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애리 개인전

이애리의 ‘선묘여백’ ― 점과 선, 생과 소멸의 우주

2025-11-01     아츠앤컬쳐
이애리, Good Luck in 꽈리25-101, 160x130.3cm, 장지에 수묵, 과슈, 2025

[아츠앤컬쳐] 일정한 굵기의 가는 선으로 꽈리 형상을 모티브 삼아 선보여온 이애리 작가가 개인전을 열고 있다. 그녀의 선들은 단순한 기법이 아니라, 생명을 호흡하는 숨결이자 작가만의 우주를 완성하는 언어로 평가받는다. 작품의 화면은 주로 검은색과 주황색으로 이루어진다. 특히 주황은 단순한 색채를 넘어 생명력을 발산하는 부적으로 통할 만하다. 요술램프처럼 신비로운 에너지를 품은 꽈리는, 보는 이로 하여금 무언가를 간절히 소망하게 만든다.

이애리, Good luck in 꽈리25-78, 45.5×45.5cm, 장지에 수묵, 2025

“나에게 있어서 선(線)이란 동양철학에서의 기본적인 의미뿐만 아니라, 동시에 포괄적인 의미를 나타내는 수단이다. 함축된 ‘가장 기본적인 시작’의 의미이며, 여리고 가는 선들을 통해 면을 이뤄나가고, 결국 견고한 성(城)이 만들어져 나만의 우주를 완성하는 여정이 된다.”

이애리, Good Luck in 꽈리25-105, 73x73cm, 장지에 수묵, 2025

이애리의 이 고백은 작업 전체를 관통한다. 선 하나가 성이 되고, 성 하나가 다시 우주가 된다. 이렇게 그녀의 선들은 다양한 감정을 담는 수단이자, 긴 호흡으로 이어지는 수행의 과정이다. 반복되는 행위 속에서 선은 나와 타인, 그리고 세상과 우주를 연결한다. 불교에서 말하는 ‘무상(無常)’과 ‘연기(緣起)’의 원리가 자연스레 연상된다. 개별적 존재의 선들이 모여 하나의 꽈리를 이루듯, 인드라망(因陀羅網)의 구슬들이 서로 비추며 전체 우주를 형성한다. 그 모든 선은 서로를 비추며 하나의 생명을 완성해 나가고 있다.

이애리, Good luck in 꽈리25-72, 60.6×60.6cm, 장지에 주묵, 2025

작품 속 한 개의 꽈리는 수백 혹은 수천 개의 선으로 묘사된다. 그러나 모든 선은 점에서 시작해 점으로 끝난다. 이는 곧 탄생과 소멸의 은유이다. 그 사이에서 선들은 화려한 군무를 이루지만, 결국 두 점의 사이를 벗어나지 못한다. 그 반복의 굴레를 바라보며 우리는 자신의 삶을 투영한다. 보는 이는 어김없이 ‘시간의 외줄을 걷는 긴장감’을 경험하며, 순간의 찰나가 곧 영원으로 확장되는 역설을 마주한다. 찰나가 영원의 또 다른 이름이 되는 순간이다.

이애리, Good luck in 꽈리25-79, 45.5×45.5cm, 장지에 수묵, 2025

이처럼 이애리의 그림은 선에서 시작해 면으로 확장되며, 절제된 색채 속에서 단아한 울림을 선사한다. 이는 동양 수묵화의 여백 정신과도 맞닿아 있다. 하지만 그 화면은 단순히 여백을 만들어가는 것에 그치지 않는다. 오히려 수천 가닥의 선으로 공간을 해체하고, 그 안에서 새로운 ‘선묘여백(線描餘白)’의 경지를 창출한다. 이 여백은 찰나와 영원을 동시에 포괄하며, 공(空)과 충만을 한 화면에 공존시킨다. “비어 있으나 가득 차 있고, 가득하되 다시 비어 있다.”라는 참 진리를 시각적으로 연출하고 있다.

이애리, Good Luck in 꽈리25-100, 160x130.3cm, 장지에 수묵, 2025

굳이 하이데거(Martin Heidegger)의 ‘인간은 죽음을 향해 가는 존재(Sein zum Tode)’라는 말을 빌지 않더라도, 생과 소멸은 ‘숙명의 끈’을 맞잡고 있다. 그러나 이애리의 화면은 단순한 죽음의 종착만을 말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 끝마저 생의 여정 속으로 포함하며, 영원한 순환의 일부로 품어준다. 따라서 이애리의 꽈리는 ‘죽음을 두려움이 아니라 생의 깊이를 확장하는 통로’로 전환해주고 있다. 끝은 다시 시작이고, 소멸은 곧 새로운 탄생의 약속임을 보여준다. 이애리 개인전은 인사동 갤러리에이치 전시장에서 이달 9일까지 진행된다.

이애리(1969~) 작가는 숙명여자대학교 회화과 학부와 동대학원을 졸업했다. 국내외 개인전 81회, 기획단체전 800여 회 이상 참여했다. 그동안 천지방합동청사 미술작품 선정위원, 충남미술대전, 어반브레이크 자문위원, 대한민국회화대전ㆍ환경미술대전ㆍ서울여성미술대전ㆍ나혜석미술대전ㆍ서울미술대전, 용산국제미술대전ㆍ2018 농산물유통정보 공모전ㆍ2021 우리동네 예술프로젝트 둥의 심사위원을 역임했고, 저서로는 『지금 한국의 화가를 만나다』(고려원북스, 2015)가 있다. 작품은 그랜드하얏트호텔(제주드림타워), 롯데호텔(서울, 제주), 홍콩 하버시티그룹, 전경련회관, 삼성중공업, 현대중공업, 광명국제무역센터, 신한금융그룹 벤처투자, 영동세브란스병원, 의왕시청, 과천시청, 청와대, 한국경제신문사, 현대예술관, 취옹예술관, 세종호텔, 웨이브엠 호텔, ㈜퍼시스, ㈜한국유나이티드제약, ㈜대명, ㈜효성, ㈜스웨코, 국립현대미술관 미술은행 등에 소장되어 있다. 현재는 숙명여자대학교 미술대학 객원교수, 안양문화예술재단 이사, 독일 갤러리 클로제(Galerie klose), 프랑스 매그나갤러리 파리(Magna Gallery Paris) 전속작가로 활동 중이다.

 

글 ㅣ 김윤섭

미술사 박사

예술나눔 공익재단 아이프칠드런 이사장