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양 문명의 수장(水葬), 미크로네시아의 난마돌(Nan Madol)
기후위기로 ‘해저 왕국’된 태평양 문명의 걸작품 ‘해상 왕국’ 난마돌
[아츠앤컬쳐] 난마돌은 서기 10~12세기부터 사우델레우르 왕조(Saudeleur Dynasty)가 산호초 위에 현무암 기둥을 쌓아 건설한 100여 개의 인공 섬으로 이루어진 경이로운 유적이다. 최신 방사성 동위원소 분석과 C-14 연대측정 결과, 기존 추정보다 앞선 시기부터 두 차례에 걸친 대규모 건설기를 거쳐 완성된 것으로 밝혀졌다. 2012년 오타고 대학 연구팀의 GPS와 GIS를 활용한 정밀 실측조사에서는 640개의 주요 지점이 기록되었으며, 이를 통해 구축된 디지털 지형도는 난마돌의 정교한 도시 설계를 보여준다.
수로가 도시 전체를 감싸고 있어 ‘태평양의 베니스’라 불리는 이곳은 건축물을 넘어서는 복합 체계였다. 최근 LiDAR 항공 레이저 측정을 통해 인근 섬의 관개 시스템과 농업 네트워크까지 확인되면서, 난마돌이 얼마나 고도로 발달한 도시 문명의 중심지였는지가 더욱 명확해졌다. 발굴된 조개껍질, 의식용 도구, 매장지 유물들로 미뤄 볼 때, 당시 난마돌을 설계하고 건설한 사회는 문명의 기원지 중 하나로 여겨질 수 있을 만큼 정교한 정치 체제와 세분화된 사회 구조를 보유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있지만, 없습니다”
그러나 이 위대한 유산은 조금씩 사라지는 중이다. 2016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된 것도 잠시, 심각한 훼손 상태 때문에 '위험에 처한 세계유산' 목록에도 동시에 이름을 올렸다. 난마돌을 연구한 학자들은 이 유적이 이미 시한부 운명이라는 걸 국제적으로 공증한 것이다.
기후위기로 인한 난마돌의 붕괴는 이미 걷잡을 수 없게 되었다. 폰페이 섬 자체의 화산지형 침하로 해수면이 연간 약 1mm씩 상승 중이다. 난마돌의 주요 건축군 상당수가 이미 바다 밑으로 가라앉은 상황이다. 간조 때조차 침수되는 구조물들이 늘고 있다. 지난 600년간 반복된 엘니뇨-남방진동(ENSO)과 라니냐 현상으로 해수면 상승 정도를 예측할 수 없게 되었다. 급격한 기상 변화로 강력한 폭풍과 해일이 몰아 닥쳐 거대한 현무암 벽이 모래성처럼 무너진다.
더욱 심각한 것은 기후변화로 인한 생태계 교란이 유적 스스로를 파괴하는 악순환을 만들어내고 있다는 점이다. 맹그로브 숲이 비정상적으로 번식하면서 유적을 파고들어 구조를 약화시키고 있으며, 수로와 건물 곳곳에 무성하게 자란 수풀의 뿌리가 화산암 구조물을 조금씩 밀어내고 있다. 유적은 이렇게 내부로부터 무너져가는 동시에 지속적으로 물에 잠기면서, 그 웅장했던 옛 모습을 예상보다 훨씬 빠른 속도로 잃어가고 있다.
대자연의 힘 앞에 속수무책
국제사회도 손을 놓고 있지만은 않다. 2018년 국제기념물유적협의회(ICOMOS)와 유네스코가 전문가 팀을 파견해 현장 점검과 위험 요인 분석을 실시했고, 미국 대사관 기금 37만 5천 달러, 네덜란드 등 여러 국가의 지원을 받아 침수 수로 준설, 침입 식생 제거, 건물별 정밀 모니터링 등 보존 활동을 펼치고 있다. 폼페이 문화유산 보존청과 지역 대학, 마을 대표들이 협력하여 현지 전통지식과 국제 기준을 접목한 지속가능 보존 계획도 세우는 중이다. 그러나 기후위기의 압도적인 파괴력 앞에서는 역부족이다.
예정된 문명의 침몰, 우리의 과제
난마돌의 붕괴는 기후위기가 인류의 문화유산에 얼마나 직접적이고 파괴적인 위협인지를 보여주는 가장 강력한 경고이다. 국제사회가 유네스코 세계유산이라는 타이틀을 부여하고, 첨단 과학기술을 동원한 연구와 보존 노력을 기울이고도 그 소실을 막지 못하는 이 현실은, 태평양 도서국이 겪는 위기가 얼마나 총체적이고 압도적인지를 웅변한다.
눈에 보이는 가장 거대한 뿌리조차 지켜낼 힘이 없는 상황에서, 보이지 않는 언어와 전통, 공동체의 기억을 지키는 것은 얼마나 더 요원한 일이겠는가. 난마돌의 침묵 속 붕괴는, 기후위기 앞에서 한 문명이 어떻게 속절없이 스러져가는지를 보여주는 비극의 현장이다.
Nan Madol: A Sinking Pacific Heritage
Nan Madol, a 1,000-year-old artificial islet city in Micronesia, is collapsing due to climate change. Rising sea levels, coastal erosion, and overgrown mangroves are accelerating its destruction. Despite UNESCO designation and international aid, conservation efforts remain insufficient. Nan Madol's decline highlights the urgent threat climate change poses to both visible monuments and invisible cultural heritage.
박재아는 <태평양기후위기대응협의회> 사무처장이자 <태평양학회> 이사, 팔라우 대통령 경제·관광 직속 자문을 맡고 있다. 서울대학교 국제대학원에서 국제지역학 석사를 취득했으며, 현재 서울대학교 환경대학원 환경관리학 박사과정에 재학 중이다. 피지(Fiji)·사모아(Samoa) 관광청 한국지사장, 모리셔스, 솔로몬제도, 미크로네시아 관광청의 한국 파트너, 태평양 관광기구(SPTO) 한국지사장, 인도네시아 관광창조경제부(MoTCE-RI) 지사장을 역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