽화, 뉴욕 유엔 건물 로비 벽화 등은 공공미술의 중요한 예시로도 평가된다. 특히, 1950년대 이후 대형 벽화와 공공 조형물에 주력함으로써 그의 예술은 더욱 국제적인 위상을 얻게 되었다.
호안 미로는 추상표현주의, 설치미술, 현대 그래픽 아트 등으로 후대 예술가들에게 깊은 영향을 끼쳤다. 그의 자유롭고 상징적인 조형 언어는 미국의 잭슨 폴록(Jackson Pollock)(1912~1956), 마크 로스코(Mark Rothko)(1903~1970) 등의 작가들에게도 강한 영감을 주었다. 그는 예술에서 논리보다는 감성과 상상력, 무의식의 흐름을 중시하는 표현 경향을 확산시키는 데 기여하였다. 호안 미로는 자연이나 현실 세계의 구체적인 형상을 재현하는 것을 벗어나, 형태, 색채, 선, 구성 등 순수한 시각 요소 자체를 통해 표현과 의미를 전달하는 바로 추상미술의 한 획을 그었다고 평가받는다.
추상미술과 합성생물학(Synthetic Biology)은 언뜻 보기에는 전혀 다른 분야처럼 보인다. 그러나 “보이는 세계 너머의 본질을 탐색하고, 그것을 창조적으로 재구성한다”는 호안 미로의 철학적·창조적 관점에서 연결점을 지닌다. 그렇다면 합성생물학이 무엇일까?
합성생물학은 생명체의 유전정보를 설계, 조합, 합성함으로써 자연에 존재하지 않는 새로운 생명기능이나 생물 시스템을 창출하는 융합기술이다. 이는 생물학, 정보기술, 공학, 화학 등이 결합된 대표적 차세대 바이오 기술로, 기존 생명공학이 자연에서 유래한 유전자를 변형하는 수준에 머물렀다면, 합성생물학은 유전 정보를 마치 부품처럼 설계·조립하여 생명체의 구조와 기능을 정밀하게 재구성하는 것이 특징이다. 산업적 활용 범위는 바이오 의약품, 친환경 연료, 합성 식품, 스마트 소재 등으로 확대되고 있으며, 생명과학의 패러다임을 ‘분석’에서 ‘설계와 창조’ 중심으로 전환시키는 핵심 분야로 주목받고 있다.
쉽게 설명하면, 합성생물학은 인간의 DNA(Deoxyribo Nucleic Acid), 즉 인간의 유전 정보를 담고 있는 화학 물질인 바로 이 생명체의 설계도를 기계의 부품처럼 조합 가능한 '생명 부품(biological parts)'으로 간주한다. 합성생물학의 개념은 전통적인 생명공학의 상상을 넘어선다. 생명체의 유전 정보를 모듈화(modular)하고 표준화(standardized)하여, 설계→조립→테스트→최적화라는 공학적 프로세스를 적용하는 게 합성생물학의 핵심이 된다. 추상미술이 현실의 형태를 작가만의 질서, 에너지, 리듬 변형시켜 비물질적 본질을 표현하는 장르라면, 합성생물학은 DNA를 기존에 없는 방식으로 인공지능(A.I.)를 활용하여 백만가지 이상의 새로운 조합을 창출해내는 분야다.
우리나라는 합성생물학 관련 규정을 국가 차원에서 법률로 제정한 세계 최초의 국가이기도 하다. 2024년 4월 2일, 대한민국 국회는 <합성생물학 육성법>을 통과시켰고 세계 최초로 합성생물학을 특별히 법률로 육성·관리하는 국가라는 점에서 글로벌 리더십을 갖고 있다고 평가받는다. <합성생물학 육성법>은 합성생물학의 연구개발과 산업화를 촉진하고, 안전 및 윤리를 체계적으로 관리하기 위한 최초의 법률로, 한국이 이 분야의 제도적 주도권을 전 세계에서 처음으로 확보하였다.
<합성생물학 육성법>에 따르면 합성생물학을 생명체의 유전정보를 설계·조작·합성하여 새로운 생명 기능을 구현하는 기술이라고 정의한다. 법률의 주요 내용으로는 국가가 합성생물학 분야의 연구개발과 산업화를 촉진하기 위한 종합계획을 수립·시행하도록 하고, 관련 인프라를 조성하는 데 필요한 지원책을 명시하고 있다. 이를 위해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장관은 5년마다 국가 종합계획을 수립하고, 이를 기반으로 각 부처는 연도별 시행계획을 추진한다. 또한 생명부품 등록 및 표준화 제도, 합성생물학 전문기관 및 클러스터 지정 등의 조항을 통해 민간 및 공공기관의 참여를 유도하고, 기술의 상용화를 적극 지원한다. 아울러 합성생물학 기술의 확산에 따라 발생할 수 있는 생물안보 위협 및 생명윤리 문제를 고려하여, 위해 생명체에 대한 등록·관리 제도와 윤리적 기준 수립 등을 포함하고 있다. 이를 통해 과학기술의 발전과 함께 안전성과 사회적 신뢰 확보를 병행하고자 한다. 또한 전문인력 양성 및 국제협력 촉진 조항을 통해 장기적인 합성생물학 기술 생태계 구축에도 기여할 것으로 기대된다.
대한민국은 바이오 분야의 호안 미로가 되어 “보이는 DNA 너머의 본질을 탐색하고, 그것을 창조적으로 재구성하는” 합성생물학 생태계를 주도하게 되었다.
글 | 이재훈
성신여자대학교 법학부 교수
변호사 / 변리사
법학(J.D.), 기술경영학(Ph.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