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요한 것은 생활의 밀도이다
[아츠앤컬쳐] 이른 장마를 시작으로 폭염이 지속되나 싶더니, 다시 시작된 ‘괴물 폭우’로 한반도는 몸살이 아닌 깊은 상처로 아픔을 토해냈다. 이처럼 심화된 기후위기는 단순히 환경문제를 넘어 경제, 건강, 생활 전반에 영향을 미친다. 이에 따라 국가 차원에서 기후위기 적응 대책을 마련해 나아갈 방향을 제시함과 동시에, 국민과 가장 가까이 맞닿아 있는 기초지자체 단위의 지역사회에서도 능동적으로 대응해야 한다. 특히 지자체는 기후위기의 영향을 상대적으로 회피하기 어려운 취약계층을 위해 섬세하고 세밀한 대책이 필요하다.
기후가 바꾸고 있는 것은 단지 날씨뿐만이 아니다. 기후 위기의 위협에 대응하기 위해 도시의 구조를 바꾸고, 사회적 안전망의 결을 달리하고, 일상의 리듬을 다시 쓰게 만든다. 그중에서도 도시의 ‘가장자리’의 취약 거주지, 그늘이 부족한 골목과 그곳에 사는 사람들이 가장 먼저, 깊게 영향을 받는다. 이러한 도시의 경계 지역 곳곳에서, 기후위기에 대응하는 새로운 도전들이 펼쳐지고 있다.
그 생생한 사례 중 하나는 환경부와 지방정부가 함께 추진하고 있는 ‘기후위기 취약계층 지역 지원 사업’이다. 이 사업은 거대한 마스터플랜이 아닌 작고 세심한 배려와 개입을 통해 2021년부터 현재까지 기후회복력을 곳곳에서 실행하고 있다. 앞으로 예측이 어려운 기후위기에 현재 추진되고 있는 사업을 소개해 볼까 한다.
기후위기 적응을 단순히 기술적이거나 경제적인 언어로만 설명할 수 없는데, ‘차열 가구시설 차열페인트 도장사업’은 그 복잡성을 잘 보여주는 사례다. 부산광역시 남구와 인천광역시 계양구는 노후 주거지, 어린이집, 경로당 등의 옥상과 외벽에 쿨루프와 쿨월을 시공하여, 이후 지붕 표면 온도가 최대 17℃ 낮아지고 심지어 주거 만족도까지 상승했다. 한 어르신은 “차열페인트 하나 덕분에 여름이 더 이상 두렵지 않다”고 말했다. 이 사업은 기후적응이라는 거시 목표를 실내 온도라는 미시적 조건에 적용한 대표적 사례다. 또한 과학적 효과 분석(열화상, 실측 데이터)과 주민 만족도 조사를 병행하며, 정책의 적합성도 강화할 수 있었다.
기후위기 시대에는 야외 노동자들이 더 큰 위험에 노출된다. 대전광역시 서구와 포항시 북구는 가로수 정비, 녹지유지 사업으로 외부 현장에 근무 공공노동자들을 위해 이동식 쉼터를 설치했다. 트레일러 형태로, 폭염과 한파에 동시에 대응할 수 있는 시설은 노동자들의 회복 시간을 보장하는 동시에, 긴급 대응 상황(폭염 및 한파) 거점으로도 활용된다. 이 쉼터를 사용하고 있는 한 근로자는 “점심 이후 쉼터에서 30분간 휴식을 취하고 나면, 업무 효율이 눈에 띄게 향상된다”고 말했다. 이는 쉼터에서 제공하는 시설이 아니라, 기후 탄력성을 갖춘 안전하고, 효율적인 노동 환경의 핵심 요소로 자리 잡고 있다.
여름철 그늘이 부족하고 열섬 현상이 빈번하게 발생하는 도시의 기후위기는 고령자와 어린이들에게 실질적인 위협이 된다. 경기도 양주시, 대전광역시 동구·서구는 주거지, 공원, 전통시장에 퍼걸러, 쿨링포그, 자연식재 및 그늘막 등을 설치하여 다양하게 폭염 대응 쉼터를 조성했다. 특히 동구는 어린이와 노인이 함께 이용하는 공원을 다양한 세대가 공유하는 회복공간으로 재구성했으며, 대전 서구는 한민시장 아케이드에 하루 수천 명에 달하는 상인과 방문객들을 위해 쿨링포그를 설치했다. 지자체 모니터링 결과 온도저감 효과는 평균 2~3℃에 달한다고 한다.
폭염 대응 쉼터는 도시의 열을 회피하기 위한 소규모 공간인 동시에 사회적 고립을 줄이고, 공동체를 연결하는 인프라 역할을 담당한다. 필자가 소개한 실행 예시들이 폭우로 인해 시름하고 있는 분들에게 큰 위로가 되길 기원해 본다.
글 | 이승은
서울대 공과대학 석·박사 졸업
서울대 대학원 언론학 박사
환경다큐멘터리 PD
<기후변화와 환경의 미래> 저자
<EU 기후변화 정책의 이해> 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