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이 아프기 전, 마음이 먼저 아프다: 스트레스의 신체화 현상

2025-08-01     아츠앤컬쳐

 

[아츠앤컬쳐] 얼마 전 친구가 병원을 몇 군데나 돌았다는 이야기를 꺼냈다. 양팔이 찢어지는 듯 저리고 아픈데, 근전도부터 감염 검사까지 모두 정상이었다는 것이다. 결국 최종적으로 받은 설명은 “신경성일 수 있다”는 것이었는데, 정작 그것이 무슨 뜻인지 설명도, 치료도 명확하지 않아 한동안 불안했다고 했다. 그러다 직장에서 오래 끌어오던 프로젝트 하나가 잘 마무리되던 즈음, 그 증상이 자연스럽게 사라졌다고 했다.

의사로서 이런 사례는 익숙하지만, 검사상 이상이 없는데 분명히 아픈 경우, 우리는 종종 “스트레스 때문일 수 있다”고 말했을 때 설명이 부족하고 불안하다고 생각하는 경우가 흔하다. 하지만 이는 단순히 기분 탓이 아니라, 실제로 스트레스가 뇌, 신경, 호르몬, 면역계에 영향을 미치는 생리적 반응인 것이다.

스트레스를 받으면 자율신경계가 활성화되어 심장이 빨리 뛰고, 근육은 긴장하며, 위장 운동은 둔화된다. 동시에 HPA 축이 작동해 코르티솔이 분비된다. 코르티솔은 단기적으로는 염증을 억제하지만, 만성적으로 높아지면 면역계의 균형이 무너지고 염증성 사이토카인(IL-6, TNF-α 등)이 증가해 자가면역 질환이나 염증성 질환을 악화시킬 수 있다.

하지만 스트레스가 꼭 특정 질환으로만 나타나는 것은 아니다. 많은 경우 감정이 신체 증상으로 전환되는 ‘신체화 현상’으로도 경험될 수 있다. 대표적으로 긴장성 두통, 편두통, 수면장애, 가슴 답답함, 저림, 심계항진, 소화불량, 과민성 장 증후군 등이 있다. 신경학적 질환과 구별이 필요하므로 의학적 평가가 선행돼야 하는 친구의 사례와 같은 말초 팔다리의 저림 증상도 있고, 여성의 경우 생리불순이나 탈모, 피부 가려움도 흔하다.

왜 이런 현상이 생길까? 스트레스는 뇌의 편도체를 과활성화시켜 통증에 민감하게 만들고, 억눌린 감정이 신체 증상으로 나타나기도 하기 때문이다. 특히 한국처럼 감정을 내면화하는 문화에서는 ‘화병’처럼 정서가 신체로 표현되는 경향이 강하다. 결국, 몸의 통증은 말하지 못한 감정의 또 다른 언어일 수 있다.

스트레스를 완전히 없애기란 쉽지 않지만, 그 안에서 균형을 찾는 루틴이 중요하다고 말하고 싶다. 보통은 먼저 수면과 운동을 가장 기본적인 조절법으로 본다. 하루 20분 유산소 운동, 밤 11시 이전 숙면만으로도 자율신경계 균형 회복에 큰 도움이 된다. 꼭 생산적인 활동이 아니어도 좋다. 맛있는 음식을 먹거나, 음악을 들으며 산책하거나, 조용히 영화를 보는 시간도 본인에게 즐거운 일이라면 스트레스를 융화해주는 방법으로 충분히 의미가 있다. 핵심은 그 활동 자체의 속성이 아니라 본인에게 작고 확실한 기쁨을 주는가에 있다.

하지만 이런 노력에도 불구하고 만약 증상이 오래 지속되거나 일상에 지장을 줄 정도라면 정신건강의학과 상담이나 인지행동치료(CBT), 명상 등 전문적 접근도 도움이 될 수 있다. 단순히 증상을 없애려 하기보다, 내 감정과 몸이 어떻게 연결되어 있는지를 이해하는 통합적인 과정이 필요할 수 있기 때문이다.

몸이 아프다는 건 단지 몸의 문제가 아닐 수 있고, 마음이 오래 지친 끝에 보내는 신호일지도 모른다는 것을 다시 한 번 강조하고 싶다. 그러니 일상 중 몸이 보내는 신호를 무시하지 말자. 마음이 먼저 아픈 줄도 모르고 지나친다면, 결국 그 짐은 몸이 짊어지게 된다. 그럴 땐 나를 편안하게 해줄 작은 균형 하나를 떠올려보자. 변화는 이런 작지만 소중한 지점에서 시작될 수 있기 때문이다.

 

글 | 김혜원
뉴로핏 (NEUROPHET) 메디컬 디렉터
신경과 전문의, 대한신경과학회 정회원
前 서울아산병원 임상강사, 지도전문의
방병원 뇌신경센터 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