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현실의 연금술사, 로메디오스 바로Remédios Varo
[아츠앤컬쳐] 20세기 초현실주의 미술사 속에서 여성 예술가들의 존재는 종종 남성 중심의 거대한 그림자에 가려져 왔다. 그러나 그 어둠을 뚫고 자신만의 빛을 만들어낸 이들이 있었다. 그중에서도 로메디오스 바로(Remédios Varo, 1908~1963)는 가장 신비롭고 독자적인 세계를 구축한 화가로 기억된다.
바로는 스페인에서 태어나 프랑스 파리의 초현실주의 운동에 참여했으나, 스페인 내전과 제2차 세계대전을 피해 멕시코로 망명했다. 낯선 땅에서 그녀는 예술가 레오노라 캐링턴(Leonora Carrington), 그리고 헝가리 출신의 사진가 카티 호르나(Kati Horna)와 만나 서로의 예술을 나누며 깊은 우정을 쌓았다. 사람들은 이 세 여인을 ‘세 마녀(Las Tres Brujas)’라 불렀다. 그 별칭은 단지 그들의 기이한 상상력 때문이 아니라, 세상과 현실의 논리를 초월한 예술적 연금술사라는 의미를 담고 있었다.
로메디오스 바로의 회화는 이성과 감성, 과학과 마법, 여성성과 영혼의 탐구가 교차하는 지점에서 피어난다. 그녀의 대표작 <새의 창조(Creación de las aves, 1957)>는 그 예술 세계의 정수를 보여준다. 그림 속 인물은 부엉이의 얼굴을 한 여성이다. 그녀는 어두운 방 안에서 달빛을 확대경으로 모아 붓끝에 담고, 그 빛으로 종이 위에 새를 그린다. 놀랍게도 그 새는 그림에서 벗어나 창문 밖으로 날아간다. 이 장면은 단순한 회화적 상상이 아니라, 창조 행위 자체에 대한 은유다. 현실의 물질을 초월한 ‘빛의 변환’, 그리고 인간이 가진 내적 에너지를 예술로 승화시키는 과정이 상징적으로 그려져 있다.
바로의 작품에는 정교한 기계장치, 연금술의 도상, 그리고 영적 세계에 대한 탐색이 반복적으로 등장한다. 그녀에게 예술은 단순한 표현의 수단이 아니라, 존재의 본질을 탐구하는 실험실이었다. 그 실험의 도구는 붓이었고, 재료는 꿈이었다. 그녀의 여성 인물들은 언제나 무언가를 ‘만드는’ 존재로 등장한다. 이는 세상을 수동적으로 응시하던 여성의 이미지를 넘어, 창조의 주체로서의 여성을 선언한 것이다.
오늘날 로메디오스 바로의 회화는 미술사적 재평가를 넘어, 현대 예술의 다양한 영역에서 새로운 영감을 던지고 있다. 그녀의 그림은 여전히 우리에게 묻는다. “당신의 상상력은 어디까지 현실을 바꿀 수 있는가?”
글 | 김남식
춤추는 남자이자, 안무가이며 무용학 박사(Ph,D)이다. <댄스투룹-다>의 대표, 예술행동 프로젝트 <꽃피는 몸>의 예술감독으로 사회 참여 예술프로젝트를 수행하고 있으며 정신질환 환자들과 함께하는 <멘탈 아트페스티벌>의 예술감독으로 활동, <예술과 재난 프로젝트>의 움직임 교육과 무용치유를 담당하며 후진양성 분야에서도 활발히 활동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